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들 부인에도 ‘용산 당무개입 논란’ 수면 위로…당내 비주류·3지대 ‘바람막이’로 거론되지만 현실성 낮아
#용산 1호실의 위력
5월의 첫날이 밝자마자 국민의힘에서는 대형 악재가 터졌다. MBC는 3월 9일 태영호 최고위원이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자신의 보좌진들과 나눈 대화가 담긴 음성 녹취록을 5월 1일 공개, 용산의 당무개입 의혹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태 최고위원은 녹취에서 “(이진복) 정무수석이 나한테 ‘오늘 발언을 왜 그렇게 하냐. 민주당이 한일 관계 가지고 대통령 공격하는 거 최고위원회 쪽에서 한 마디 말하는 사람이 없냐. 그런 식으로 최고위원 하면 안 돼’ 바로 이진복 수석이 이야기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고 MBC는 전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대일 외교를 둘러싸고 야당에서 비판이 나올 때 최고위원들이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줘야 한다고 요청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태 최고위원은 또 “당신이 공천 문제 때문에 신경 쓴다고 하는데 당신이 최고위원 있는 기간 마이크 쥐었을 때 마이크를 잘 활용해서 매번 대통령한테 보고할 때 '오늘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정상적으로 들어가면 공천 문제 그거 신경 쓸 필요도 없어”라고 말했다. 이 수석이 태 최고위원에게 공천과 연관 짓는 언급을 했다는 취지의 보도였다.
녹취록이 보도된 직후 태 최고위원은 즉각 “과장이 섞인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태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을 통해 “본 의원실의 내부 보좌진 회의 녹취록이 유출돼 보도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 정무수석은 본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 관계 문제나 공천 문제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태 최고위원은 “녹취에 나온 제 발언은 전당 대회가 끝나고 공천에 대해 걱정하는 보좌진을 안심시키고 정책 중심의 의정 활동에 전념하도록 독려하는 차원에서 나온 과장이 섞인 내용”이라고 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정치권 인사들은 많지 않았다. 태 최고위원은 5월 3일 기자회견까지 갖고 “이 수석과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태 최고위원이 강하게 부인했지만 이를 둘러싼 억측과 추측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녹취록 보도 이후 태 의원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으로까지 이어진 논란의 한일 정상회담 등 윤 대통령 대일 외교 국면에서는 물론, 한미 정상회담 논평에서도 당내 다른 인사들보다 튀는 응원 발언을 쏟아냈던 사실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태 최고위원이)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반응도 뒤를 이었다.
태 의원은 한일 회담 후인 3월 23일, 윤 대통령 외교성과에 대해 “대단히 잘하고 있다”며 “당연히 우리가 5점제라고 보면 5점을 줘야 한다”고 했다. 한일 회담 이후 일본이 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외교 청서를 내자 “(한일 회담) 화답의 징표”라며 다소 무리한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최근 미국 국빈 방문 일정 와중에도 태 의원 칭찬 릴레이는 이어졌다. 윤 대통령 방미를 두고 “윤 대통령은 영업사원이 아니라 영업왕”이라고 했고, 의회 영어 연설에 대해서는 “영어 수준이 토플로 960점급”이라는 칭송을 하기도 했다.
태영호 최고위원 녹취록이 터지자 당내에서는 “최고위원도 저렇게 덜덜 떠는 판에 일반 의원들은 말해서 뭐하느냐”는 자조 섞인 말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천 국면을 코앞에 두고 올 것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 일찍 왔다는 것이다. 더욱이 리더십 부재에 시달리는 김기현 지도부가 이러한 불안감을 심화시키고 있고, 소문의 파괴력 역시 더욱 키워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출신인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5월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집권여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 지지율의 급락도 걱정하면서 공천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라면서 “(공천에 대한) 저런 압박을 당하면서 정치를 하는데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불행한 정치”라고 말했다. 태 최고위원 사례에서 보듯이 국민의힘 구성원들이 집권 여당으로서의 자존감을 상당 부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 조 대표 주장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도 “이진복 수석이 그런 말을 했다면 당장 물러나야 할 사안이다. 공천을 가지고 노골적으로 집권당 최고위원을 압박한 상황 아니냐. 공천 정국이 본격화하면 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면서 “태 최고위원 말대로 과장해서 말했거나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명색이 최고위원이란 사람이 그렇게 가벼운 발언을 해선 안 된다. 태 최고위원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잠 못 드는 집권당
용산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 지도부도 온도 차이는 있지만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은 절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녹취록 의혹에 대해 “그런 얘기를 전혀 나눈 적이 없다”고 5월 2일 잘라 말했다. 이 수석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천 문제는 당에서 하는 것이지 여기(대통령실)서 하는 게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 한다”며 “저한테 의견을 물어서 답을 할 수는 있겠지만, 누구에게 공천을 주고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수석은 같은 날 국회를 찾아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를 예방한 후에도 기자들에게 “당무 개입을 한 게 없다”며 “(태 의원실 관계자) 자기들끼리 한 이야기고 내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재차 부인했다.
