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이용 많아, 생활 여건 나아졌으면”…주민들 자발적인 서명운동 움직임도
경기도에 남은 군 소재지는 3곳이다. 가평군, 연천군, 양평군이다. 양평군은 경기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기초지자체다. 2023년 6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양평군 인구는 12만 3108명이다. 시급 기초지자체인 과천시, 동두천시, 여주시보다 인구가 많다. 양평군엔 두물머리와 용문산 등 명소가 있어 대표적 수도권 교외 나들이 장소로 꼽히기도 한다.
조용하던 양평군은 최근 ‘정치권 이슈’로 들썩이고 있다. 양평군민들이 지역 숙원사업으로 꼽았던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놓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엔 백지화될 위기에 놓이면서다.
논란의 시작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있었다. 이 전 대표는 6월 16일 전북 전주시에서 열린 당원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처가가 땅 투기를 해놓은 곳으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했고, 처가가 부당한 이득을 취하게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파장은 일파만파였다.
2017년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처음 검토될 당시 노선 종점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위치해 있었다. 관광지인 두물머리와 인접한 지역이다. 6번 국도의 극심한 교통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을 잇는 노선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23년 5월 8일 국토교통부는 고속도로 노선 종점 변경안을 내놨다. 종점은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일대로 변경됐다. 양평군 내 인구밀도가 비교적 높은 강하면과 강상면 일대를 가로지름과 동시에 강하IC를 신설, 교통 분산 효과를 노리겠다는 목적이었다. 바뀐 고속도로 종점은 중부내륙고속도로 남양평IC와 인접해 있어 다른 고속도로와의 환승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강상면 일대를 비롯해 강상JCT와 인접한 양평읍 일대에 김건희 여사 및 친인척 보유 토지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여사 일가가 양평 강상면 병산리 일대에 본인 명의 토지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기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명시된 사실이었다.
2022년 8월 26일 전자관보에 게시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공고 2022-9호에 따르면 김 여사는 양평 강상면 병산리 등에 11개 필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 여사가 보유하고 있는 면적 총합은 4527.8㎡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및 종점을 변경해 김건희 여사 일가가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취지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기존 계획안 종점인 양서면 일대에 민주당 소속 전직 군수 및 가족 보유 토지가 있으며, 개정된 노선 일대엔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역공을 펼쳤다. 고속도로 노선을 둘러싼 정쟁이 격화하기 시작했다.
여야 대립이 극심해지자 양평군민들은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특히 원희룡 장관 발표대로 사업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팽배하다. 양평군청, 양평군민회관, 양평읍사무소 등 중심지를 비롯해 논란 중심에 선 양서면, 강상면, 강하면 면사무소 일대, 그리고 양평군 도로 곳곳엔 고속도로 건설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일요신문은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양평군 현지에서 시민들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양평읍에 거주하는 50대 여성 정 아무개 씨는 “양평에서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자가용”이라면서 “지금까지 수도권에서 양평을 거치는 도로는 사실상 외통수길이었다”고 했다. 정 씨는 “정치인 중 누가 더 이득을 많이 가져갔냐는 취지로 정치권 갈등이 생기는 것 같은데 양평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런 부분에 큰 관심이 없다”면서 “강상면이든, 양서면이든 하루빨리 고속도로 건설이 추진돼 생활여건이 나아졌으면 한다”고 했다.
70대 남성 강 아무개 씨는 “어떤 노선이든 정치적 분쟁과 상관없이 고속도로를 짓는 것이 주민들에게 도움이 된다. 이것이 정치인들의 과제”라면서 “다만 양서면으로 고속도로가 건설될 경우 기존 두물머리 쪽으로 나들이를 오던 수도권 관광객들만을 위한 도로가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종점을 바꾸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으로 읽힌다.
강 씨는 “교통체증 완화를 위해 양서면에 종점을 만들어놓으면 오히려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차가 더 몰릴 것”이라면서 “교통체증 완화가 아니라 심화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수도권 거주 시민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보면 양서면 종점이 조금 더 유리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양평군민 생활여건 향상을 위해 고속도로를 놓는다고 하면 강상면 종점이 (양평군민들의) 생활여건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양평군민회관 인근에서 만난 40대 남성 김 아무개 씨는 “양평군에 거주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이 바라봤을 때엔 고속도로 노선에 따른 이익을 누가 더 많이 볼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양평군에 거주하는 입장에선 하루빨리 고속도로가 완공돼 교통 여건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김 씨는 “양평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살펴보면 기존 양평에 거주하던 토박이와 양평에 ‘세컨하우스’를 두고 서울 근교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이주민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특히 은퇴 이후 양평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자차를 이용해 이동한다. 이용할 수 있는 도로 옵션이 많을수록 양평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양평 거리 곳곳에 걸린 현수막에 쓰여 있는 메시지도 대동소이했다.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내건 정당현수막 일부를 제외하면 군민들의 목소리는 비슷한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 현수막엔 ‘고속도로는 양평 군민의 염원’, ‘고속도로 백지화는 절대 안 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부 현수막은 ‘양평 발전 저해하는 민주당 사죄 촉구’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했다.
최근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 각종 노선들과 관련해 양평군청 관계자는 “양평군에서 1안부터 3안까지 해서 국토교통부에 보고를 했고, 국토교통부가 가장 합리적인 안을 선택해 노선이 개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안, 2안, 3안을 1순위, 2순위, 3순위 등 우선순위로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니”라면서 “고속도로 건축비용, 교통체증 완화 효율성, 다른 고속도로와 연계 가능성 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해봤을 때 3안(강상 종점안)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사료된다”고 했다.
양평군에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고속도로 추진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현상도 감지된다. 논란이 불거진 뒤 양평군 이장협의회가 ‘고속도로 건설 추진을 위한 10만 서명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양평군민은 “7월 12일 우리 집에도 이장이 직접 찾아와 서명을 받아갔다”면서 “서명운동 취지가 무엇이냐고 묻자 ‘강상 종점안으로 고속도로를 추진하기 위한 서명운동’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했다.
이 시민은 “양평군에 1개읍과 11개면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개정안에 무게를 싣는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면서 “기존 노선안 종점 지역인 양서면에선 ‘양서 종점안’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그럼에도 고속도로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대전제에 대해선 동의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