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제출된 정부입법안 144건, 문 정부 땐 303건…여 “1야당 입법 독주 탓” vs 야 “국정운영 의지 의심”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법령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법령을 고쳐야 한다. 법률 제정·개정은 행정부가 아니라, 입법부인 국회 몫이다. 이에 정부는 국정수행에 필요한 입법안을 만들어 국회로 보내 심의·의결을 요청해야 한다. 이를 정부입법이라고 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2022년 5월 10일부터 지난 5월 4일까지 1년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의안은 총 189건이다.
이 중 추가경정예산안 및 각 기금의 운용계획변경안 등이 담긴 ‘예산안·결산’, 이재명 대표·노웅래 하영제 의원 체포동의안과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등 ‘기타의안’을 제외하고 법률안을 기준으로 하면 144건이 정부입법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1년 때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10일부터 2018년 5월 4일까지 1년간 문재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의안은 총 361건이었다. 예산안·결산, 기타의안을 제외한 법률안을 기준으로 하면 303건이다. 윤석열 정부보다 2배 많은 정부입법을 국회로 보낸 셈이다.
물론 정부입법을 많이 제출했다고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심의와 의결을 통해 입법이 돼야, 그 법률을 근거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1년간 국회로 보낸 법률안 144건 중 본회의 의결이 이뤄진 것은 36건이다. 원안대로 가결된 법률안은 4건, 수정가결 19건, 수정안이 반영돼 폐기된 법률안 1건, 대안반영폐기 12건 등이다. 국회 제출된 법률안 중 의결까지 이뤄진 비율은 25% 수준이다. 나머지 법률안은 소관위나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중인 게 2건, 소관위 심사 86건, 소관위 접수 20건 등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취임 후 1년 동안 국회로 제출된 법률안 303건 중 같은 기간 국회에서 의결된 안건은 71건이다. 정부 원안대로 가결된 법률안이 16건, 수정가결이 17건, 대안이 반영돼 폐기된 법률안이 38건이다.
법률안 143건은 문 정부 2~3년 차인 2018년 5월부터 2020년 5월 사이 의결됐다. 원안가결이 16건, 수정가결 31건, 대안반영폐기가 96건이다. 나머지 법률안 89건은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2020년 5월 29일 자동으로 만료돼 폐기됐다.
국회 제출 법률안 중 23.43%가 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동안 의결이 이뤄졌다. 제출한 법률안 대비 의결 비율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비슷하다. 하지만 의결된 법률안 숫자는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를 근거로 야권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가 뚜렷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대대적인 개혁을 강조해 왔다. 1월 1일 신년사에선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3대 개혁을 중점 과제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교육개혁은 ‘만 5세 조기입학’ 정책을 꺼내들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며 백지화됐다. 노동개혁은 ‘주 69시간 근로제’를 추진하려고 하다가 강한 역풍을 맞자,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서로 다른 발언을 내놓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연금개혁의 경우 아직 제대로 발도 떼지 못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정부가 3대 개혁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세우지 못하다 보니 정부입법 제출이 지지부진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탄핵 국면에서 인수위도 없이 출범했다. 그럼에도 1년 차부터 국정과제를 세우고 여러 가지 정부입법을 추진했다”며 “윤석열 정부는 취임 1주년이 되도록 국정운영 큰 그림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것 같다. 개혁 방향도 정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정부입법을 낼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실제 지난 1년간 국회에서 처리된 윤석열 정부의 정부입법 중 대부분은 조세특례제한법·상속세 등 2023년도 예산안과 함께 처리된 부수법안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민법,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조세범처벌절차법, 특정범죄가증처벌법 등은 미미한 조항 변경이거나 윤 정부의 핵심 정책을 반영한 법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국회 여소야대 국면에서 민주당이 정부의 법안 처리를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해도 야당에서 반대하면 통과가 힘들다는 것이다. 1야당의 입법 독주를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법률안을 통과시키고 싶다면 야당 협조가 필수적이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싶고, 개혁의 비전이 있다면 야당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며 “그런데 윤 대통령은 취임하고 1년이 지나도록 야당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을 앞세워 야당을 탄압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민주당이 입법을 볼모로 횡포를 부리고 있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법안이라고 해도 누더기가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분명 야당에서도 찬성하는 정책이었는데도 일단 정부가 보내면 반대부터 하는 사례들이 있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정부 입법이 필요하지 않은 시행령 개정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입법 독주에 의한 정부입법 의결의 아쉬움을 표하기에는 윤석열 정부가 취임 후 1년간 제출한 법률안 총 수량 자체가 같은 기간 문재인 정부에 비해 절반 수준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야권의 반론도 있다.
일요신문은 정부입법 제출·의결 현황에 대해 대통령실에 입장을 문의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