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한국 전설 조훈현과 마작 하며 놀던 사이…“결승전 가차없이 반칙패, 승부 재미 떨어뜨려” 아쉬움
출전 기준은 1978년 이전 출생자다. 한국의 레전드 기사 4인방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9단을 비롯해 중국의 위빈, 뤄시허,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 요다 노리모토, 대만의 왕리청 등 세계적인 바둑 전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흘간 16강 토너먼트로 열린 이 대회에선 중국의 위빈 9단이 결승에서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다케미야의 우주류는 바둑의 제2혁명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제자 이창호와는 두고 싶지 않다(웃음). 그래도 가장 반가운 얼굴이 다케미야 선수 아닌가 싶다. 과거 가장 가깝게 지냈기도 했고, 만일 대국하게 된다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개막식 임전소감에서 조훈현 9단)
“이곳을 정말 좋아한다. 나 역시 조훈현 9단과 대국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그러자면 친한 사이인 유창혁 씨가 내일 저에게 꼭 져야 한다(웃음).”(다케미야 마사키 9단)
개막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기사는 ‘우주류(宇宙流)’ 그 사람,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었다. 1951년생으로 이번 대회 출전 선수 중 최연장자인 다케미야는 항상 웃는 얼굴에 언변도 좋아서 인기가 많다.
바둑뿐 아니라 취미도 다양해서 골프, 노래, 댄스, 마작 등은 전문가급 수준. 하지만 그중 백미는 역시 바둑으로, 과묵하기로 유명한 이창호 9단이 다케미야 9단의 우주류를 가리켜 바둑의 제2혁명이라 칭하면서 그가 혼자의 힘으로 세계 바둑을 바꾸었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평했을 정도다.
조훈현이 1회전에서 약체 롭반자이스트(네덜란드)를 만난 데 비해 다케미야는 대회 3연패에 도전하는 유창혁을 상대하게 된 상황. 다케미야는 조훈현을 만나기 위해선 반드시 유창혁을 넘어야 했는데….
#위빈 9단 “심판에게 감사드린다”
[참고도1] 유창혁-다케미야(흑)의 16강전이다. 백이 우세한 장면에서 다케미야가 흑1로 이었을 때 백2가 너무 실리를 밝힌 수. 흑3으로 밀고 들어오자 골치 아프게 됐다.유창혁에게 행운의 역전승을 거둔 다케미야는 바라던 대로 8강에서 조훈현을 만났다. 나이는 조훈현이 두 살 어리지만 10대 시절 일본에서 유학하던 조훈현은 다케미야와 마작도 같이 하며 놀곤 했다.
[참고도2] 실전에서는 백1~8까지 진행되었고, 이후 복잡한 전투가 되었는데 결국 중앙 백이 잡혀버리고 말았다.
[참고도3] 우세한 백으로서는 A가 아니라 백1로 보강해 두는 편이 알기 쉬웠다. 그래도 흑2·4로 끊으러 오면 이하 7까지 백은 문제없이 연결할 수 있었다.
대국 전 바둑판을 앞에 두고 조훈현은 “댄스는 요즘도 여전히 즐기시느냐”고 물었고, 다케미야는 웃으며 “매일 한다”고 대답했다. 또 다케미야는 “여전히 골프를 치시는가” 하고 물었고, 조훈현은 “자주는 아니고 가끔 한다”고 답했다.
승부에서는 다케미야가 163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다케미야는 조훈현에게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으로 앞서는 몇 안 되는 기사다. 이날 승리로 8승 2패로 차이를 벌렸다.
해설의 장수영 9단은 “다케미야 9단이 여전히 공식대국에 참가하며 실전감각이 녹슬지 않은 반면, 조훈현 9단은 거의 이 대회만 나오고 있어 감각이 떨어진 것이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고 평했다.
다케미야 9단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23일 오전 속행된 4강전에서 다케미야는 중국의 위빈 9단을 만났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AI(인공지능) 승률 99.9%, 약 17집반 정도 우세를 유지하고 있던 다케미야가 190번째 수를 착점하려는 순간 돌이 손에서 빠져나가며 엉뚱한 곳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시간을 넘겨 버렸다. 규정상 이것은 백의 시간패.
다케미야는 시간패를 선언한 심판에게 항의의 제스처를 취했으나 곧 수긍하고 돌을 거뒀다. 하지만 현장에선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꼭 시니어들에게, 그것도 외국 기사들에게 익숙지 않은 초읽기 시계를 직접 누르게 하는 게 맞느냐는 것. 또 실수가 나왔다 하더라도 가차없이 시간패, 혹은 반칙패를 선언해 승부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게 과연 옳은 것이냐는 지적이었다.
현장의 한 관계자는 “모처럼 전설적인 기사들을 초청해 놓고 이렇게 반칙패로 끝내는 것은 대국 당사자나 TV를 시청하는 팬들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미 응씨배 같은 메이저 세계대회에서도 벌점제를 도입하고 있고, 국내 많은 대회에서도 벌점제를 도입해 설령 실수가 나오더라도 2집쯤 공제하고 이어나가는 마당에 70을 넘긴 기사가 실수로 돌을 떨어뜨렸다고 해서 반칙패로 종료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좀 더 팬 친화적이고 상황에 맞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행운의 승리를 거둔 위빈은 결승에서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결승전 후 가진 인터뷰에서 “심판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