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계 중진 “이재명으론 당 위기 극복 어렵다” 전망…당 대표 흔들기에 친명계도 불만 “결국 밥그릇 때문”
“이재명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비명계 중진 의원이 5월 1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가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라면서 건넨 말이다. 그는 “연이은 악재 때문에 민주당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 압도적인 의석수를 갖고도 윤석열 정부 실정을 질책할 처지가 못 된다. 많은 재판과 검찰 수사를 남겨두고 있는 이 대표로는 당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어 보인다”면서 “이 정도로 당에 어려운 일들이 생겼는데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던 대표가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개인 사법 리스크 때문에 당 대표직을 유지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했다. 그는 이 대표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총선을 앞두고 당을 떠나는 자들이 크게 많아질 것”이라고 점쳤다.
비명 진영 뇌관은 5월 14일 열린 쇄신 의원총회 이후 터졌다. 이날 의원총회에선 같은 날 탈당한 김남국 의원을 향한 성토가 봇물을 이뤘다. 당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비판 속에 김 의원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이날 의총에 참석했던 한 재선 의원은 “김 의원뿐 아니라 탈당을 묵인해준 이 대표에게도 쓴소리가 나왔다. 이 대표로선 상당히 불편했을 자리”라고 귀띔했다.
실제 김 의원 탈당 소식 직후 비명 진영에선 이 대표의 ‘김남국 지키기’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재명 대선캠프 때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던 김 의원은 이 대표 최측근 그룹인 ‘7인회’ 멤버다. 동시에 강경파 ‘처럼회’ 소속이기도 하다. 이 대표 신뢰가 두텁다는 평가다. 앞서의 비명 중진 의원은 “이 대표와의 공감대 없이 혼자서 탈당을 결정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 대표가 선당후사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많다”고 했다.
민주당은 쇄신 의총 후 결의안을 발표했다. △개별 의원 탈당으로 책임 회피하지 않을 것 △윤리규범 엄격히 적용할 것 △윤리기구 강화 △국회의원 재산 투명성 강화 △당의 근본적 혁신 등이 담겼다. 문제는 이번 논란의 당사자인 김남국 의원 이름이 빠졌다는 것이다. 채택이 유력시되던 김 의원 윤리위 제소 건도 없었다. 김 의원 탈당 후 불이 붙었던 이 대표 비토 기류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5월 15일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리위 제소를 결의안 첫 번째 항목에 올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빠졌다”며 “윤리특위 위원장이 민주당 소속 변재일 의원이니 빨리 소집해 김남국 의원 건만 처리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는데도 결의안에선 김 의원 이름이 아예 빠졌다”고 했다.
5월 16일 같은 당 김종민 의원은 BBS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김남국 의원이 이재명 대표랑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인간적으로야 (안타까운 마음이) 들겠지만 원래 지도자라는 게 그런 것”이라며 “읍참마속이라는 말이 왜 생겼겠느냐, 자기 가까운 측근이라 하더라도 우리 당을 위해서 해야 될 거는 해야 그게 지도부”라고 했다.
당 내부에선 더욱 흉흉한 목소리가 들린다. 방송에선 최대한 정제된 말이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표 퇴진을 전제로 한 비대위 출범은 이제 그리 새로운 말이 아니다. 재창당에 준하는 혁신, 당명 개정, 당대표 재신임 등 다양한 견해들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엔 ‘이재명의 민주당으론 총선을 치르기 힘들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유력한 차기 주자 이재명 대표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는 게 비명계의 주장이다. 한 비명 의원의 말이다.
“지금까진 검찰의 야당 탄압 프레임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김남국 건은 그렇지 않다. 이 대표의 ‘측근 정치’가 노골화한 것이다. 당을 사지로 몰아넣은 김 의원을 감싸고 돌지 않았느냐. 총선 공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결국 친명만 살아남을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이 대표가 원칙과 상식을 저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
비명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결국 5월 17일 김남국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하기로 결정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당 차원의 조사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더 지체할 수 없다”며 “이재명 대표 지시로 윤리위에 제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변인은 “상임위 활동 시간에 코인 거래를 한 건 김 의원이 인정했다”며 “국회의원의 공직자 윤리규범 엄중하게 준수할 의무가 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 윤리위에 제소할 필요가 있다는 이 대표 말씀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지시를 강조하며 당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진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친명계도 불만을 쏟아내긴 마찬가지다. 특정 의원 일탈을 빌미로 당 대표를 지나치게 흔들고 있다는 이유다. 한 친명 초선 의원은 “결국엔 이 대표가 있으면 밥그릇 뺏길까 걱정이 된다는 말 아니냐.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재신임하고 퇴진한다면 그 어느 대표가 임기를 지킬 수 있겠느냐”면서 “오히려 의원들의 여론을 반영해 서둘러 윤리위 제소를 지시한 것은 평가받을 일”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비명계 중진 의원은 “지금 김남국 암호화폐 사건으로 이재명 대표를 물러나라고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이 대표의 안일한 대응, 온정주의적 행태가 당을 더욱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걸 많은 국민들이 지적하고 있다”면서 “더 이상 당이 특정 계파를 지지하는 강경 지지층에 끌려 다녀선 안 된다. ‘개딸’을 끊어낼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당을 떠나라”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당 친명과 비명 간 거리는 더 이상 좁히기 힘들어 보인다. 김남국 의원은 그 트리거 역할을 했다. 총선 공천 및 당 헤게모니 다툼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 쪽의 양보도 힘든 상황이다. ‘치킨 게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서 민주당의 분당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태동하고 있는 3지대 움직임이 민주당 내홍의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