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존재감 뚜렷해 이미지 개선 평가…수출 불확실성 확대와 라면값 인하 요구 악재
#김정수 부회장, 삼양식품 경영 진두지휘
주부였던 김정수 부회장은 1998년 삼양식품에 입사했다. 당시 회사가 IMF 외환위기로 위기에 처하자 남편 전인장 전 회장을 돕기 위해서였다. 김 부회장은 2001년 전무에 취임했고, 2002년 부사장, 2010년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사내 영향력을 키웠다.
그러던 김 부회장은 2020년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대법원은 2020년 1월 김 부회장이 전인장 전 회장과 5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현행법상 5억 원 이상 횡령할 경우 형 집행 종료 후 5년이 지날 때까지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김 부회장도 경영에서 잠시 물러났지만 법무부 특별승인을 받아 2021년 3월 경영에 복귀했다. 이후 김 부회장은 2021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해 사실상 회사를 이끌고 있다.
다른 삼양식품 오너 일가는 김정수 부회장만큼의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삼양식품 차기 회장으로는 전인장 전 회장·김정수 부회장의 장남 전병우 삼양애니 대표가 꼽힌다. 전병우 대표가 경영하는 삼양애니는 지난해 매출 15억 원, 순손실 8억 원을 기록했다. 삼양식품의 지난해 매출이 9090억 원임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전병우 대표는 삼양식품 전략운영본부장을 겸하면서 경영 전략이나 해외 지원 등의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후계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김정수 부회장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신규 해외법인 설립, 브랜드 확장, 매출 포트폴리오 다각화 등을 통해 해외시장 개척과 내수시장 내실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인장 전 회장은 횡령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2022년 1월 출소했지만 경영에는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수 부회장처럼 법무부 특별승인을 받지 못해 삼양식품 취업자체가 불가능하다. 무보수 미등기임원 활동은 가능하지만 현재까지는 관련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삼양식품 관계자도 “전인장 전 회장은 경영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고, 복귀 계획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전인장 전 회장은 취업이 불가능하고, 1994년생인 전병우 대표는 아직 경영수업 중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김정수 부회장이 최소한 2027년 1월까지 삼양식품 경영을 총괄할 것으로 내다본다. 나아가 삼양식품 실적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면 김 부회장의 ‘장기 집권’ 가능성도 언급된다.
김정수 부회장은 지분상으로도 다른 오너 일가를 앞서고 있다. 삼양식품그룹의 지주회사 삼양내츄럴스의 주주는 △김정수 부회장 32.0% △전병우 대표 24.2% △전인장 전 회장 15.9% △자기주식 27.9%로 구성돼 있다. 삼양내츄럴스의 전신은 삼양농수산이다. 삼양식품그룹은 2002년 대선제분에 삼양농수산을 매각했다가 2004년 재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 부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삼양농수산 지분 27.92%를 확보했고, 이후 증자 등을 거치면서 현재까지도 높은 지분율을 유지하고 있다.
김정수 부회장의 2021년 경영 복귀 당시 횡령 사건 여파로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비판도 많이 사그라졌다. 우선 삼양식품의 매출은 2021년 6420억 원에서 2022년 9090억 원으로 41.59%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54억 원에서 904억 원으로 38.27% 상승했다.
김정수 부회장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길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삼양식품은 윤 대통령이 김 부회장으로부터 삼양식품의 베트남 진출에 대해 설명을 듣고, 국내 식품기업의 해외 진출을 격려하는 등 환담을 나눴다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김정수 부회장은 불닭볶음면 개발을 주도했고, 수출 실적도 크게 늘리는 등 경영 능력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며 “대외적인 이미지 개선에 성공하면 그의 평판도 더 좋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정수 부회장의 앞날은?
하지만 김정수 부회장과 삼양식품의 앞날을 낙관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삼양식품은 최근 몇 년간 해외사업 확대를 위해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했다. 삼양식품이 지난해 완공한 밀양공장도 늘어나는 해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삼양식품은 당초 밀양공장에 17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2020년 착공 직전 투자 규모를 2400억 원으로 늘렸다. 김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2021년 3월 당시 삼양식품의 부채비율은 63.63%였지만 2년 후인 2023년 3월에는 100.01%로 36.38%포인트 상승했다.
삼양식품이 투자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수출 실적이 개선돼야 한다. 다행히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은 지난해 1분기 1131억 원에서 올해 1분기 1579억 원으로 39.61% 늘었다. 하지만 삼양식품의 향후 수출 전망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동우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라면은) 기호식품 성격이 높아 수요변동성 내재돼 있다”며 “(삼양식품은) 해외 판매물량 전량을 국내 생산하기 때문에 환율 및 운임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삼양식품 안팎에서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양식품은 해외 시장에 진출하면서 매출이 성장했지만 이에 따른 지출도 늘어나면서 실질적인 이익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양식품의 판매비와 관리비는 지난해 1분기 331억 원에서 올해 1분기 465억 원으로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245억 원에서 239억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이런 가운데 삼양식품의 수출 실적마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재무도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 오지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양식품의 영업비용 증가는 밀양공장의 감가상각비 반영, 고정비 증가, 중국·미국 등 해외 판매법인 영업에 따른 인건비, 물류비 증가 등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 중 약 33%의 비중을 차지하는 내수 시장의 분위기도 좋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라면 업체들을 상대로 가격 인하를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18일 KBS ‘일요진단’에서 “지난해 9∼10월 (라면 값을)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며 “밀 가격이 내려간 부분에 맞춰 (라면 값을)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면 업체들은 국내 제분 업체로부터 밀가루를 구입해 라면을 제조한다. 라면업계는 국내 제분 업체의 밀가루 공급 가격이 지난해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지난 6월 26일 국내 7개 제분 업체와 간담회를 개최해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청했다. 제분업계는 간담회 이후 밀가루 출고 가격 인하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한영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정부와 제분업계가 밀가루 가격을 지속적으로 안정시키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양식품이 라면 값을 인하하면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삼양식품은 농심과 오뚜기에 비해 불닭볶음면 등 라면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커 영향을 더 크게 받는 구조다. 삼양식품은 최근 각종 비용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 인하는 큰 부담이다. 심은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곡물가 및 환율의 하락 속도가 상당히 더딘 한편 인건비·물류비·유틸리티 비용 등 제반 비용 상승이 여전히 가파르다”며 “현 시점에서의 제품 판가 인하는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삼양식품 관계자는 “소비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검토 중이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