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 앞두고 ‘윤석열 정부 심판론’ 불 지필 가능성…보수 결집 및 입법 독주 프레임은 부담
국회는 4월 27일 본회의에서 ‘화천대유 50억 클럽 뇌물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과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등 이른바 쌍특검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무기명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 ‘50억 클럽 특검’ 법안은 183명이 표결에 참여해 전원 찬성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은 재석 의원 183명 중 찬성 182명, 반대 1명으로 각각 안건이 통과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에서 쌍특검 법안에 대해 반대토론을 한 뒤 항의의 뜻으로 본회의장을 집단 퇴장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하지만 수적 열세를 절감하며 야당 주도의 법안 처리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초 국민의힘은 검찰이 두 사건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보고 특검을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국민의힘이 특검법안 처리에 응하지 않고 지연전술을 펴자, 결국 야당에서는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방침을 세운 것이다.
패스트트랙은 말 그대로 법안 처리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한다는 의미다. 국회법을 보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안건 심사는 국회 소관 상임위(최대 180일), 법제사법위(최대 90일), 본회의 숙려기간(최대 60일) 등 330일가량이 걸린다. 하지만 쌍특검의 경우 소관 상임위가 법사위라, 법사위 계류기간이 생략된다. 상임위와 숙려기간을 합쳐 최장 240일(8개월)이 소요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쌍특검 법안은 늦어도 오는 12월 말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질 가능성이 유력하다. 이번 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정치권에선 득실 계산이 한창이다.
우선 민주당은 쌍특검이 꽃놀이패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법안이 처리될 12월은 본격적인 총선 정국이다. 쌍특검 법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돼 특검이 활동하게 되면 50억 클럽 문제와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은 총선 정국 내내 주요 현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총선이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여권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쌍특검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부여당은 더욱 큰 리스크를 안게 된다. 대통령 배우자와 검사 출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부권을 발동했다는 ‘방탄’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한 전략통의 말이다.
“정치에서 악재는 최대한 신속하게 털어내는 것이 좋다. 특검 활동기간은 준비 30일에 수사 150일, 연장 90일 등 최대 9개월이다. 이번에 국민의힘이 협조해 쌍특검 법안을 가결하고, 윤 대통령이 수사기간 연장 안 해준다고 치면 연말 전에 특검 이슈는 사라질 수 있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오히려 민주당과 정의당이 무리하게 특검을 밀어붙였다고 역공도 가능했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반대하면서 패스트트랙에 지정됐다. 8개월 후 총선을 코앞에 두고 쌍특검 문제가 또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패스트트랙 지정이 오히려 총선에 호재로 작용하게 됐다.”
12월 쌍특검 법안 표결을 두고 국민의힘 내부 분열이 표면화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대통령실 모습을 보면 윤 대통령이 차기 총선에서 공천에 적극 관여할 것으로 보인다. 김기현 대표는 괴담이라 선을 긋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 ‘검찰 사단’ 수십 명이 대거 국민의힘에 공천될 것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실제 그렇게 공천이 이뤄지면 당내 갈등은 불가피하다. 자신의 지역구를 위협받게 된 현역 의원들이 12월 쌍특검 표결에서 찬성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 그럼 ‘윤석열 정부 심판론’은 더 힘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에선 패스트트랙 지정이 오히려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격이 보수 진영 집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또한 1야당 입법 독주 논란으로 불거질 수 있다. 이 경우 윤석열 정부 중간 심판보단 1야당 견제론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쌍특검 법안이 3지대 공간을 넓힐 것이란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현재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대장동 개발 특혜 및 성남 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 ‘당 대표 사법 리스크’에 휩싸여 있다. 최근에는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까지 불거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 및 배우자·주변인들에 대한 쌍특검이 총선 과정에서 정치 현안으로 떠오르면, 여야 모두 ‘사법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 거대 양당에 대한 국민의 정치 불신이 심화돼 투표율이 낮아지거나 무당층이 늘어날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무당층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당지지도에서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33%에 달했다.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 ‘무당층’ 비율이 30%인 것과 비교하면 2주 사이 3%포인트 상승한 것(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경우 창당이 예상되는 제3지대 정당이 선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총선 1년 가까이 남은 현재 무당층이 늘어나고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는 여야 지지층이 각 진영으로 결집해 40 대 40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쌍특검 법안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에 저지할 전략이 따로 있겠느냐”며 “민주당은 양곡관리법·간호법 등 여러 법안들을 무리하게 강행 통과시키고 있다. 쌍특검도 마찬가지다. 표결까지 남은 기간 동안 민주당의 ‘입법독주’의 무도함을 강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