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C 초반 협상테이블서 ‘삐끗’…김상식 감독 “좋은성적 내길 바라”
5월 18일 서울 SK는 “FA 오세근과 기간 3년, 첫해 보수 총액 7억 5000만 원(연봉 5억 5000만 원, 인센티브 2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라고 발표했다. 그 전날인 17일에는 4년 연속 최우수 수비상을 받은 문성곤이 KT와 5년간 첫 해 보수 총액 7억 8000만 원의 조건에 계약을 맺고 팀을 옮겼다. KGC로선 양희종의 은퇴에다 오세근, 문성곤의 이적으로 팀 전력에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세근이 서울 SK로 전격 이적하게 된 내막을 살펴본다.
18일 안양 KGC 김상식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선수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12년간 안양에서 커리어를 쌓았던 최고의 토종 빅맨 오세근(36·200cm)이 서울 SK와 FA 계약을 맺게 됐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양희종과 함께 안양 KGC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오세근이라 팬들도 쉽게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2011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KGC 유니폼을 입은 오세근은 안양에서 네 차례의 우승을 이끌며 왕조의 산증인으로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김태술, 박찬희, 이정현 등 KGC의 황금기를 이끈 우승 주역들이 팀을 떠났어도 오세근은 양희종과 함께 KGC를 지켰다. 자연스레 오세근은 양희종의 뒤를 이어 KGC 두 번째 영구결번 후보로 꼽혔다. ‘원클럽맨’으로 남을 것 같았던 오세근은 왜 정들었던 팀을 떠나 SK로의 이적을 결정했을까.
KBL은 35세 이하의 연봉 순위 30위 이내인 선수를 FA로 영입하려면 원소속팀에 전 시즌 보수의 200% 또는 보수 50%와 보상 선수 1명을 내줘야 한다. 36세인 오세근은 이에 해당되지 않아 타 팀 이적시 KGC가 보상받을 게 하나도 없다. 즉 이적 관련해서 자유로운 신분이란 의미다.
오세근이 FA 시장에 나오면서 ‘빅맨’이 필요한 팀에선 오세근의 움직임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구 관계자들은 오세근의 잔류를 예상했다. 12년을 한 팀에 몸담았고, 오세근이 안양 KGC를 향한 충성도가 크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잔류할 것으로 보였던 오세근이 서울 SK와 협상 테이블을 갖게 되면서 균열이 일어났다. KGC 구단에서도 오세근과의 계약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했지만 선수의 마음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오세근은 자신의 개인 SNS에 “FA 협상을 하며 큰 실망과 허탈감을 느꼈다”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오세근은 왜 친정팀과의 협상 과정을 ‘실망’과 ‘허탈감’으로 표현했을까.
오세근이 KGC와 처음으로 FA 관련 협상을 시작한 건 5월 7일부터였다. 이 자리엔 구단 단장, 사무국장이 함께 참석해 선수의 의견과 구단의 입장을 주고받았다. 그때 처음 나온 구단의 제시액이 계약 기간 3년에 첫 시즌 보수 총액 7억 원이었다. 오세근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다. 당시 KGC 단장은 해외 출장 일정으로 잠시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
이후 5월 13일 배병준의 결혼식이 있었다. 이날 오세근은 결혼식장에서 KGC 사무국장과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고, 단장이 귀국하는 17일 오후 1시에 구단 사무실에서 다시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17일 KGC 단장, 사무국장, 그리고 오세근이 만난 자리에서 단장은 오세근에게 최고 대우인 8억 원을 약속했다. 오세근은 가족들과 상의 후 답을 하겠다고 말하고선 사무실을 나섰다.
