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만화서 출발해 한·중·일 뒤흔든 메가 IP로 성장…굿즈 시장 넘어 일본 극장가서 1000만 관객 동원

일본 박스오피스 역대 전체 순위로 범위를 넓혀봐도 주목할 만한 성적이다. 9월 13일 기준 흥행 수입은 역대 일본 흥행 순위 21위에 해당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씨의 아이'(약 142억 3000만 엔)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무비'(약 140억 2000만 엔), '극장판 주술회전 0'(약 138억 엔) 등을 넘어선 수치다. 현재도 상영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종 흥행 순위는 이보다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의 흥행이 주목받는 또 다른 배경으로는 이 거대한 프랜차이즈의 출발점이 꼽힌다. 치이카와는 거대 출판사나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처음부터 기획해 만든 캐릭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담곰'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노가 2020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연재하기 시작한 짧은 만화에서부터 시작됐다. 소셜미디어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뒤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2022년에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영역을 넓혔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높아진 인지도는 곧 상품 시장으로 이어졌다. 굿즈 판매를 시작으로 일본과 해외를 아우르는 팝업스토어와 각종 브랜드 협업이 잇따르면서 치이카와는 단순한 인기 콘텐츠를 넘어 거대한 소비재 IP로 성장했다. 실제로 치이카와는 일본의 캐릭터·라이선스 업계가 선정하는 '일본 캐릭터 대상'에서 2022년에 이어 2024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올해 네 번째 대상 수상과 함께 이 상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열풍은 일본 밖에서도 빠르게 번졌다. 치이카와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에서는 2024년 상하이에 문을 연 첫 공식 팝업스토어가 개장 후 사흘 동안 약 800만 위안(약 16억 4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고, 입장을 기다리는 인원이 한때 7000명 가까이 불어나 현지 경찰이 대기 행렬을 통제했을 정도였다. 국내에선 지난 2월 용산 아이파크몰에 첫 공식 상설 굿즈 매장 '치이카와샵'이 입점돼 최근까지도 주말에 대기줄이 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귀여운 외모를 가진 캐릭터라는 점에서 치이카와의 굿즈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작품 자체로 접근하면 '아동용 캐릭터물'로만 보기는 어렵다. 주인공 치이카와와 가르마(하치와레), 토끼(우사기) 등 등장인물들은 귀여운 외모와 달리 꽤 고단한 삶을 산다. 돈을 벌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토벌'에 나서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익숙한 존재가 괴물로 변하거나 평온했던 일상이 위협받는 일도 벌어진다. 출판사인 고단샤 역시 공식 작품 소개에서 치이카와의 삶을 '즐겁고 애틋하면서도 조금 하드한 나날'이라고 표현한다.
말랑말랑한 캐릭터들의 평온한 일상 안에 노동의 어려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생존의 위협에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심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아무렇지 않게 뒤섞여 있는 치이카와는 성인 팬들 사이에서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에 가깝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첫 극장용 영화인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이런 치이카와 특유의 '매운맛'이 강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 간극은 치이카와라는 IP가 가진 가장 독특한 경쟁력으로도 꼽힌다. 겉으로는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만큼 단순하고 귀여워 상품화하기 쉽지만 작품 안으로 들어가면 성인도 공감하기 쉬운 사회의 불안과 부조리, 인간관계의 복잡함, 삶을 살아가며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뒤섞여 있다. 어린이까지 소비자로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상품성을 갖추면서도 이야기는 성인 팬들이 계속 파고들 만한 깊이를 놓치지 않는 셈이다. 일본을 넘어 한국과 중국에서도 치이카와가 빠르게 팬층을 넓힐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소비층의 경계를 쉽게 허무는 특유의 확장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폭넓은 소비층을 끌어안으며 국내에서도 탄탄한 팬덤을 만들어온 치이카와가 오는 9월 30일 극장가에서도 그 힘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추석 연휴 전후로 '타짜: 벨제붑의 노래', '부활남: 더 레드', '암살자(들)', '가능한 사랑' 등 쟁쟁한 작품들이 관객을 만나는 만큼 경쟁은 만만치 않다. 다만 앞서 팝업스토어와 상설 매장에 긴 대기 행렬이 만들어질 정도로 팬덤과 구매력이 확인된 만큼 굿즈를 사기 위해 줄을 섰던 팬들이 실제 영화 관객으로 얼마나 이어지느냐가 흥행 성패를 가릴 것으로 보인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