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최적요금제 안내하고 로밍 요금 내려라”…‘역대 최고 실적 물건너가나’ 통신사들 볼멘소리
#통신사에 칼 빼든 정부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제2차관은 지난 4월 18일 취재진과 만나 “5G 시작 요금에 대한 부분을 살펴봐야겠다”고 밝혔다. 최근 통신 3사가 연달아 출시 중인 중간·청년·시니어 요금제뿐만 아니라 5G 기본료 격인 ‘최저요금제’를 인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그간 5G 중간요금제 추가, 알뜰폰 활성화 등 간접적인 접근으로 통신료 인하책을 펼쳤지만 이번에는 직접적인 요금 인하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정부가 직접적인 요금 인하에 나섰던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이 마지막이다. 이명박 정부는 당시 통신 기본료를 기존 1만 2000원에서 1만 1000원으로 내리고 가입비를 줄였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통신료 20% 절감’ 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통신사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정권 말에야 시행될 수 있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직접적인 요금 인하는 파장이 커 10년 이상 시행되지 않았다”며 “요금 인하를 시도한다면 통신사 반발이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규 차관은 이날 로밍·알뜰폰·최적요금제 안내 등 다양한 통신료 인하 방안을 언급했다. 전방위에서 통신료 인하 공세를 펼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박 차관은 “전문가 간담회에서 로밍 요금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며 “최근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 종식되며 일상이 정상화되고 해외 출국자가 많아지는 만큼 로밍 요금에 문제가 있는지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박윤규 차관은 또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리브엠’에 대한 환영과 함께 금융권 알뜰폰 추가 진출에 대한 제재도 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쟁력 있는 대형 사업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차관은 “금융권뿐만 아니라 대형 사업자들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한다면 환영할 일”이라며 “1000만~2000만 가입자를 지닌 통신 3사에도 점유율 제한 등 조건을 붙이지 않는데 가입자 40만 명에 불과한 리브엠에 제한을 가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윤규 차관은 통신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제도인 ‘최적요금제 안내’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최적요금제 안내란 가입자들의 데이터 사용량을 분석해 과다한 요금제를 쓰고 있다면 적절한 요금을 문자메시지(SMS) 등을 통해 의무적으로 안내하도록 하는 제도다. 최적요금제 안내는 현재 유럽연합(EU) 등지에서 시행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의 경우 요금 고지서에 최적요금제를 안내하고 있지만 고지서를 자세히 뜯어보는 소비자가 적어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다.
통신사들의 높은 수익성은 가입자들이 실제 데이터 사용량보다 과다한 요금제를 사용하는 데 기인한다. 과기부에 따르면 전체 5G 사용자의 월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지난해 말 기준 27.7GB(기가바이트)였다.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는 월평균 50.4GB를 사용했다. SK텔레콤 기준으로 110GB 요금제인 ‘5GX 레귤러’는 월 6만 9000원이고, 무제한 요금제 중 가장 저렴한 ‘5GX 프라임’은 8만 9000원이다. 즉, 대부분의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는 월 2만 원을 추가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 비중은 지난해 말 39.6%에 달했다.
과다한 요금제를 사용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통신사 공시지원금 제도에 있다. 휴대폰을 변경할 때 공시지원금을 최대로 받기 위해서는 최상위 요금제를 사용해야 한다. 가입 당시 요금제의 의무 사용 기한은 6개월이지만 적지 않은 가입자가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요금제를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통신사가 6개월이 지났음을 별도 공지해주지 않고, 수십여 개에 달하는 요금제를 살펴본 후 최적요금제를 선택하는 것도 번거로운 작업이다.
가입자로서는 매월 사용한 데이터량과 최적요금제를 안내받고, 아낄 수 있는 금액도 고지 받으면 하위 요금제로의 변경이 수월해진다. 통신사들이 최근 중간요금제를 다수 출시하면서 선택지도 더욱 넓어졌다. 통신업계 다른 관계자는 “통신사들 입장에서는 스스로 수익을 떨어뜨리는 방안을 고지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이에 반발한다면 가입자를 ‘호구’ 삼는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며 “막아설 명분이 없어 가장 두려워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역대 최고 실적 예상했는데…
과기부의 정책으로 인해 통신사 사이에서는 수익성 저하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당초 통신 3사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을 4조 6800억 원대로 전망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에 해당하는 수치다. 통신 3사는 지난해 총 4조 3835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바 있다.
통신 가입자 5000만 명이 월 1000원을 덜 낸다면 통신사들의 연간 영업이익은 총 6000억 원이 줄어든다. 특히 이번 통신료 인하 정책은 과기부가 아닌 대통령실 차원에서 이뤄지는 정책이다.
통신사 내부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로밍 요금제가 비싼 것 같다고 하는데 비싸다는 기준도 애매하고, 해외 통신사의 로밍 요금이랑 비교도 해보지도 않고 너무 즉흥적으로 정책을 펼치는 느낌”이라며 “정부의 목적은 통신비 부담 경감이라고 하지만 이미 알뜰폰을 통해서도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고 있는데 민간 기업이 하는 서비스를 정부가 정하는 것이 시장경제에서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편에서는 “시장을 중시한다던 윤석열 정부가 기업의 가격 책정에 이토록 깊게 간섭해도 되는 것이냐”는 격앙된 반응도 나온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가입자들의 날 선 여론 사이에서 통신사 운신의 폭은 좁다. 통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5G 설비 투자도 끝나고 ‘진짜 5G’로 20배 빠르다고 홍보해 왔던 28GHz 대역도 포기한 통신사들이 통신료 인하에 반발해도 차가운 반응만 얻을 것”이라며 “정권 초기에 통신료 인하 드라이브가 강력히 걸려 통신사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