당 지도부는 태 최고위원 측 해명을 존중해 당 차원 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일단 정했다. 용산의 공천개입이 논란을 넘어 기정사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을 긋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김기현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이 녹취록에 대한 입장을 묻자 5월 2일 “본인(태 최고위원)이 과장한 것이라고 했다. 당무 개입을 안 했다고 하는데 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답하면서 확전을 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국민의힘은 녹취록 사태 파장이 커지자 태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하기로 하는 등 사태를 가라앉히려는 노력을 쏟아내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번 일을 기점으로 용산 바람에 대한 주목도가 다시 극대화하고 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시 총선 국면에서 박근혜 세력을 쳐낸 뒤 친이 공천이 이뤄졌던 일, 박근혜 대통령 집권 때인 2016년 친박 공천 등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 개인 성향도 거론된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여당에 대한 부채 의식이 거의 없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윤 대통령은 정치인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첫 사례다. 윤 대통령이 여의도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적도 많다. 때문에 물갈이 공천과 관련, 당무개입은 못하더라도 1호 당원으로서 당에 대해 강력한 촉구는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인식을 국민의힘 대다수 의원들은 갖고 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국민의힘 내부가 뒤숭숭한 것은 용산발 바람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기 때문”이라며 “지난 전당대회에서 전당대회 룰이 갑자기 당원 100%로 바뀐 것이나, 인지도가 없었던 김기현 후보가 당선되는 과정에서도 용산의 힘을 확인했던 터라 용산 바람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용산 바람, 변수는?
용산 바람이 실제 불어올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결국 용산 바람을 막아낼 정치적 바람막이의 높이가 어느 정도 높이로 형성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의 외연 확장을 내세우며 분당이 아닌 당의 주도권 재획득에 공을 들이고 있는 당내 비주류가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유승민 전 의원을 정점으로 이준석 전 대표 등이 둘러싸고 있는 당내 비주류 세력은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 지지율이 급락한다면 다시 기회를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와중에 유 전 의원은 연일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그는 태 최고의원 녹취록과 관련, 5월 1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1인 사당으로 전락할 때부터 불법 공천개입 가능성에 대해 누누이 경고해왔다”며 “오늘 사건이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대통령실의 불법 공천개입이 아닌지, 공직선거법 제9조 2항에 따라 검찰과 경찰은 신속·공정하게 수사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당내 비주류는 당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유 전 의원이나 이준석 전 대표 등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바른정당, 새로운보수당 등을 연이어 만들어봤지만 3지대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결국 당내 비주류는 당내 야당의 역할을 하면서 집안에서 재기를 노릴 전망이다.
또 다른 바람막이 변수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밀어주고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끄는 방식으로 창당을 계획하고 있는 3지대다. 3지대가 현실화된 이후 혹여 덩치가 커질 경우, 용산 바람은 잦아들 수밖에 없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4월 26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우리나라가 당면한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신당이) 필요도 하고 가능했으면 좋겠다”면서 “추석 전에 창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새로운 출발을 하는 정당이 참신하고 소위 능력이 있다고 하는 후보자를 냈을 경우에 30석이 아니라 30석이 넘는 숫자도 당선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신당 창당 과정에서 굵직한 인물이 깃발을 들어줘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은 “지금 양당의 대선 주자가 누가 있는가”라고 되묻고는 “새로운 정당이라고 해서 그런 인물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3지대의 새로운 간판 인물이 나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런 변수들이 있긴 하지만 용산 바람을 막기엔 부족할 것이란 게 정가의 우세한 관측이다. 한 친윤계 의원은 “내년 총선은 결국 정권 심판론과 1야당 견제론이 부딪힐 것이다. 보수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에게 집결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총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