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 가까운 상태 불구 200% 급등…공시 하루 전 상한가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
#부동산 침체기에 돈 없이 산 땅…주가 200% 급등 후 제자리
아난티와 삼성생명의 서울 송파구 신천동 부지 부정거래 의혹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이정섭)는 다가오는 인사 시즌 등을 고려해 5월 안으로 수사를 마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다. 현재는 삼성생명 임직원들이 땅을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고, 아난티는 그 일부를 횡령해 삼성생명 관계자들에 뒷돈을 건넸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업계 일각에서는 아난티가 신천동 부지를 매입한 2009년 주가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해 4월 500억 원에 매입하고 삼성생명에 팔기로 한 8월까지 4개월 동안 주가가 약 200% 급등하더니, 그 뒤로는 꾸준히 내려앉으며 한 해 만에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등 다소 비정상적인 그래프를 보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해당 부지 매입계약을 체결한 2009년 4월 3일 아난티 종가는 464원이었다. 관련 공시가 나간 4월 6일 10.56%(509원) 상승했고, 그 사흘 뒤인 4월 9일은 전일 대비 15% 급등한 상한가를 기록해 644원까지 올랐다. 2015년 이전까지 국내 주식 가격 제한폭은 15%였다.
아난티는 잔금도 못 치른 상태였지만 주가 상승은 두 달여 이어졌다. 삼성생명과 매각계약 체결 직전인 6월 19일 801원까지 나아갔다. 8월 17일에는 1396원까지 돌파했다. 땅 매입부터 매각까지 4개월 동안 200.86% 오른 셈인데 9월부터 하락 전환해 2010년 8월 420원으로 되돌아갔다.
신천동 부지 거래가 반짝 호재로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자세히 분석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난티는 2008년 말 기준 자기자본 283억 원, 부채 1794억 원으로 부채비율이 634%에 달할 만큼 재정 사정이 나빴다. 또 박왕자 씨 금강산 피격 사건 여파로 금강산콘도 자산 643억 원이 묶이는 등 자본잠식에 가까운 상태였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침체가 심한 때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조트와 골프장을 주력사업으로 한 아난티가 잔금마저 치르기 어려웠던 신천동 땅을 자기자본의 1.76배에 달하는 돈을 주고 샀는데 과연 이런 거래가 초대형 호재가 될 수 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자금 조달력부터 의심해야 할 상황이었다.
#전문가들도 의아함 드러내
특히 2009년 6월 22일에 이해하기 힘든 거래가 있었다. 아난티가 신천동 부지를 삼성생명에 준공조건부로 팔기로 계약한 날이다. 이날 아난티 종가는 920원으로 전날 대비 14.86% 올라 상한가 제한폭에 근접했다. 그런데 삼성생명과의 판매계약 공시는 하루 지난 6월 23일 이뤄졌다. 언론 보도 등으로 미리 전해진 소식도 없었다.
전문가들도 의아함을 드러낸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2009년 당시 아난티의 펀더멘털을 고려했을 때 신천동 부지 매입이 호재인지 악재인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남북관계도 경색 국면이었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침체마저 심한 상황 속 재정 건전성마저 악화한 관광 레저기업이 서울 한복판에 500평짜리 땅을 500억 원이나 주고 사는 게 투자를 유인할 요소가 되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다른 증권사 부장도 "2009년 초반은 금융위기로 문을 닫는 건설업체도 속속 발생했던 시기"라며 "삼성생명에 금세 매각할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한 이상 신천동 부지 매입이 주가에 그만한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공시 하루 전인 6월 22일 상당한 상한가를 보인 대목은 커다란 미궁"이라고 부연했다.
아난티 측은 문제가 없는 거래라고 일축했다. 아난티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은 때이긴 했어도 좋은 땅을 싼값에 매입했다"며 "비록 레저 등에 주력하는 기업이지만 부동산 개발 사업도 진행하는데, 신천동 부지 매입 역시 그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밖에 자세한 설명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아난티는 SG증권발 무더기 주식 폭락 사태에도 얽혀 시름하고 있다. 이중명 전 아난티 회장이 라덕연 투자전문업체 대표에 거액을 투자했으나 손해를 봤다고 알려진 것. 피해자인 셈이지만 '특수관계'로 보이는 정황도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각계각층의 인맥이 두터운 이 전 회장이 주가조작 대상 종목 투자를 주변 지인들에게 권유했다는 등의 의혹이다.
이에 아난티 측은 "회사는 주가조작 논란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전 회장의 아들인 이만규 대표가 직접 공식 입장을 내고 "이 전 회장은 2015년 사내이사에서 사임한 뒤 아난티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본 건은 이 전 회장의 개인적인 이슈로, 아난티는 주가 조작 논란과 일체 관련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