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최고위원직 사퇴하며 경징계, 김재원은 중징계…김기현 리더십·윤석열 대통령에 불똥은 정치적 부담
잇단 설화로 논란을 일으킨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의 운명이 엇갈렸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5월 10일 여의도 당사에서 회의를 연 뒤 김재원 최고위원에 대해서는 ‘당원권 정지 1년’ 중징계를, 태영호 전 최고위원은 ‘당원권 정지 3개월’ 경징계를 결정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선출 직후부터 ‘5·18 헌법 수록 반대’ ‘전광훈 목사 우파통일’ ‘4·3 기념일은 급이 낮다’ 등 발언을 연이어 내놓으며 논란을 자초했다. 처음에는 한 달간 자숙으로 무마되는 듯싶었지만, 대통령실이 당에 징계를 요구하면서 윤리위 절차에 들어갔다.
더 관심을 모았던 이는 태영호 전 최고위원이다. 태 전 최고위원은 ‘제주 4·3 사건 김일성 지시설’ ‘JMS 민주당’ 발언이 문제가 됐을 때만 해도 가벼운 징계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대통령실 공천개입 의혹’ 녹취록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녹취록엔 태 전 최고위원이 보좌진들을 향해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본인에게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정부의 한일관계 외교정책에 대해 옹호 발언해달라 요청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태 전 최고위원은 녹취록에 대해 “과장 섞인 내용”이라며 공천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진복 정무수석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김기현 대표는 5월 3일 태 전 최고위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함과 동시에 윤리위에 이 사안을 다른 의혹들과 함께 병합해달라고 요청했다.
둘의 징계 수위가 갈린 데는 ‘정치적 결단’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윤리위는 5월 8일 회의를 열어 두 최고위원 소명을 들은 뒤 징계수위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 모두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예상했다. 하지만 윤리위는 추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 의결을 이틀 뒤로 연기했다.
윤리위가 갑작스레 속도조절에 나선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자진사퇴 등 정치적 합의점을 모색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실제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1차 회의 직후 최고위원직 자진사퇴 변수가 징계 의결에 반영될 수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둘은 윤리위 회의 당일까지도 자진사퇴는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던 중 태영호 전 최고위원은 5월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나는 더 이상 당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려 한다. 그동안의 모든 논란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김재원 최고위원은 고심 끝에 뜻을 굳히지 않으면서 예상대로 중징계를 맞게 됐다.
황 위원장은 징계 의결 후 ‘태 의원의 자진사퇴가 징계수위에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 “결과를 보시면 알죠”라며 사실상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윤리위 결정으로 김재원 최고위원은 내년 총선 공천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는 평가다. 반면, 태영호 전 최고위원은 경징계를 받으면서 공천 희망의 불씨가 살아났다. 정치권에서는 태 전 최고위원은 차기 총선 공천을, 김 최고위원은 최고위원직을 선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권 내부에서는 김 최고위원이 가처분 소송 등 징계 불복에 나설 가능성이 나온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윤리위가 5월 8일 1차 심의에서 징계 결정을 유보하고 ‘정치적 해법’을 공개 거론하며 양형 조정 가능성을 내비쳐서 사실상 사퇴를 압박한 것이 위법 소지를 다퉈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최고위원이 당을 상대로 가처분 소송 등에 나설 경우 앞서 이준석 전 대표 사례처럼 윤리위가 추가 징계에 나설 수도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현재 당내에 김재원 최고위원의 우군이 없다. 이번 징계 건이 아니어도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회의적 시선이 있었다”며 “이에 김 최고위원 입장에서는 최고위원직을 사퇴해 경징계를 받아도 총선 공천을 못 받으면, 직함도 없이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다. 하지만 최고위원직을 유지하면 당원권 정지 1년 징계를 받고 돌아와도 최고위원을 1년 가까이 더 수행할 기회가 생긴다. 그럼 차기 정치 행보를 노려볼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고 했다. 김 최고위원이 소송보다는 징계를 수용할 것으로 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윤리위 징계 이후 자신의 SNS에 “나를 지지해주신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라며 “앞으로도 우리 당과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찾아서 계속하겠다”고 짧은 입장만을 냈다. 현직 의원이자 서울 강남갑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태영호 전 최고위원은 김 최고위원과 사정이 다르다. 공천 도전 기회가 김 최고위원보다는 더 열려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선에 더 중점을 뒀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의 말이다.
