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먹이려 할수록 더 안 먹어…식사·간식 시간 엄격히 룰로 정해야 스스로 챙겨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을 때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지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아이 스스로 몸무게를 조절하기 위해 먹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데 이럴 때 억지로 먹이면 비만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식욕을 떨어뜨리는 병이 있는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고 확인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병이 빈혈인데 치료하면 잘 먹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밥 안 먹는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 특별한 문제가 없습니다. 제일 먼저 알아둘 점은 억지로 먹이지 말라는 겁니다. 아이가 억지로라도 먹으면 엄마 입장에서 당장은 흐뭇하겠죠. 하지만 결국 엄마에게는 먹이는 게 일이 되고 아이에게는 먹는 게 고역이 돼 갈수록 더 큰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밥 먹이는 기본 원칙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음식을 줄지는 부모가 정하고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을지는 아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먹는 습관을 서서히 들이면서 식사 시간을 정해서 대충 30분 정도 지나면 식탁을 치우세요. 아이가 식사 시간에 많이 먹지 않았다고 수시로 음식을 줄 생각은 하지 말고 다음 간식 때까지 기다리게 해야 합니다. 식사 적게 먹었다고 간식의 양을 더 많이 주지도 마세요. 간식으로 배를 불리면 다음 식사는 또 안 먹습니다. 그리고 적게 먹은 아이가 다음 식사 시간에 배고파하면 그때 먹는 양을 늘리세요. 절대 강제로 먹이지 말고 먹는 것을 가지고 아이와 거래를 하지도 마세요.
식사는 자기가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지 부모를 위해서 먹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3일간 밥 안 먹고 참을 수 있나요? 배고픔은 어른도 참지 못합니다. 밥 잘 먹게 하는 불변의 비법은 ‘배고프면 다 먹는다’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그나마 열심히 먹여서 어느 정도 몸무게가 늘었는데 식탁을 치우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 고민하는 부모도 많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순간 게임 끝입니다. 부모가 억지로 주지 않았다면 아이 스스로 잘 먹었을 겁니다. 실제로 부모가 기를 쓰고 먹이면 더 안 먹습니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식구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겁니다. 엄마는 아이의 식사 규율을 지키는데 저녁에 들어온 아빠가 먹을 것을 주면 식사 시간에 계속 먹지 않고 버틸 수 있습니다. 먹는 것 가지고 부모가 너무 쩨쩨하게 구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내 아이의 부모기에 쩨쩨하게 굴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아이에게 꼭 필요한 건데 그 누가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며칠을 기다려도 더 안 먹고 버티니 큰일 날 거 같다고 고민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당연히 큰일이죠. 부모가 그런 고민을 하는 게 말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읽는 데 귀신입니다. 고민하는 부모를 보면 아이들은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것을 정말 잘 안답니다.
그럼 간식도 주지 말까요? 그건 아닙니다. 먹지 않어서 식사를 치우더라도 간식은 줘야 합니다. 다만 간식도 평소 먹는 양 정도만 줘야 하고 아이가 더 달라고 해도 더 주면 안 됩니다. 다음 밥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먹거리가 집안에 널려 있더라도 아이가 언제라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두면 안 됩니다. 식사 시간과 간식 시간 외에 먹을 것은 반드시 부모의 허락을 받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가정의 룰로 정해야 합니다. 아이는 식사 시간과 간식 시간 외에는 부모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족 하나 붙입니다. 한동안 밥 안 먹는 아이들 행동치료부터 시작해서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치료보다 100배 더 효과 있는 방법은 아이 스스로 먹게 내버려 두는 겁니다. 배고프면 다 먹습니다. 다만 먹지 않는 습관이 든 아기들은 수주일간 더 안 먹고 버틸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더 잘 먹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모가 옆에서 노심초사하면 아이들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안 먹고 버팁니다. 그래서 밥 안 먹는 아이들의 경우 그들보다 부모들 치료가 우선이란 말을 하곤 합니다. 아이가 특별히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하시고 안 먹으면 놔두면 됩니다. ‘배고프면 먹는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정훈은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다.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교육이사, 대한소아과개원의협의회 모유수유위원회 위원장, 대한소아청소년과개원의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하정훈소아과의원 원장이다. 베스트셀러 육아지침서이자 육아교과서라 불리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이기도 하다.
하정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