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두암 완치 후 선택한 액션, 넷플릭스 도전 무사히 마쳐…“투병,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었죠”
복귀 후 첫 단독 주연작으로 김우빈은 영화 ‘마스터’(2016)로 인연을 맺은 조의석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도전작 ‘택배기사’를 선택했다.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택배기사’는 극심한 대기 오염 탓에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미래의 한반도를 배경으로 산소와 생필품을 배달하는 전설의 택배기사 5-8과 난민 사월(강유석 분)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 천명그룹에 맞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디스토피아 드라마다. 극 중 김우빈은 압도적인 전투 실력으로 무장한 전설의 택배기사이자 세상을 뒤집어엎기 위해 모인 레지스탕스 ‘블랙나이트’의 일원이기도 한 5-8을 맡아 강도 높은 액션 신을 선보였다.
“조의석 감독님과 저는 이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도 중간중간 교류가 있던 사이였어요. 그러다가 제가 ‘외계+인’을 13개월 정도 촬영한 뒤에 바로 ‘우리들의 블루스’를 6개월 촬영하게 되다 보니 ‘우리들의 블루스’가 끝나면 휴식을 가질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제게 제안을 주셨던 거죠. 한편으론 제 건강에 대해 감독님께서도 많이 걱정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런 걱정과 다르게 제 체력이 너무 좋아졌더라고요(웃음). 거기다가 워낙 저를 많이 배려해 주셔서 정말 하나도 무리 없이 촬영할 수 있었죠.”
오히려 김우빈이 몸 상태보다 더 걱정했던 것은 넷플릭스판 ‘택배기사’ 속 5-8의 캐릭터 구축이었다. 원작 웹툰에서는 설정의 큰 줄기만을 따 왔을 뿐, 세부적인 대부분이 변경 또는 삭제됐기 때문에 주인공인 5-8도 원작과 다른 결을 새로 만들어나가야 했던 탓이다. 오랜 고민 끝에 김우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또 다른 후속작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상세하고 방대한 5-8의 전사를 만들어 냈다. 캐릭터에 대한 본인의 해석을 묻자 챗GPT 급으로 줄줄이 설명을 쏟아낼 정도로 5-8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제가 상상한 5-8은 난민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세상이 구축돼 있었을 거예요. 첫 기억의 순간은 부모님이 식량을 구하다가 돌아가신 이후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혼자 살아남아야 했고 어린 나이이지만 자기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그런데 부모님이 워낙 밝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분들이었는지 그 영향을 받아서 동료들과도 참 잘 지내죠. 그런데 좀 전까지만 해도 동료이고 친구였던 사람들이 식량 앞에서 한순간에 적이 되고 남이 되는 그 세상이 아파서 점차 자기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전사 구상이 완료되고 나면 이제부턴 본격적으로 연기에 돌입해야 했다. 2071년이 배경인 SF 장르 작품이다 보니 일부 실내 세트장 촬영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린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내로라하는 베테랑 배우들도 어색해하는 것이 이런 ‘CG(컴퓨터 그래픽) 연기’지만 김우빈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자신감이 넘쳤다고 한다. 앞서 또 다른 SF영화 ‘외계+인’으로 혹독한 CG 연기 신고식을 치러봤으니 어떤 연기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이상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 믿음이 깨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제가 ‘외계+인’을 13개월 동안 촬영했거든요. 그 안에서 하늘도 날아 보고, 빔도 쏴 보고 온갖 걸 다 해봤으니까 CG가 필요한 장면에 자신감이 있었어요(웃음). 영화 촬영을 끝내고 나서 ‘와, 난 이제 진짜 CG 연기는 뭐든 다 할 수 있겠다’ 이랬는데 역시나, 어렵더라고요(웃음). 5-8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도 CG로 처리된 거였는데 사실 처음엔 감독님께서 ‘네 몸에 안 좋을 테니 담배를 피운다는 설정은 다 뺄게’ 그러셨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5-8에겐 흡연자 이미지가 너무 잘 어울리는 거예요. 그래서 ‘CG 처리를 해주신다면 제가 연기로 해 보겠다’고 말씀 드려서 완성된 신이죠. 방송을 보시고 저희 부모님부터 제 주변 지인들까지 (진짜 흡연인 줄 알고) 많이 걱정해 주셨는데, 저는 또 그게 한편으론 기쁘더라고요(웃음).”
‘택배기사’는 김우빈에게 있어 여러 의미로 특별한 작품이었다고 했다. 조의석 감독과도 재회했지만 극중 5-8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군 정보사 소령 정설아 역의 이솜과도 KBS2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후 무려 13년 만에 다시 만났다. 모델 출신 배우들이 안방극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2010년대 초, 드라마 데뷔작을 함께 했던 그와 같은 분야에서 재회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찰 만큼 기뻤다는 게 김우빈의 이야기다.
“이솜 씨와의 재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죠. 저와 솜이 씨는 (연기의) 시작을 같이 했잖아요. 그때는 정말 많이 헤맸고, 감독님께도 많이 혼나면서 연기했어요. 그랬던 우리가 시간이 많이 흘러서 다시 건강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뭔가 동지애 같은 게 생기기도 하고…. 솜이 씨를 봤다가, 저를 봤다가 하면서 ‘우리 잘 살아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웃음).”
휴식기를 갖기 전 아직 20대였던 그때보다 김우빈은 더욱 단단하고 성숙해져 있었다. 비단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2017년 비인두암 진단 후 2년여 동안의 투병 생활을 마치고 완치 판정을 받아낸 그는 그간의 시간이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자신의 삶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고 회상했다.
“저는 이미 오래 전에 병원에서 ‘예전보다 더 건강해졌다’는 소견을 받았어요. 건강 검진도 매년 받고 있는데 모든 게 다 정상이래요. 체력도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고요. 투병 중에 정말 많은 분들로부터 걱정과 응원을 많이 받았는데, 그 힘을 받아서 좋아진 거라고 믿어요. 언젠가 책에서 본 글귀인데 ‘신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자에게만 시련을 준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련을 겪는) 우리는 선택 받은 사람이라고요. 제가 쉬는 기간에도 그 글의 덕을 많이 봤어요. 아마 신은 제가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휴식기를 주셨다고 생각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