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이창호 연상케 하는 침착함 호평 받아…GS칼텍스배 최정과의 ‘리벤지 매치’도 기대 모아
변상일 9단이 마침내 메이저 세계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7월 19일 중국 충칭에서 막을 내린 제14회 춘란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결승3번기 제2국에서 변상일 9단이 중국 리쉬안하오 9단에게 212수 만에 백 불계승했다. 이틀 전 1국에서도 승리했던 변상일은 이로써 종합전적 2-0으로 춘란배를 거머쥐었다.
2012년 1월 입단한 변상일은 그동안 국내 대회와 제한 기전에서 통산 6차례 우승컵을 차지했으나 메이저 세계기전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춘란배, 리쉬안하오가 불러온 파장
중국 춘란그룹이 후원하는 제14회 춘란배는 올해 많은 화제를 남긴 대회였다. 지난해 12월 열린 춘란배 8강전에서 리쉬안하오 9단에게 졌던 양딩신 9단은 4강전에서 신진서 9단마저 리쉬안하오에게 패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과 신진서 9단에게 패배를 안긴 리쉬안하오를 공개적으로 저격한다.
“리쉬안하오에게 20번기를 벌일 것을 공개 제안한다. 모든 전파신호가 차단된 대국장에서 승부를 벌이되, 만일 내가 지면 은퇴하겠다”며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이른바 ‘치팅 논란’으로 불렸던 이 사건은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많은 이야기가 뒤를 이었지만 결국 이 사건 이후 바둑대회 대회장에 와이파이 신호 차단기가 등장하고, 신체 검문검색이 강화되는 등 세계 바둑대회는 큰 홍역을 치렀다.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 섰던 리쉬안하오는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춘란배 결승에 올랐고, 맞은편 조에서는 한국의 변상일이 구쯔하오, 리웨이칭, 탕위싱을 잇달아 제치며 결승까지 진출해 한국과 중국바둑의 큰 승부가 성사됐다.
#변상일, 다음 타깃은 GS칼텍스배
주최 측인 춘란그룹은 리쉬안하오에게 최상의 컨디션을 제공하기 위해 결승전 대국 장소를 리쉬안하오의 고향인 충칭으로 선택했고, 중국바둑협회는 결승을 대비한 연습상대로 구쯔하오 9단과 셰커 9단을 동행하게 하는 등 우승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반면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든 변상일의 최근 성적은 좋지 않았다. 6월 이후 용성전 탈락, 백암배 16강 탈락, KB리그 챔피언결정전 패배에 이어 농심신라면배 대표선발전에서도 탈락했다. 전망은 당연히 낙관적이지 않았다.
변상일 본인도 “컨디션도 나쁘고 상대도 강해서(상대 전적 1승 3패) 우승할 줄 몰랐다”고 했을 정도. 하지만 “일생일대의 기회인 만큼 준비는 정말 많이 했다. 특히 초반 연구를 중점적으로 했다”고 밝혔다.
국내 바둑팬들은 결승전 내내 흔들리지 않았던 변상일의 바위 같은 대국 태도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바둑관계자는 “이번 결승전에서 돋보였던 것은 변상일의 마치 태산과도 같은 대국 자세였다. 상대 리쉬안하오가 쉴 새 없이 몸을 뒤척이고 고개를 젓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인데 반해, 변상일은 마치 전성기 이창호를 연상케 하는 침착함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화재배 최정 9단과의 준결승전에서 대국 태도가 좋지 않아 질타를 많이 받았는데 이번 우승으로 그 이상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각종 바둑 게시판에는 변상일 9단의 우승을 축하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6월 열린 난가배 결승에서 신진서가 구쯔하오에게 패해 많이 아쉬웠는데 변상일이 설욕해줘 큰 위로가 됐다”거나 “그동안 정상 일보직전에서 좌절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이번 우승으로 모든 불운을 날려버렸으면 좋겠다”는 등 격려 글이 쇄도했다.
변상일의 춘란배 우승은 향후 국제 바둑계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다가오는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로서 큰 활약이 기대되며, 농심신라면배 와일드카드 경쟁도 뚜렷한 경쟁자가 보이지 않아 무난히 선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3일부터 시작되는 GS칼텍스배 결승5번기 최정 9단과의 대결은 작년 삼성화재배의 리벤지 매치 성격도 띠고 있어 큰 화제를 불러 모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바둑협회가 주최하고 춘란그룹이 후원한 제14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의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 25분에 60초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덤은 7집 반이다.
한편 변상일 9단의 우승으로 한국은 춘란배 3연패(12회 박정환, 13회 신진서 우승)를 기록하게 됐다. 역대 우승 횟수는 한국이 8회, 주최국 중국이 5회, 일본 1회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