18일 오전 안양 KGC 체육관에서 오세근의 매체 사진 촬영이 있었다. KGC 구단은 8억 원에서 1000만 원 올린 8억 1000만 원을 첫 시즌 보수 총액으로 제안했고, 계약 기간은 3년이든 5년이든 오세근이 쓰고 싶은 대로 정하라고 제안했다. 인센티브도 구단의 설명에 의하면 선수한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적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오세근은 SK와 협상을 시작한 이후였고, SK를 만나면서 마음의 중심축이 새로운 팀으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오세근은 KGC 구단과의 협상 자리에서 새로운 팀과 환경에서 또 다른 우승을 달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KGC는 선수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아직 SK와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다면 안양 KGC에서 남은 선수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영구결번도 이어가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오세근은 SK로의 이적을 결정했고, 18일 오후 5시59분에 서울 SK는 보도자료를 통해 오세근의 영입을 발표하게 된다.
농구계에선 오세근의 SK행 이후 다양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중 KGC가 오세근에게 계약 기간 1년을 제안했다는 내용이 존재한다. KGC 김성기 사무국장은 왜 그런 말이 나돌고 있는지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이건 오세근한테 확인해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린 처음부터 오세근에게 3년을 제안했고, 이후 3년이든 5년이든 선수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오세근에게 처음으로 협상하는 자리에서 3년에 첫 시즌 보수 총액 7억 원을 제안했던 건 다른 FA 선수들과의 계약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이후 문성곤이 빠져나가면서 예산에 여유가 생겼고, 오세근에게 최고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한 게 8억 1000만 원이었다. 우리가 1년 계약을 제안했다는 건 오세근이 다른 팀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말을 듣고 단장님이 정 그러면 1년만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라고 농담처럼 말했던 게 와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오세근이란 팀의 상징적인 선수에게 1년만 제안할 수 있겠나. 정말 말이 안 되는 소문이다.”
KGC 구단은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했다고 하지만 선수가 기대했던 수준에 못 미쳤을 수도 있다. 자신에게 처음부터 최고 대우를 약속하고, 계약 기간과 인센티브에서 조금 더 여유를 줬다면 오세근도 크게 흔들리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KGC가 협상 후반에 금액을 올리면서 오세근 영입에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한 번 돌아선 마음을 되돌리기엔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농구계에선 믿고 따랐던 선배 양희종의 은퇴와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 후보였던 변준형의 군 입대, 그리고 문성곤의 KT 이적 등이 오세근의 SK행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한다. 그가 KGC 구단에 “새로운 팀에서 우승을 해보고 싶다”라고 말한 부분도 다음 시즌 KGC에선 우승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SK엔 포스트 장악력이 뛰어난 자밀 워니가 존재한다. 자밀 워니가 SK가 잔류한다면 오세근의 체력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더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한몫했을 것이다.
안양 KGC 구단은 지난 시즌 통합 우승을 일군 김상식 감독한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한다. 김성기 사무국장은 “핵심 코어 역할을 했던 선수들의 이탈로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감독님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면서 “감독님에게 부담만 안겨드린 것 같아 죄송할 따름”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19일 전화 통화가 이뤄진 KGC 김상식 감독은 오세근, 문성곤 등 주축 선수들의 이탈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프로는 비즈니스이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수의 선택을 두고 감독이 인간적인 정으로만 호소하기 어렵다. (오)세근이가 SK와 계약하기 전 내게 전화해서 SK로 갈 것 같다고 말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서 속상하더라. 감독 입장에선 세근이가 꼭 남아주길 바랐지만 이미 결정난 것이고, 그 결정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 선수한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공식 발표가 난 다음 세근이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15년 만에 친정팀인 안양에 돌아와서 양희종, 오세근 등 좋은 선수들과 함께 동아시아 슈퍼리그 포함 ‘3관왕’을 이뤘다. 내가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세근이가 많은 도움을 줬다. 이젠 SK 선수가 됐으니 가서 잘하고 좋은 성적을 내길 바랄 뿐이다.”
김상식 감독은 오세근 이야기를 꺼낼 때 “이렇게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면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양희종, 변준형, 오세근, 문성곤까지 주축 선수들이 모두 떠난 KGC의 다음 시즌이 밝지만은 않지만 김 감독은 새로 영입한 선수들, 그리고 기존 선수들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팀을 새롭게 재정비해나가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