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류 정비 홍수 예방 효과 입장 차 극명, 지류·지천 관리 필요성엔 공감…감사원 해석도 정권 따라 오락가락
7월 17일 오전 기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은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가 총 39명이라고 집계했다. 실종자는 34명이다. 전국적으로 인명피해가 속출하자 정치권에선 책임 공방이 뜨겁다. 여권에선 문재인 정부 시절 하천에 설치된 보를 해체한 게 이번 홍수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호우 피해 상황 중 순방 일정을 추가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호우 피해 예방대책을 둘러싼 입장도 확연히 다르다. 국민의힘에선 ‘포스트 4대강’을 언급하며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4대강 사업 확장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민주당은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며 하천 지류·지천 정비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폭우로 인한 피해 국면에서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정쟁이 화두로 떠오른 양상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7월 17일 충남 공주시 옥룡동 침수피해 현장을 방문해 “4대강 사업으로 물그릇을 크게 만들어 금강 범람을 막았다”면서 “4대강 사업을 안 했으면 대참사가 일어날 뻔 했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포스트 4대강 사업인 지류지천 정비사업이 국토교통부에서 예정됐지만 못했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4개년 계획을 세워 당장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때려 부수려고 환경부로 (관리책임을) 일원화했다”면서 “국토교통부에서 만든 4대강 업무를 환경부가 가져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4대강 사업 사후관리 체계에 대한 비판론에 날을 세운 셈이다.
7월 18일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정 의원 발언에 대립각을 세웠다. 김 의원은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4대강 사업은 기본적으로 4대강 본류에 대한 사업”이라면서 “대개 홍수는 (본류가 아니라) 지류·지천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4대강 사업이 홍수에 대한 물통 크기를 넓혀 놨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4대강 사업이 아니라도 (본류 물통 크기를 넓히는 사업은) 여러 사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사업”이라면서 “홍수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사업은 지류·지천 사업인데 그 사업은 진행되지 않았다. 4대강 사업으로 모든 것을 퉁치려고 하지 말고 전체적인 수량 관리 시스템 점검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하천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이런 점과 관련해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먼저 살펴야 한다”면서 “여기다가 4대강 사업 숟가락 얹기를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두 의원 말을 종합하면 지류·지천 관리 사업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선 여야 모두가 공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근거가 다르다. 여권에선 ‘지류·지천 사업으로까지 4대강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취지고, 야권은 ‘4대강 사업으로 홍수 피해를 줄인 것이 아니라, 지류·지천 사업이 미비해 홍수 피해가 증가한 것’이란 논리를 내세운다.
여권 한 관계자는 “4대강 사업 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프레임 싸움을 야권에서 제기하고 있다”면서 “4대강 사업이 지속적으로 확장됐으면 지류, 지천에 대한 정비도 보다 체계적으로 확립됐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민주당 한 관계자는 “4대강 사업은 본류에선 수박 겉핥기 식 정비로 환경적인 문제점만 유발했다”면서 “지류, 지천에서 발생하는 근본적 홍수 원인을 차단하지 못했다”고 날을 세웠다.
4대강 정비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주요 국정사업이었다. ‘녹색 성장’ ‘녹색 뉴딜’을 상징하는 사업이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약으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제시했다. 그러나 각종 논란으로 인해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제동이 걸리자 이에 대한 대체재가 부상했다. 하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4대강 사업이었다. 4대강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하천을 통칭하는 단어로 떠올랐다. 정부는 약 22조 원 사업비를 투입해 4대강 본류를 정비했다.
국내에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4대강 사업은 정치권 쟁점으로 떠올랐다. 4대강 사업 목적 중 하나가 홍수 피해 조절이었던 까닭이다. 이명박 정권 당시 정부는 “물그릇을 키워 홍수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로 4대강 사업 당위성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정권에 따라 4대강 사업 홍수 피해 조절 효과에 대한 분석은 엇갈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던 2013년 감사원은 ‘4대강 살리기 사업설계, 시공일괄입찰 주요계약 집행실태’ 감사를 통해 4대강 사업이 홍수예방보다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 재추진 포석 성격으로 진행됐다는 결론을 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감사원은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 실태점검 및 성과분석’ 감사를 통해 4대강 사업이 홍수 상황에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문재인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통해 건설된 일부 보에 대한 해체 및 상시개방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금강 유역 세종보는 해체 결정이 내려졌고, 공주보는 부분해체, 백제보는 상시개방했다. 2023년 여름철 폭우가 충남지역을 강하게 휩쓸고 가면서 지역 정가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금강유역 보에 대해 내린 조치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충청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보 해체, 부분해체 등 결정이 내려질 당시에도 지역 사회 반대가 상당히 심했다”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그때 해체했던 보 때문에 홍수 피해가 커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피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전문가들 과학적 견해가 사람마다 다르다 보니 주민들도 믿고 싶은 이야기를 믿게 되는 그런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이 홍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선 4대강 사업이 홍수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다. 윤석열 정부에선 다시 4대강 사업에 대한 긍정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4대강 보 존치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환경부는 보 존치 계획에 집중하고 있다. 7월 20일 문재인 정부 금강·영산강 보 해체 및 상시개방 결정과 관련한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되면 윤석열 정부의 ‘4대강 사업 원위치’ 프로젝트가 본격 시동을 걸 전망이다.
여기다 윤석열 정부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때의 금강·영산강 유역 보 해체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유도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감사원이 김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를 진행할 가능성이 클 것이란 평가가 뒤를 잇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 해석이 오락가락하는 형국이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금은 과학이 진영이 된 시대”라고 바라봤다. 신 교수는 “이런 상황에선 객관적 평가가 모든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똑같은 얘기를 다른 근거로 해석하는 정치권 상황은 우리 사회 정치적 양극화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내년에 총선이 없더라도 정치권 반응은 지금처럼 양 갈래로 갈렸을 것”이라면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논란, 대통령 외교 행보 관련 논란을 비롯해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사후평가까지 각자 다른 과학적 해석을 근거로 양쪽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양상”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