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약 3000명, 예산 4733억 원…‘유권해석’ ‘조사권’ 가진 준사법기관, 여·야 정치권과 갈등 겪기도
#3·15 부정선거 계기로 '독립'
선관위 전신은 1948년 5·10 총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회 선거위원회가 총선을 관리하기 위해 처음 구성됐고, 그해 6월 26일 선거위원회가 내무부에 설치됐다. 제1공화국에서 국회의원, 대통령, 시·읍·면의회 의원 등을 뽑는 공직선거는 선거위원회에서 관리했다. 이 선거위원회는 독립적 기관이 아니라 내무부 소속이었다. 내무부 장관이 선거사무를 맡는 공무원을 위촉 관리했다. 관권에 의한 부정선거가 만연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1960년 3·15 부정선거는 4·19혁명 도화선이 됐고, 이승만 정권은 몰락했다.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1960년 6월 15일 선거위원회가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 격상했다. 하지만 이듬해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9개월 만에 해체됐다. 이후 제3공화국을 출범시킨 제5차 개정 헌법은 ‘선거 관리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고 설치 근거를 명문화했다. 이를 기반으로 1963년 1월 16일 선거관리위원회법이 제정·공포됐고, 그해 1월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 창설됐다.
선관위는 창설 이후 50년간 조직 규모를 키워왔다. 1963년 선관위는 전국을 통할하는 중앙선관위를 비롯해 △시·도 선관위 11개 △지역선거구 선관위 131개 △구·시·군 선관위 65개 △투표구 선관위 7400개로 조직됐다. 이후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쳐 중앙선관위와 17개 시·도 선관위, 251개 구·시·군 선관위, 3505개 읍·면·동 선관위로 확대 개편돼 현재 운영되고 있다. 선관위 직원 수는 1963년 348명으로 시작해, 2022년 2961명으로 늘어났다. 예산은 2억 5400만 원에서 올해 4733억 원으로 증가했다.
선관위는 1991년부터 지방의원선거를 시작으로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2000년 교육감 및 교육위원 선거 △2004년 주민투표 △2005년 당내 경선 △2006년 국립대학총장 선거 △2006년 주민소환투표 △2008년 당 대표 경선 등 관리 대상도 넓혀왔다. 1990년까지는 대통령, 국회의원, 국민투표만 관리했다. 또 2009년 재외선거제도가 도입되면서 2011년 4월 28개국에 55명의 재외선거관리관을 파견했다.
특히 ‘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간 선거까지 관리하고 있다. 2005년 산림조합장과 농·수·축협장 선거를 시작으로 △2007년 중소기업중앙회장 △2010년 수협중앙회장 △2011년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위탁받아 관리했다. 정비사업조합 및 공동주택 임원선거, 새마을금고 임원선거, 시·군·구 체육회장 선거까지 관리하며 위탁 영역이 계속 늘어났다.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선거관리관 제도를 방만하게 운영했다고도 지적했다. 6월 6일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해외에 선거관리관을 파견했으나 투표율 제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며 “특혜 채용 의혹에 더해 ‘특혜성 해외 출장’이라는 의혹이 나올 정도로, 파견 인력 선정의 투명성과 형평성의 문제는 물론 파견 국가에도 일정한 기준도 없었다고 한다.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인 선관위의 병폐를 반드시 도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선관위는 2011년부터 2022년 대선까지 총 247억 95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146명의 선거관리관을 파견했다. 내년 22대 총선을 위해서도 1년 단기 선거관리관 22명을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베트남, 호주, 필리핀, 프랑스, 독일에 파견했다. 예산은 올해 19억 8700만 원을 배정했다.
#선관위 조사권, 기본권 침해 소지
선관위는 유권해석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선출직을 뽑는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9조 공무원 선거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당시 야당은 선관위 판단을 근거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선관위와 민주당 악연은 문재인 정부로도 이어졌다. 2018년 4월 선관위는 김기식 금감원장의 19대 국회의원 임기말 ‘셀프 후원’에 대해 위법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가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하면서 나온 결정이었다. 결국 김기식 금감원장은 임명된 지 2주 만에 사임해야만 했다.
국민의힘도 선관위와 수차례 갈등을 겪었다. 선관위는 2021년 4·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한 시민단체 캠페인 문구 ‘보궐선거 왜 하죠?’를 두고 선거법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보궐선거 원인이 민주당에 있음을 지적하는 문구였지만 선관위 유권해석으로 인해 막히자 국민의힘은 반발했다.
또 ‘권력형 성추행 범죄로 실시하는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비용 국민 혈세 824억 원 누가 보상하나’라는 1인 시위 문구도 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선관위가 ‘내로남불’ ‘위선’ ‘무능’ 등 문재인 정부를 떠올릴 수 있는 표현도 사용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그런데 선관위가 2022년 대선에선 ‘내로남불·무능·위선’과 함께 ‘주술·굿당·신천지’ 표현을 허용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내로남불·무능·위선’이라는, 한편으로 상투적이고 원론적인 표현에도 문재인 정부를 연상시키는 요인이 있다면서 사용 자체를 불허했던 바 있다. 그때 그 엄격했던 선관위의 모습은 어디 간 것이냐”며 “심판이 선수로 뛰고 있는 것인가 선수가 심판으로 뛰고 있는 것인가. 공직선거법 유권해석은 편향된 선관위 위원 몇 명이 그때그때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공직선거법 유권해석에 있어서 때와 대상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부디 공정성을 제고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선관위는 강력한 조사권을 가진 준사법기관이다. 조사권은 △장소출입권 △질문·조사권 △자료제출요구권 △현장수거권 △현장조치권 △통신관련 선거범죄 조사권 △금융거래자료 제출 요구권 △재정신청권 등이 있다. 이 중 통신 관련 선거범죄 조사권과 금융거래자료 제출요구권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원에 영장 청구 없이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이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통신 관련 선거범죄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 사람 개인정보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지 않고서도 정보통신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선관위는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조사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 금융기관의 장에게 이 법을 위반해 정치자금을 주거나 받은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의 금융거래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김선화 입법조사연구관은 “현행법상 선거 관리 당국이 공직선거법상 통신 관련 선거범죄 조사를 위해 법 위반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인터넷 게시판·대화방 등에 글이나 동영상을 게시한 사람의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 등 개인정보를 판사의 승인 없이 정보통신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 이는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사생활의 자유 등에 대한 침해 소지가 있어 보인다”며 “선거범죄 조사의 법적 성격이 행정조사이든 수사이든, 헌법상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 영장주의에 준하는 사법통제절차를 마련하는 방안과 정보 주체에게 정보 제공 사실을 즉시 고지하는 방안의 마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