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자격요건 확대 및 사외이사 후보에 관료 출신 포함…“관치 위한 물밑작업 아니냐” 비판 나와
KT 이사회는 지난 9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일부 변경 및 사외이사 선임을 위해 오는 30일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KT 이사회는 앞서 4월 ‘뉴 거버넌스(New Governance) 구축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표이사·사외이사 선임 절차와 이사회 역할 등에 대해 점검하고 대외적으로 신뢰받는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KT 이사회에 따르면 바뀌는 정관에는 △대표이사 후보 심사위원회를 상설 위원회로 전환 △CEO 연임 우선심사제도 폐지 △후보자 자격요건 일부 변경 △대표 선임 절차에 전문기관 추천 공개모집과 주주 추천 후보군 포함 △대표이사 후보자 주주총회 의결 기준 상향 △사내이사 수 축소(3인→2인) △복수 대표이사제 폐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KT 이사회는 이번 정관 개정을 통해 다양한 채널로 대표이사 후보자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대표이사 후보자 의결 기준 향상으로 대표이사 선임 정당성을 강화하고 외부 낙하산을 방지할 계획이다. 1인 중심 경영 체계는 대표이사의 책임이 강화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표이사 후보자 자격요건이 일부 변경된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쪽도 있다. KT 이사회는 정관상 대표이사 후보자의 자격요건을 △기업경영 전문성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역량 △산업 전문성 등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문제가 되는 요건은 산업 전문성이다. 기존 정관에 있던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를 ‘산업 전문성’으로 확대·완화한 것.
이를 두고 관치를 위한 물밑 작업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KT는 지난 2월 차기 대표이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비통신 출신이거나 관료 출신인 인사가 후보군에 상당 부분 포함돼 있었다. 이 중 윤진식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정보통신 분야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숏리스트에서 제외됐다. 자격요건 변경이 이 같은 사례를 의식한 개정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KT는 그룹이 영위하는 사업이 금융, 미디어, 부동산 등으로 다양해지는 상황이기에 이에 대한 이해와 유관 경험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정관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낙하산 인사와 관계없는 조치라고 선을 긋고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ICT는 모든 산업에 융·복합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산업과도 같다. 빅데이터, IoT, AI, 클라우드, 로봇 등 이름만 들어도 미래 먹거리임을 알 수 있는 산업들은 모두 ICT 기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ICT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이 없다면 대표 역할을 하기 상당히 어렵다. 중대한 의사 결정을 할 때 비즈니스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부분을 삭제했다. ICT에 깊은 이해도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행위라고 본다. KT 측의 주장은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KT새노조는 대표이사 후보자 주주총회 의결 기준 상향하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KT 이사회는 대표이사 후보자에 대한 주총 의결 기준을 기존 보통결의(의결 참여 주식의 50% 이상 찬성)에서 60% 이상 찬성으로 상향할 계획이다. 후보가 연임일 경우 주주총회 특별결의(의결 참여주식의 3분의 2 이상 찬성)를 통해서 선임될 수 있다.
KT새노조는 “KT 기업지배구조의 유일한 장점은 분산된 소유구조다. 그러나 특별결의로 국민연금공단, 현대차 등 대주주에 사실상 CEO 선임 거부권을 주는 셈이 됐다. 특히 국민연금 눈치보기가 심해져 관치 경영의 부활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8.27%, 현대차는 7.79%를 KT 지분으로 보유하고 있다.
사외이사 후보에 관료 출신 인사가 포함된 것이 비판의 정점을 찍고 있다.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는 7명이 추천됐다. 그중 최양희 한림대 총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일했다. 윤종수 전 환경부 차관도 이명박 정부 시절 인사다.
이 같은 결정은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KT는 민영화에 성공했지만 국가 경제 측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여전히 관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정이 비슷한 포스코그룹이 최근 대통령 행사 때마다 제외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취임한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을 향한 무언의 퇴진 압박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KT도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만들어진 뉴 거버넌스 구축 TF 외부 위원으로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포함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곳곳에서 관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한 KT가 떨어진 신뢰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시주총을 통해 위 안건들이 의결되면 KT는 새로 선임될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바뀐 정관에 따라 차기 대표이사를 뽑을 계획이다.
KT새노조는 “KT가 처한 위기 상황은 정관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의 자질과 도덕성의 문제였음을 수도 없이 강조해 왔다. 그런데 KT 이사회는 뽑으라는 CEO는 뽑지 않고, 대행 체제를 세우더니 정관에도 없는 TF를 만들어 난데없이 낙하산 CEO 등장에 편리하게, 또 이권 카르텔 참호 구축에 용이하게 정관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