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연·김혜리·조소현 등 지난 10여 년간 전성기 이끌어…콜롬비아·모로코·독일 차례로 격돌
#여자축구 황금세대
1991년 중국에서 1회 대회를 치른 여자 월드컵에 대한민국 대표팀이 처음 나선 건 2003 미국 여자 월드컵이다. 여자축구가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 한국에서도 '1세대' 선수들이 첫선을 보였다. 이후 저변이 넓지 않은 국내 사정상 대표팀이 월드컵에 나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국내에서 여자축구가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독일에서 열린 U-20 여자 월드컵에서 지소연을 필두로 한 선수들이 최종 3위에 오르면서다. 2002 한일 남자 월드컵 4위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 대회에서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대회 첫 경기를 해트트릭으로 시작한 지소연은 8골을 기록, 실버슈(득점 2위)와 실버볼(MVP 2위)을 수상했다.
불과 약 한 달 만에 U-17 대표팀 동생들이 2010년 U-20 대표팀의 기록을 깼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서 이들은 우승을 차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던 여민지는 대회 8골로 득점왕과 골든볼을 휩쓸었다.
연이은 성과에 여자축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지소연이 앞장섰던 U-20 대표팀 이전 세대인 1980년대 후반 태생 선수들도 고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2009 베오그라드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성과를 거둔 선수들이 합세하며 대표팀은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서 사상 최초로 16강 무대를 밟았다.
여자 대표팀이 거둔 성과는 월드컵에 그치지 않았다. 이전까지 3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아시안컵에서 2014년 4위에 올랐다. 남자축구와 달리 A대표가 나서는 아시안게임에서는 2010년부터 최근 3연속 동메달을 차지했다. 여자축구에서는 아시아에 세계적 강호들이 몰려 있다. 남자 축구와 달리 일본은 성인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으며 중국도 준우승 경력을 자랑한다.
#어쩌면 마지막
이번 대회는 '황금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뛰는 대회가 될 수 있다. 유니버시아드, 연령별 대회 등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이들은 어느덧 대거 30대로 들어섰다. 당연하게도 이번 대회 32개국 중 대한민국은 평균 연령이 높은 팀에 속한다. 대회 엔트리(23인) 중 센추리클럽 가입(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선수만 5명이다.
이들 중 다수가 4년 뒤면 30대 후반이 된다. 현역 선수 생활을 장담할 수 없으며 선수로 뛴다 해도 지금 같은 기량을 보장할 수는 없다. 이에 이번 대회 대한민국 대표팀을 두고 '황금세대의 마지막'이라는 말이 나온다.
U-20 월드컵 3위 주역 지소연도 자신을 포함한 또래 선수들에게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간절함을 담아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지소연은 A매치 145경기 67골, 잉글랜드축구선수협회 선정 최우수선수 수상 등 국내 여자축구 역대 최고로 꼽히는 선수다. 지소연은 지난해 "월드컵을 대표팀과 함께 준비해 보고 싶었다"며 8년간 뛰었던 잉글랜드 무대를 떠나 국내로 돌아왔다.
지소연과 동기인 김혜리, 임선주도 U-20 대표팀 시절부터 오랜 기간 대표팀을 지켜온 수비수들이다. 이들 모두 100경기가 넘는 A매치를 소화했다. 숱한 경기를 함께했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지소연, 김혜리, 임선주가 동시에 뛴 경기는 아직 없다. 함께 뛰며 이전보다 좋은 결과를 내겠다는 의지가 남다르다. 김혜리는 지난 4년간 주장 역할을 맡아 책임감을 보이고 있다.
장슬기는 U-17 월드컵 우승 주역 중 한 명이다. 결승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자신의 발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장슬기는 현 대표팀 사령탑 콜린 벨 감독의 '고강도 훈련'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고강도 훈련으로 힘이 더 생겼고 능률도 올랐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 측면 수비수로 나서 공수에서 팀에 활기를 불어넣을 전망이다. 장슬기는 지난 8일 대표팀의 출정식인 아이티와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신바람을 냈다.
이외에도 김정미, 조소현, 심서연, 이금민, 최유리 등은 지난 10여 년간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끈 황금세대로 불린다. 현 대표팀의 무게가 이들 베테랑에만 쏠린 것은 아니다. 콜린 벨 감독은 추효주, 천가람, 케이시 유진 페어 등 2000년대생 선수들도 발탁하며 팀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조별리그 전망
8강 이상의 성적을 바라보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H조에 편성돼 콜롬비아, 모로코, 독일을 차례로 만난다. 최악의 조도, 최상의 조도 아닌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걸맞은 수준이라는 평이 나온다.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2위 이상의 성적이 필수다. 조 3위에도 가능성이 있었던 지난 대회와 상황이 달라졌다.
H조 최강자는 자타공인 독일이다. 유럽 예선에서 잉글랜드에 패해 2위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했으나 '우승 후보 0순위' 미국도 위협할 수 있는 강팀으로 꼽힌다. 여자 월드컵 우승 경력도 1위 미국(4회)에 이어 2위(2회)다. 대표팀에 다행스러운 점은 독일과 최종전이 예정돼 있다는 것이다. 16강 진출을 조기에 확정 지은 독일이 비교적 여유로운 경기 운영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남자 대표팀 역시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같은 조 최강 포르투갈을 만나 승리를 거두며 16강으로 향한 바 있다.
콜롬비아는 최근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브라질에 이은 남미 2인자 자리를 아르헨티나에서 빼앗았다. 월드컵 지역 예선을 겸해 열린 2022 코파 아메리카 페메니나에서 결승까지 무패행진을 달리다 브라질에 아쉽게 우승을 내줬다. 피파랭킹은 대표팀(17위)보다 낮지만(25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던 남자 대표팀과 달리 모로코 여자 대표팀은 H조 내 약체로 불린다. 월드컵 본선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파랭킹은 72위다. 하지만 모로코는 방심할 수 없는 팀으로 꼽힌다. 사령탑인 프랑스 출신 리에날 페드로스 감독은 유럽축구연맹(UEFA) 위민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명장으로 꼽힌다. 대표팀으로선 두텁게 내려선 모로코 수비진을 공략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