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키·불우한 환경 등 범행 동기 진술…동성 또래 노린 정유정 사건과 유사 분석도
별다른 직업이 없던 조선은 부모와 교류가 끊겨 어린 시절부터 이모와 살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뒤에는 인천의 이모 집과 서울 금천구의 할머니 집을 오가며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조선은 흉기 상해를 포함한 전과 3범이며, 학창 시절 14차례 소년부에 송치된 전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5월에 발생한 ‘정유정 살인 사건’과 유사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작은 신체 등 열등감 가득했던 조선
7월 21일 오후 2시 7분께 신림역 4번 출구 번화가에 도착한 조선은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을 숨지게 하고, 30대 남성 3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체포 직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조선은 “내가 불행하게 사니까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 차 범행을 한 것”이라며 “할머니로부터 ‘왜 그렇게 사느냐’고 꾸짖음을 들어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조선은 별다른 직업이 없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조선은 자신의 키가 작아 열등감이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 경찰 측정과 본인 진술에 따르면 조선의 키는 168cm. 조선은 “오랫동안 나보다 조건이 나은 또래 남성들에게 열등감을 느껴왔다”며 자신보다 키가 크거나, 잘생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또래에 열등감을 갖고 있었단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조선은 전과 3범에 학창 시절 법원 소년부로 14차례 송치된 전력이 있다. 조선은 스무 살이었던 2010년 1월 일면식 없는 손님과 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같은 해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사기 혐의로 약식기소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벌금 150만 원을 선고 받았다. 당시 조선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고의로 들이받아 보험금을 타낸 혐의를 받았다.
#2010년 신림에서 술병으로 폭행
조선이 신림역 일대를 범행 장소로 정한 이유에 대해 “이전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어 사람이 많은 곳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상인들에 따르면 신림역 일대는 서울대 등 인근 대학생들을 비롯해 타 지역의 젊은 층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해당 지역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인근에 서울대가 있다 보니 그 학생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밝혔고 또 다른 상인은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도 오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신림역 일대는 조선의 할머니 집이 위치한 금천구와 인접해 있다. 2010년 1월 손님과 종업원에게 폭행을 한 장소도 바로 신림역 인근에 위치한 술집이었다. 당시 조선은 해당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다른 손님과 시비가 붙었는데 말다툼했던 상대를 소주병으로 때려 전치 2주의 뇌진탕 부상을 입혔다. 또한 조선은 당시 자신을 제지하던 한 종업원에게도 깨진 소주병을 휘둘렀는데, 그 종업원의 오른쪽 팔 피부가 약 5cm 찢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또 다른 종업원의 복부를 500cc 맥주잔으로 1회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13년이 흐른 뒤 조선은 다시 흉기를 들고 신림역 일대를 찾았다. 그의 손엔 술병 대신 칼이 쥐어졌고, 그의 흉기가 향한 곳은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손님이나 이를 말린 종업원들이 아닌 길거리에서 일면식이 전혀 없던 성인 남성 4명이었다.
#청각장애 할머니 집 들러 흉기 훔치고 신림 향해
사건 당일인 7월 21일 오후 12시 3분께 거주지인 인천에서 택시를 탄 조선은 오후 12시 59분께 서울 금천구에 있는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한 시간 뒤인 오후 1시 57분께 할머니 집 인근인 금천구 독산동의 한 마트에서 흉기를 훔친 조선은 택시를 타고 신림역으로 향했다.
기자는 독산동 소재의 조선의 할머니 집을 방문했지만 할머니와의 의사소통이 어려워 인터뷰는 진행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도 “할머니는 1931년생인 데다 청각 장애가 있어서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조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 관계자는 “할머니는 조선의 범행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 접촉하면 안 된다”고 권고했고 이에 따라 더 이상의 인터뷰는 시도하지 않았다.
21일 오후 2시 7분께 서울 관악구 신림역 4번 출구 근처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린 조선은 훔친 흉기를 챙기고 첫 범행을 저질렀다. 조선은 4번 출구에서 약 90m 떨어진 상가 초입에 있던 첫 번째 피해자 A 씨(22)에게 흉기를 숨기고 접근한 뒤 갑작스럽게 공격했다.
A 씨는 처음에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10여 차례 자상을 입고 결국 힘이 빠져 쓰러졌다. 그 뒤 조선은 쓰러진 피해자를 한 번 더 찌르고 번화가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인근에 상점을 운영하는 B 씨는 “가게 근처에서 ‘쿵’ 소리가 나서 밖에 나가보니 피해자는 바닥에 누워서 버둥거리고 피의자는 피해자를 향해 칼을 10여 차례 휘둘렀다”며 “처음에는 피해자가 흉기에 찔려서 그런지 소리를 질렀는데, 나중에는 그 소리마저 내지 않았는데도 피의자가 찌르고 갔다. 확인사살을 하려는 게 분명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번화가 골목 안쪽으로 이동한 조선은 30대 남성 3명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두 번째 범행부터 네 번째 범행까지 걸린 시간은 3~4분. 그 이후 공격을 멈춘 조선은 흉기를 들고 주변을 배회하다가 인근의 한 스포츠센터 앞 계단에 앉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하자 조선은 오후 2시 20분께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됐다. 당시 스포츠센터에서 근무한 경비원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 채 태연하게 계단에 앉아 있었다”고 전했다.
#가정환경은 정유정과 유사
키가 작고, 부모 없이 자랐으며, 재산이 넉넉지 않은 등 자신의 콤플렉스를 이겨내지 못해 끔직한 범죄를 일으킨 조선을 두고 전문가들은 5월에 발생한 ‘정유정 살인 사건’과 유사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조선이 범행 동기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는 데다 우울증을 앓았다고 주장하는 등 진정성에 의문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또한 소년부에 14차례 송치됐음에도 교정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두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승재현 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가정환경이 안 좋았고, 부모와 떨어져서 성장하는 등 환경이 유사해 보인다”면서도 “‘할머니가 질타해서 화났다’ ‘펜타닐을 복용했다’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 등 여러 핑계를 대는 것을 보면 분노가 있다는 것 빼고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데, 만약 가정환경이 좋았더라도 조선은 범죄 성향을 드러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승 박사는 “학창 시절 조선이 14차례 소년부로 송치되는 동안 조금이라도 교정이 됐다면 이번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며 “소년범은 성인에 비해 교화될 여지가 많기에 더 적극적으로 교정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고 밝혔다.
한국범죄심리학회장을 지낸 김상균 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는 “가정환경과 학교생활 등이 불우했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지 못해 열등감으로 시달린 점을 볼 때 두 사건이 상당히 유사하다”며 “조선은 성장 배경이 안 좋았던 것과 더불어 소년범과 전과 기록으로 인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보니 시기, 질투, 분노 등이 동성 동년배에게 투사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전과자가 됐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 된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수사·사법기관에 불려가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른바 낙인 이론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며 “소년 범죄자들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교화 측면에서 개선할 것이 없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선은 범행 하루 전인 7월 20일 휴대전화를 초기화해 검색 기록을 삭제했고, 자신의 데스크톱 PC도 망치로 부쉈다. 그는 7월 26일 경찰 조사에서 “범행 전 살해 방법과 급소, 사람 죽이는 칼 종류 등을 검색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다.
경찰은 7월 28일 오전 조선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김수민 형사3부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하는 전담수사팀을 구성했으며, 해당 사건을 철저히 보완 수사해 계획범죄 여부와 범행 동기 등을 명확히 규명할 계획이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