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와 관계 없이 ‘의료대란’ 불가피…갈등 길어지면 지지율 더 떨어질 수도
국회가 4월 27일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가결했다. 재석 의원 181명 중 찬성 179명, 기권 2명이었다.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날도 간호법 제정안에 반대해온 국민의힘은 반대토론을 한 뒤 항의의 뜻으로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 내 간호 관련 내용을 분리한 것이다. 간호사·전문 간호사·간호조무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간호사 등의 근무환경·처우개선에 관한 국가책무 등을 규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2005년 첫 입법이 시도됐고, 이전부터 대한간호협회 등이 수십 년간 요구해온 숙원사업이었다. 간호협회는 간호법을 통해 간호인력 양성과 수급 등 체계가 마련돼, 국민의 보편적 건강보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간호법 제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보건의료체계를 무너뜨리고 협업 기반 의료에 불협화음을 조장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법안이라는 이유다. 이번 간호법이 향후 간호사들의 단독 의료행위, 단독 개원 등을 가능케 하는 조항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상정한 간호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법안은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돼 당초 4월 13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 간 추가 논의로 다음 본회의까지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라’며 강행 처리에 제동을 걸었다. 그럼에도 2주 동안 여야 간 중재안과 관련해 논의 진전이 없자 결국 원안이 본회의에 상정돼 처리됐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직역 간 첨예하게 입장이 갈렸던 만큼, 의원들 사이에서도 전직 직역에 따라 엇갈린 모습을 보였다. 간호사 출신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은 당의 방침과 달리 본회의장에 남아 찬성표를 던졌다. 특히 최 의원은 법안 표결에 앞서 찬성 토론을 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고, 토론 후 야당 의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또한 같은 당 시각장애인 김예지 의원도 본회의 자리를 지키며 찬성표를 찍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의사 출신 신현영 의원은 기권표를 던졌다. 이원욱 의원 역시 기권 의사를 행사했다.
간호협회는 간호법 제정안 국회 가결 직후 성명을 통해 “간호법은 국민의 보편적 건강보장과 사회적 돌봄을 위한 법”이라며 “간호사는 간호법 제정을 통해 초고령사회와 만성질환으로 질병구조 변화에 대처하고, 사회적 돌봄의 공적 가치에 대한 책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께 약속한다”고 환영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법안 통과를 규탄하며 연대 총파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의사협회는 “정치권에 엄중히 경고한다. 간호법은 특정 직역 이해관계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 전체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강행 처리 과오를 인정하고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즉각 강구할 것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부분파업을 예고한 데 이어, 상황에 따라 총파업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방침이다. 헌법상 대통령은 의결된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된 후 15일 이내에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 앞서 윤 대통령은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양곡관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하지만 간호법의 경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부담스러운 지점은 있다. 한 달 사이 두 번의 거부권을 발동하는 것에 대해 비판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 모두가 법의 정당성이나 취지·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을 계속해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행위만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누적되면 정부가 입법부를 무시하고 독주한다는 이미지만 쌓인다. 국정을 운영하는데 좋은 일은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또한 ‘대선 공약 파기’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공약을 대통령 손으로 거부하는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 지도부는 “공식 대선공약집엔 해당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법안을 만들겠다고 한 것이지, 간호법 제정을 공약으로 제시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2년 1월 간호협회와 간담회에서 “간호협회 숙원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대선후보가 직접 약속을 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언론들도 “윤석열 후보가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 후보의 온라인 공약플랫폼 ‘공약위키’에도 ‘의료계의 공정과 상식을 지키기 위한 간호법 제정 추진’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간호협회도 앞서 성명에서 “간호법은 윤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이라며 “주장들의 사실관계를 살펴 현명한 판단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발동하면 의사협회 등의 ‘총파업’ 상황까지는 악화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간호협회 등 간호법 제정 찬성 측이 파업 등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의료대란’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정부여당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앞서 2020년 문재인 정부는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 부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를 추진했다. 의대 정원을 2022학년도부터 400명씩 늘려 10년간 유지해 의사 4000명을 추가로 양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의사협회는 강하게 반발하며 그해 8월 2차례에 걸친 전국의사 총파업에 돌입했다. 결국 복지부와 의사협회는 논의를 잠정 중단하며, 추후 코로나19 유행이 안정화되면 의정협의체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 논란을 겪으며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출렁거렸다. 한국갤럽이 의사 1차 총파업 직전인 2020년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긍정평가는 전주 대비 5%포인트(p) 하락한 39%, 부정평가는 7%p 상승한 53%를 기록했다. 긍정과 부정평가 차이는 14%p까지 벌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한국갤럽이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자체 실시한 ‘직무수행 평가’ 여론조사에서 ‘잘하고 있다’가 30%, ‘잘못하고 있다’ 63%로 나타냈다(여론조사 자세한 내용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여전히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대란’이 불거져 장기화되면 지지율은 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여당이 간호법 통과 갈등을 봉합할 정치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달린다. 야권의 한 전략통은 “과거 문재인 정부 때 의사 총파업은 의사협회와 협의를 하면 봉합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 간호법을 둘러싼 논란은 의사협회와 간호협회의 서로 다른 입장차를 해결해야 하기에 탈출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며 “그럼 더욱 정치력을 발휘해 해결해야 하는데 현 정부여당이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