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대부분이라 확성기 방송도 듣지 못해…“대통령 오셨으니 재발 방지 되겠죠” 정부만 의지할 뿐
#'전쟁터' 돼버린 마을
모처럼 비가 개어 파란 하늘 속 햇빛이 쏟아졌던 7월 19일. 경북 안동 방향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니 울창한 산들이 사방을 수놓으며 경관이 장관을 이뤘다.
여기서 풍기톨게이트로 빠지면 원래는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시골 마을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전혀 달랐다. 가뜩이나 좁은 2차선 길 소백로는 흙더미와 바위들이 나뒹굴어 차 한 대 지나기도 어려웠고, 군데군데 군용차와 소방차들이 세워져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간신히 10km쯤 달려 벌방리 입구에 닿자 전쟁의 처참함을 보여주는 듯한 풍경을 마주했다. 나흘째 방치된 산사태의 참상인데 폭격을 맞았다고 해도 될 만큼 무엇 하나 제대로 된 형체가 없었다.
폐허가 된 어느 집 모퉁이에서 만난 이 아무개 씨(70대)는 사태를 겪고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그는 "새벽 서너 시쯤 교회 목사님하고 이장님이 급하게 깨우기에 끌려 나갔다"며 "도랑에서 물이 넘쳐 가까스로 길을 건너긴 했는데 얼마 뒤 보니까 마을이 이 꼴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유 아무개 씨(70대)도 몹시 큰일 날 뻔한 기억 외에는 남은 게 없다. 그는 "도랑의 물이 어찌나 불었는지 실수로 넘어져 같이 떠내려가고 말았다"면서 "주민들이 온 힘껏 팔을 끌어당겨 구해준 덕분에 간신히 살아났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기준 벌방리에서는 2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최근 귀농한 이웃들이다. 50~60대 나이로 이 마을에선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해 사태 당시 고령 노인들보다 현장 안내를 늦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태는 마을 뒤편의 '주마산'이 무너져 발생했다. 벌방리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야산' 혹은 '달개바위'라고도 불리는 산이다. 나들이든 농사든 자주 이용하는 산은 아니었다고 전해졌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기존 폭우 때에는 마을 앞 석관천 범람이 피해의 전부였다. 그 역시 무려 30년 전쯤 발생한 일이었으나, 옛 기억 때문에 아직도 비가 오면 석관천에 내려가 상황을 지켜보는 노인들이 많단다. 주민들은 처음 겪는 산사태로 '배산임수'가 꼭 명당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다.
#재난 시스템 사각지대
이번 참사는 시골 산지가 사회의 재난 시스템에서 어느 정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지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사태가 발생한 7월 15일 이전부터 예천군에도 호우특보가 발효돼 지자체는 대비에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주민들 누구도 행정당국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김학동 예천군수 역시 사태 당일 각 마을 이장들에 직접 전화를 걸어 궂은 날씨 관련 주의를 당부했으나, 사전대피 등 실질적인 조치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탓에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마을 이장과 교회 목사, 50~60대인 소수 '청년'들이 안내와 구조 등을 전부 책임져야 했다. 벌방리는 80여 가구에 약 150명이 살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 허술하게 작동한 것부터 문제다. 산사태 재난문자의 경우 당일 오전 1시 47분 예천군에서 보낸 '유사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게 처음이었다. 이 시각 산림청은 예천군 일대에 '산사태 경보'를 발령한 상태였다. 주민들은 같은 날 새벽 6시 31분에야 '산사태 경보. 주민 및 방문객은 즉시 대피하라'는 두 번째 문자를 받았다. 주민들 자력으로 이미 대피한 뒤였다.
마을회관 확성기로 방송이 나왔지만 역시 무용지물이었다. 안내를 들은 주민들이 거의 없었다. 집의 위치마다 음향 크기가 다르고, 귀가 어두운 노인들이 많았던 까닭에서다.
주민 김 아무개 씨(70대)는 "방송을 했다던데 자느라 전혀 듣지 못했다"며 "사실 평소에도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려서 노인정에 모여서 밥 먹자는 안내도 놓친다"고 말했다.
박우락 벌방리 이장(60대)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요즘은 시골도 집 안에 스피커를 달아 방송을 듣도록 돼 있지만 우리는 다르다"며 "시골 중 시골인 데다 멀찍이 유천면, 개포면 등 공군부대와 가까운 마을부터 달아줬다더라"고 설명했다.
남은 과제는 피해 복구와 재발 방지책 마련이다. 단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한다. 사태 당시의 상황과 주변 환경 등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크지만 관련 증언을 보탤 수 있는 주민들이 많지 않은 점도 난제로 비쳤다.
노인이 대부분인 벌방리 주민들은 오로지 정부에만 의지할 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월 17일 마을을 찾아와 대책 마련 등을 지시한 데 이어 예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영향이다. 한 주민은 "대통령께서 '마을의 구조 자체가 더는 이래선 안 된다'고 똑똑히 말씀하셨다"며 "재발 방지도 확실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천군청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실종자 수색과 주민들의 일상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며 "재발방지책 등은 아직"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고 원인'에 관한 질문에는 "일부 언론에서 무분별한 산 개간을 지적하지만 벌방리 주변 산들은 오래 전부터 개간이 이뤄진 상태로 아직 남아 있다"며 "개간보다는 폭우 때문 같다"고 답했다.
#산사태 예측 고도화 언제쯤…
정부에도 주어진 과제가 많다. 예천 벌방리를 포함, 이웃지역 봉화군 춘양면 등 사상자가 많은 곳 대부분이 산림청이 지정한 '산사태 취약지역'에서 제외되는 등 시스템 결함을 보여준 까닭에서다. 특히 벌방리와 불과 1km 정도 떨어진 곳은 취약지역으로 지정되고도 안전했다.
문제를 알고도 뒷북 행정을 반복하는 관행도 그만둘 때가 됐다는 비판이 크다. 예컨대 2022년 산림청이 내놓은 '전국 산사태 예방 종합대책'을 보면 향후 주요 과제에 "산사태 예측정보 시스템의 고도화"를 명시했다. 8년 전 처음 내놓은 '2015년 종합대책'에서도 "산사태 정보시스템을 통해 예방·대응 활동 적극 추진" 등 같은 말을 반복한 바 있다.
결국 지자체 등이 사태 발생 최소 반나절 전에는 예측 및 조치에 나설 역량을 갖추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이다. 이는 사태의 재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개간이 더해지며 산의 지반도 갈수록 약해지는 구조는 어쩔 수 없다"며 "냉혹하지만 산 주변에 살지 않는 게 최선인데, 시골에선 불가능하니 사회의 재난시스템과 공무원들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또 "사고 발생 때마다 정부에 산 취약성 등을 전수 조사하라는 요구가 크지만 예산 등 문제로 역시 비현실적"이라며 "긴 안목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미국 등 선진국도 100년 넘게 꾸준한 조사를 벌였음에도 피해가 반복되는데 국내는 요식행위처럼 하는 데다 조사 이후 마땅히 나오는 대책도 없다"고 꼬집었다.
경북도는 소방과 군·경찰 등 3486명과 장비 1276대를 투입해 예천지역 실종자 3명 수색 및 응급구조 등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채수근 일병(20·상병 추서)이 예천 보문교 인근에서 실종자 수색작업 중 급류에 휩쓸려 하루 만인 7월 20일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도 벌어졌다. 윤 대통령은 "고 채수근 일병에게는 국가유공자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예천=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