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에 고발 요청하거나 선제적으로 자체 수사…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존재감 주목
자연스레 법조계에서는 ‘과도해지는 기업 수사’에 대한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기존에는 ‘공정위 조사 대응→공정위의 검찰 고발(전속고발권 행사)→검찰 수사 대응’ 순서였다면, 이제는 공정위와 검찰의 동시 조사 및 수사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와 정반대가 된 구조를 놓고 윤석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검찰 전성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보다 빠른 검찰의 수사
최근 공정위는 아파트 빌트인 가구 입찰 담합 혐의를 받는 한샘·에넥스·넥시스·우아미 등 8개 가구업체와 임직원 10여 명을 고발하기 위해 내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통상적인 절차는 아니다. 통상적인 절차라면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 빌트인 가구 입찰 담합 사건은 공정위 조사와 별개로 이미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이정섭 부장검사)는 지난 2월 가구업체들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이며 수사를 시작했다.
통상적인 절차였다면 공정위가 조사를 끝낸 뒤, 공정위 고발 여부에 따라 검찰 수사가 결정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공정위는 지난해 5월 한샘 등 가구업체를 현장조사하는 등 입찰 담합 혐의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검찰의 선제적인 수사 착수 및 빠른 수사 결과 예상에 공정위가 사건 조사를 마무리하기 전에 미리 검찰에 고발하는 상황이 연출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공정위가 조사 중인 사건을, 결론이 나오기 전 검찰에 먼저 고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검찰이 고발요청권을 활용해 새로운 공정위발 검찰 수사 방식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평가했다.
#커진 검찰 권한 보여주는 사례?
법적으로 문제될 부분은 없다. 검찰총장에게는 고발요청권이 있다. 검찰이 고발요청권을 행사한 경우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 위원회 심의·의결 없이 심사관이 전결로 고발할 수 있다.
문제는 아파트 빌트인 가구 입찰 담합 건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정위와 검찰은 현재 KT텔레캅이 시설관리업체인 KDFS에 일감을 몰아준 의혹에 대해서도 각각 조사·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 역시 검찰이 먼저 수사결과에 도달할 경우, 공정위는 자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의 고발요청권에 응해야 할 수도 있다. 공정위에 부여됐던 전속고발제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공정위 파견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전속고발제는 전문성을 갖춘 전문기관인 공정위가 징계 및 검찰 수사 필요성에 대해 1차적으로 판단하라고 한 것”이라며 “물론 공정위가 이를 악용해 기업들에 공정위 출신들의 퇴임 자리를 확보하는 등의 문제도 있었지만 순기능도 분명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무조건 기업을 형사처벌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며 “검찰이 수사를 한다면 공정위에서 징계만 하고 고발은 하지 않았던 기존의 옵션 가운데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공정위와 검찰의 달라진 위상
최근 호반건설과 한국타이어 관련 사건도 공정위와 검찰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의 일감 몰아주기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다. 앞선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정위 고발 건에 대해서만 검찰이 수사를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고발된 내용뿐 아니라, 한국타이어 노조의 추가 고발이 들어온 조 회장의 배임 혐의까지 살펴봤다. 이후 검찰은 조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뿐 아니라 200억 원 규모의 배임과 횡령 혐의까지 추가로 수사해 구속기소했다.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기로 결정한 호반건설 사건도 검찰이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정위는 6월 12일 호반건설이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 등 회사들을 부당하게 지원하고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608억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호반건설은 2013~2015년 건설사들의 공공택지 수주 경쟁에서 다수의 계열사를 설립하고 비계열 협력사까지 동원하는 ‘벌떼입찰’을 벌였다. 계열사들에 입찰 참가 신청금(평균 38억 원, 총 1조 5753억 원)을 무이자로 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따낸 경기 화성 동탄 등 23개 공공택지는 총수인 김 전 회장의 장남과 차남 회사에 양도됐다. 그 결과 2세 회사들은 시행사업에서 5조 8575억 원의 분양 매출에 1조 3587억 원의 분양 이익을 얻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6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도 공소시효가 끝났다며 김상열 전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벌떼입찰을 강하게 비판하는 등 호반건설 총수 일가에 대한 별개의 고발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장 국토부도 공정위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할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시민단체 등 제3자가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면 수사할 명분으로는 충분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서히 공정위 결정의 ‘의미’가 사라지는 분위기다.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총수 일가를 위해 회사 조직을 동원한 부분은 배임으로 적용하면 공소시효가 늘어나기 때문에 검찰이 맘만 먹으면 수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호반건설 건은 검찰이 공정위의 결정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고발요청을 하진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고발요청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의 존재감을 주목해야 한다는 평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역임한 한 변호사는 “어느 부장검사가 사건 관련해 언론과 직접 인터뷰를 하며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느냐”며 “반부패수사1~3부가 모두 정치 관련 사건을 맡으면서 검찰의 기업 수사는 공정거래조사부가 가장 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최근 공정위 전속고발권과 맞물려 계속 이슈가 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