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지키던 이 전 부지사 ‘쌍방울 대납 구두보고’ 진술…‘8월 영장설’ 거론에 이 대표 “신작 소설 엉망” 일갈
지난해 말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은 정치권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을 비롯한 쌍방울 전·현직 관계자들이 올해 1월을 기점으로 줄구속됐다. 쌍방울이 북한에 돈을 건넬 당시 경기도 대북파트 실질적 책임자였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쌍방울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앞선 지난해 9월 구속됐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키맨은 크게 4명 정도다. 우선 경기도 대북정책을 총괄했던 이 전 부지사, 막후에서 경기도를 대신해 북한에 금전을 제공한 주체로 파악되는 김성태 전 회장이 거론된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과 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은 세부사항을 조율한 주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키맨 4명에 대한 대질 신문을 진행하는 등 사건 진상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이 전 부지사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쌍방울이 경기도를 대신해 대북송금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전 부지사는 검찰 조사 내내 ‘대북송금은 경기도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2월 15일 수원지검 형사6부가 진행한 ‘4자 대질신문’에서 이 전 부지사를 향해 “우리(쌍방울) 쪽 사람 10명이 넘게 구속됐고, 회사가 망하게 생겼다”면서 “왜 나를 모른다고 하냐, 왜 형 입장만 생각하냐, 우리 입장도 생각해달라”면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 전 부지사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고,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수사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뒤로 사법리스크 이슈는 소강상태로 접어 들었다.
검찰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2차, 3차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올리기 애매한 상황이 됐다”면서 “체포동의안을 올리기에 부담감이 적어지는 ‘시점’과 확실하게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카드’가 맞물렸을 때가 되면 사법리스크가 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화영 전 부지사가 그동안의 입장과 배치되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은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부지사는 7월 초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방북비용 300만 달러를 쌍방울이 대납한다는 내용을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에게 두 차례 구두보고 했으며, 그보다 앞서 정진상 당시 경기도 정책실장에게 ‘이재명 지사 방북 추진 요청’을 받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검찰은 7월 11일 재판부에 이런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7월 18일 이 전 부지사 재판에서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 변호인 측에게 이 의견서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이 전 부지사 변호인은 “그동안 이 전 부지사가 도지사 방북 비용 대납 요청 여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이며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쌍방울에 방북을 한번 추진해달라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했다. 이 전 부지사 입장 선회를 사실상 인정한 발언이었다.
7월 18일 민주당에선 의원총회가 열렸다. 이날 총회에선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1호 혁신안’ 불체포특권 포기 결의가 채택됐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총회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전체적으로 정당한 영장청구에 대해 민주당이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정당한 영장청구 기준으로 언급된 건 ‘국민 눈높이’였다.
민주당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과 이화영 전 부지사 입장 선회가 맞물리면서 정치권에선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8월 영장설’이 거론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검찰이 다시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판이 깔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7월 21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이 전 부지사 입장 선회와 관련해 입을 열었다. 이 대표는 “또 신작 소설이 나오는 것을 보니 정권 지지율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면서 “저번 ‘변호사비 대납 소설’이 망하지 않았느냐, 아마 이번 방북과 관련된 소설도 스토리라인이 너무 엉성해 잘 안 팔릴 것”이라고 했다. 7월 19일 이 대표는 검찰을 향해 “수사를 해야 하는데 자꾸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쌍방울 대북송금 키맨 중 유일하게 ‘침묵의 자물쇠’를 채우고 있던 이 전 부지사 입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다시 영장을 청구할 경우 지난번처럼 회기 중 영장을 청구할지, 아니면 휴회 기간 중 영장을 청구해 국회 표결 없이 영장 심사가 이뤄질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7월 20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휴회 중 검찰의 영장청구 가능성과 관련해 “정치적 의도가 있는 수사이기 때문에 이 대표에 대한 망신주기식 또는 여론몰이를 하려고 하면 회기 중 (영장을) 신청할 것”이라면서 “비회기 중 (영장을) 신청하면 당연히 이 대표가 당당히 조사를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검찰이 의도하는 여론몰이가 잘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7월 19일엔 이화영 전 부지사 배우자가 자필로 A4용지 두 장 분량 탄원서를 민주당에 제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전 부지사 배우자는 탄원서를 통해 “신체적 고문보다 극심한 심리적 압박은 군사독재 시대 전기고문만큼 무섭다”면서 “남편이 고립된 채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지사 배우자는 “검찰이 김성태 회장 증언으로 이재명 대표에게 방북 대납 프레임을 씌워 기소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조작된 증언과 진술로 이 대표를 기소하기 위해 남편을 구속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 너무나도 많다”고 주장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