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높아 일각에선 ‘기시다의 비밀병기’ 평가…전액 나랏돈으로 백악관 방문한 것 놓고 비판론도
#히로시마에서는 총리보다 높은 인기
1964년생인 유코 여사는 히로시마현 출신이다. 현내 유수 부동산기업을 운영하는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지역 명문 여중·고를 거쳐 도쿄여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는 마쓰다에 입사해 임원 비서로 근무했으며, 23세 때 기시다 총리와 만나 이듬해인 1988년 결혼했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와 곧잘 비교되는 분위기다. 아키에 여사가 ‘가정 내 야당’을 자처하며 남편의 정책에 쓴소리를 가했던 것과 달리, 유코 여사는 묵묵히 내조하는 타입으로 알려졌다.
1993년 남편이 중의원에 당선돼 도쿄에서 의정활동을 시작하자, 유코 여사는 주말부부로 지내며 히로시마에서 홀로 세 아들을 키우고, 지역 주요 행사에 참여하는 등 기반을 다져왔다. 현지 언론에 의하면 “기시다 총리의 지역구 히로시마에서는 유코 여사의 인기가 매우 높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가 아니라 ‘유코 여사를 지지하고 있다’고 밝히는 유권자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계 제일의 ‘애처가’로도 유명하다. 2021년 9월 총리로 선출된 날에는 “귀가했더니 가장 좋아하는 오코노미야키를 아내 유코가 만들어줬다”며 “언제나 최고로 맛있지만, 오늘은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유코 여사가 기시다 총리의 이미지를 보완하는 ‘비밀병기’라고 평가한다. 정치 저널리스트 스즈키 데쓰오는 “기시다 총리가 지지율 향상과 자신의 인품을 알리기 위해 아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총리가 선거 때도 SNS를 활용해 가족끼리 라이브방송을 하는 전략으로 젊은 층의 호감을 산 바 있다”며 “앞으로도 미디어 전략이나 외교 등에서 유코 여사가 활약하는 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창한 영어실력 총리 부인의 외교
일본 매체 ‘데일리신초’에 의하면 “유코 여사는 어린 시절부터 영어 개인교습을 받았고, 본인이 영어를 좋아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시다 총리가 외무상을 맡았던 2016년에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담에서 각국 외교장관 부인들을 평화기념공원으로 안내하고, 다과회를 열어 “외교 역량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작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는 직접 다도를 선보이며 말차를 대접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백악관을 단독 방문해 이목을 끌었다. 일본 총리 부인이 배우자 없이 혼자 미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1월 기시다 총리 내외가 방미했을 당시, 건강상 이유로 동석하지 못한 질 여사가 유코 여사를 단독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여사는 백악관에서 차를 마시며 간담회를 가졌고, 미일 양국 우호를 기념해 백악관 정원에 벚나무를 심었다. NHK는 “미일 관계 강화를 위해 두 정상의 부인 간에도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총리 부인 ‘공비’ 문제로 인터넷은 시끌시끌
다만, 인터넷상에서는 유코 여사가 전액 공비(公費·나랏돈)로 미국을 방문하는 것을 두고 찬반 의견이 격돌했다. “미일 정상의 배우자끼리 돈독하게 지내는 건 좋은 일”이라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부정적인 견해도 만만치 않았다. 대체로 비판하는 쪽에선 기시다 총리의 장남 쇼타로와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를 언급하는 내용이 많았다.
지난해 10월 기시다 총리는 장남 쇼타로를 총리비서관으로 발탁한 바 있다. ‘혈연 채용’ ‘권력에 의한 정치 사물화’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은 당연지사다. 여기에 설상가상 기름을 붓는 일이 발생했다. 기시다 총리가 올해 1월 5개국을 순방했을 당시 “쇼타로가 일본대사관 관용차로 파리와 런던 등의 관광지를 둘러보고 현지 백화점에서 쇼핑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국회 질의에서도 “총리가 공과 사를 혼동하고 있다”며 대논쟁이 일었다.
이런 연유로 “유코 여사가 나랏돈으로 미국을 방문한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총리 아들 다음엔 아내가 해외여행인가” “장남이 깜빡한 해외 기념품을 엄마가 사러 가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키에 여사가 언급되는 이유는 2017년 일본 정부가 스캔들을 덮기 위해 “총리의 부인은 공인(公人)이 아니라 사인(私人)”이라고 국무회의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 당시 아키에 여사는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한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벚꽃을 보는 모임 등 각종 의혹이 터져 나왔다. 그때마다 일본 정부는 아키에 여사가 ‘사인’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유코 여사와도 관련해 “사인에게 왜 나랏돈을 쓰는 거냐”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게 됐다. 총리의 부인이 사인인지 공인인지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일고 있는 셈이다.
사이타마대학의 히라바야시 노리코 명예교수(미국정치학)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는 사무실을 갖고 있으며 직원과 예산을 법으로도 정해놨다”고 전했다. 선거로 뽑힌 것은 아니지만 공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일례로 ‘왕실의 존재’다. 일본의 경우 권력은 총리, 상징적 권위는 왕실이 맡는 등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반면, 미국 대통령은 두 가지를 겸하고 있어 영부인은 국가 상징으로서의 대통령직을 돕는 존재가 된다. 히라바야시 교수는 “일본엔 왕실 외교가 있으므로 총리 부인에게서 영부인만큼의 영향력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고베학원대의 가미와키 히로시 교수(헌법학)는 ‘정치 사물화’를 우려한다. 그에 의하면 “소선거구제가 도입되면서 최종 공천권을 가진 자민당 총재의 힘이 강해져 불만을 제기하는 의원이 나오지 않게 됐다”고 한다. 가미와키 교수는 “세금이나 외교의 사물화는 안 된다는 것을 국민이 계속 언급하고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