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12년 만의 애니메이션화…“여전히 남은 재해의 상처 전달하고 싶었다”
지난 4월 27일, 300만 관객 돌파 기념으로 한국을 다시 찾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일요신문과 만났다. ‘너의 이름은’(2016), ‘날씨의 아이’(2019)에 이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으로 불리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소녀 스즈메가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
― 앞서 ‘스즈메의 문단속’이 300만 관객을 넘으면 다시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하셨는데 재내한에 대한 소감이 궁금하다.
“지난번에 왔을 때 ‘300만 관객을 돌파하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해서 다시 오게 됐다. 그런데 (300만을) 금방 돌파하고 순식간에 400만을 넘어서고 500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들이 봐주시는 건지, 또 왜 그런 건지. 반은 신기하면서 반은 매우 감격스러운 기분이다.”
― 한국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제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일단 한 가지는, 한국에서 수입배급을 맡아주신 미디어캐슬이 ‘너의 이름은’의 성적을 넘어야 한다며 엄청나게 노력해주셨다(웃음). 그리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덕분이란 생각도 조금 든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한국에서 개봉한 뒤 대히트를 하지 않았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봐주시는 와중에 그 후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을 다음 작품으로 선택해주신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또 이 영화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재해의 상처를 지닌 소녀가 회복해가는 이야기 그 자체가 한국 젊은 분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다(웃음).”
―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한국 관객들은 정말 다정하다고 느낀다. 봉준호 감독님 작품에 비하면 제 작품은 너무나 불완전하다. 등장인물도 불완전하고, 영화의 퀄리티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불완전한 영화를 보시고 뭔가 얻을수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고 받아들여주시는 걸 볼때 한국 관객들은 참 다정하구나, 하고 소박하게 생각하고 있다.”
―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야기 속 관계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불친절한 영화”라는 지적을 듣기도 했는데.
“일단 반성점은 많이 있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때도 설명이 부족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매번 그런 말을 들어서 ‘새로 만드는 작품에선 그런 말을 듣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매번 반성할 게 있다(웃음). 다만 두 시간이란 영화 속에 얼마나 많은 설명을 넣는 것이 옳을지 굉장히 많이 고민하게 된다. 모든 걸 다 전달하겠다고 하면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일부러 관객이 알아서 생각하게끔 설명을 다 하지 않기도 한다. 다음 작품에선 그런 부분을 개선하려고 노력 중이다.”
― ‘스즈메의 문단속’은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도호쿠 대지진)을 다룬다. 실제 재해를 애니메이션화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나 신화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인간은 애니나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아주 예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다음 세대로 전달하지 않았나. 애니도 이야기를 위한 미디어다. 사회에서 일어났던 큰 재해가 이야기로 전달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저희의 일이기도 하다. 그걸 옛날이야기 같은 감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일어났던 재해를 이야기로 만들어 엔터테인먼트화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필요가 있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12년 뒤에 만들어졌는데 만일 재해가 일어난 지 4~5년 뒤였다면 (피해의 후유증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뭔가를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12년이 지났을 때가 좋은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 제작에 있어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어떤 것인가.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12년 정도 흘렀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생생하게 상처가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고 아직 자신의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피난상태인 분들도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기에 어떻게 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가령, 직접적인 묘사는 너무 많이 보여주지 말자는 방침을 정했다.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는 모습은 묘사하지 않겠다, 동일본 대지진 그 자체는 그리지 않겠다는 건 영화를 만들 때부터 처음부터 정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돌아가신 분들을 재회하게 되는 이야기로도 만들지 말자고 생각했다. 물론 애니 안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더라도 절대 만들지 말자고 정했다. 현실에선 그런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영화 속 스즈메가 ‘일본 전국 일주’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방문하는 지역들엔 어떤 설정이 숨겨져 있나.
“스즈메가 일본 전국을 여행하는 이야기로 만들려 했던 것은 동일본 대지진이 도호쿠 지역 뿐 아니라 일본 전체와 그 사회에까지도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도호쿠 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멜트다운 되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동에서 서로 이주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일본의 (서쪽)끝이라고 할 수 있는 규슈부터 동일본 지진이 발생한 도호쿠로 향하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스즈메가 여행하며 들르게 되는 동네들은 영화를 보면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과거 큰 재해가 있던 곳이다. 에히메는 서일본 호우 재해, 고베는 한신 대지진, 도쿄는 1923년 거대한 지진(관동대지진)이 있었다. 그런 큰 재해가 있었던 곳을 스즈메가 들르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 바다가 보이는 스즈메의 마을은 굉장히 아름다워서 영화를 보고 찾아가고 싶어 하는 관객들도 많을 것 같은데.
“그곳은 가공의 마을로 실재하진 않는다. 이 영화는 가공의 마을과 실제 마을을 섞어 만든 것이 많다. 왜 가공의 마을로 정했냐면 영화 개봉 후 일본에는 ‘성지 순례’라는 말이 쓰이는데, 영화 배경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 장소를 쓰게 되면 그 장소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게 긍정적인 측면도 물론 있지만 그곳에 사는 주민들에겐 민폐이기도 하다. 굉장히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관광객이 많이 오면 환영하지 않으시기도 한다. ‘너의 이름은’ 때 그런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자 스즈메의 마을은 가공의 마을로 하되, 지역 자체는 규슈로 만들었다.”
― 신카이 감독의 작품에는 유독 ‘여고생 히어로’가 많이 나온다. 그 이유가 따로 있나.
“확실히 제 전 영화(‘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도 여고생이 주인공이었다(웃음). 그걸 좋게 보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비판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많다. 제가 젊은 세대를 주로 주인공으로 그리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이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들은 학교도 집도 아닌 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시기인데 제3의 장소로 애니나 만화, 소설, 무엇이 되든 픽션이 또 다른 장소가 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 향하는 대상은 10대, 젊은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젊은 주인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에 대해 비판할 때 주로 작가는 본인의 성숙에 따라 내용도 성숙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중년이나 나이 든 어른이 주인공인 영화나 애니는 많이 있기 때문에 일단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그려져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 제가 만들게 될 작품에서 주인공은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대로 10대가 될 수도 있다. 아직 고민 중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