“태영호 전 최고위원이 자진사퇴하면서 징계 수위가 낮아질 것은 예상됐다. 관건은 당원권 정지 6개월이냐 3개월이냐의 문제였다. 당 안팎에서는 3개월이면 현 지역구인 강남갑 유지, 6개월이면 강남갑이 아닌 다른 지역구 이동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번 3개월 징계로 태 전 최고위원 측 입장에서는 강남갑 재도전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물론 결국 다른 지역구로 옮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더 우세하다.”
당에서는 윤리위 징계가 나오며 사안이 일단락되길 기대하고 있지만 후폭풍이 더 거셀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김기현 대표는 징계가 이뤄진 다음날인 5월 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부 최고위원들의 잇단 설화로 당원과 국민께 심려를 끼쳐 당대표로 무척 송구한 마음”이라며 “정치인의 말은 천금 같아야 한다. 당 지도부의 일원은 언행에 있어 더욱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김기현 대표 리더십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당 지도부가 출범 두 달 만에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한 명은 자진사퇴, 한 명은 징계로 1년간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김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조짐이다.
당내에서도 지도부에 대한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김기현 대표와 경쟁했던 안철수 의원은 5월 9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5월 8일 징계를 결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금도 늦었다”며 “징계 여부보다도 현 지도부에 대한 기대가 갈수록 낮아진다는 게 정말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음에 전당대회가 끝나고 분위기가 업 됐을 때 그걸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당의 미래를 고민하는 분위기를 잡는 것도 당대표의 역할”이라며 “처음에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연속으로 처음에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의 적극적인 영향력 행사로 전당대회 룰이 당원 투표 100%로 변경됐는데, 이를 통해 뽑힌 최고위원들이 국민정서에 이반되는 극우적 발언으로 논란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야권에서도 태영호 전 최고위원으로부터 촉발된 ‘대통령실 공천개입 의혹’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당의 윤리위 징계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불법 공천개입으로 검찰로부터 징역 3년을 구형받았고, 결국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을 기소했던 사람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라며 “대통령실의 공천개입은 명백한 수사대상이다. ‘검사 윤석열’식으로 해결해라”고 꼬집었다.
실제 이진복 정무수석은 해당 의혹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게 됐다.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 윤석열 대통령과 이 수석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고발했는데, 공수처가 이를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부장검사 이대환)에 배당했다.
이번 징계 역시 대통령실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김재원 최고위원의 경우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광주와 제주를 직접 찾아 사과하고 고개를 숙였다. 반면 태영호 전 최고위원은 윤리위 회의 소명자리에서도 ‘제주 4·3 사건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됐다’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윤리위 징계는 김재원 최고위원이 훨씬 무거웠다. 국민들의 감정보다 윤 대통령의 심기가 양형에 더 중요하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실제 태 전 최고위원은 자진사퇴 기자회견이 끝나고 ‘자신의 발언과 관련해 제주에 가서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3차례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윤심’ 논란은 선출직 최고위원 보궐선거에서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사고’ 상태로 공석이 유지된다. 하지만 태 전 최고위원 자리는 ‘궐위’가 돼 당헌·당규에 따라 30일 이내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후임을 선출하게 된다.
전 당원이 참여하는 전당대회와 달리 최고위원 보궐선거는 당 지도부와 상임고문, 사무총장, 시·도당 위원장, 당 소속 국회의원 및 시·도지사 등 1000명 이내의 전국위원들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지도부의 ‘의중’이 큰 영향을 미친다. 현재 거론되는 후보군 상당수는 ‘친윤계’ 인사다.
태영호 전 최고위원이 향후 공천 결과에 따라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대통령실과 여당으로서는 골칫거리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태 전 최고위원의 최고위원직 사퇴와 공천 가능한 경징계는 합의가 이뤄진 말 그대로 ‘정치적 해법’이다. 정부여당에서도 태 전 최고위원이 무슨 패를 쥐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며 “나중에 공천 과정에서 태 전 최고위원이 변심해서 이진복 정무수석의 음성이 담긴 녹취를 공개한다든지, ‘이 수석과 공천과 관련된 대화가 있었다’고 입장을 바꾸면 윤 대통령까지 위험해진다. 그러다보니 국민의힘이 태 전 최고위원에 계속 끌려 다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