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특혜 논란 1년 만에 채점 오류 발생…올 4월엔 채점 전 답안지 파쇄 대형사고도
#세무사시험 2년 연속 재채점
산인공은 2021년 제58회 세무사 2차 시험에서 공무원 특혜 의혹으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20년 이상 공무원은 면제받는 '세법학1부' 과목의 특정 문항에서 절반 넘는 수험생들이 0점을 받고, 전체 과락율(40점 미만)이 82%에 달하자 공무원 합격률을 의도적으로 높인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셌다.
실제 일반 수험생들이 탈락한 자리를 공무원들이 대거 채웠다. 전년도까지 5년 평균 2.53%였던 공무원들의 합격률이 그해 21.39%로 약 10배 올랐다. 결국 고용노동부와 감사원이 각각 감사에 나섰고, 두 기관 모두 '일관되지 않은 채점 기준'과 '출제 및 채점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시스템 부재' 등을 지적해 산인공은 개선을 약속했다.
이런 가운데 2022년 치러진 제59회 세무사시험에서는 문항 및 채점에 오류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됐다.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최근 '회계학 문제 1번, 2번 물음'의 채점이 잘못됐다며 산인공에 후속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산인공은 국세청 등과의 협의를 거쳐 조치를 논의하고 추가합격자를 추리고 있다.
착오가 발생한 문항은 접대비 관련 물음이다. '거래처에 접대 목적으로 증정할 제품 구입액'이라는 표현이 쟁점이 됐다. 기존 답안은 구입액을 시부인대상접대비에 포함했다. 반면 행정심판 청구인은 '증정할'은 미래시제로서 접대 자체의 행위가 이뤄지기 전이므로 구입액을 시부인대상접대비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행심위가 청구인의 손을 들어주며 산인공은 재채점에 돌입했다. 단, 기존의 답안을 취소하지는 않고 복수답안을 인정하기로 해 추가 합격자가 많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산인공 관계자는 "세무사 선발 자체는 국세청 소관으로, 자질과 결격 사유 등도 종합적으로 봐야 해 추가합격 인원이 어떨지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감사원 지적 '귓등'
국가자격시험의 출제 오류는 간혹 발생할 수도 있지만 산인공의 경우 벌써 수차례 되풀이한 탓에 비판이 특히 거세다. 2년 전 공무원 특혜 의혹 이후 진행된 노동부 및 감사원 감사의 후속조치로 산인공은 뒤늦게 75명을 추가로 합격시키는 한편 시험 출제 시스템도 대대적으로 고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감사원 등이 지적한 문제점을 그대로 반복해 발생했다. 감사원은 산인공이 시험 출제 과정에서 문항 표현의 적정성, 정답 시비의 여지 등을 검토하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점을 꼬집었다. 이 때문에 채점 기준이 채점위원의 뜻에 따라 임의로 변경된 경우가 많았다며 구체적인 예시까지 들었다.
게다가 올 4월 치러진 '2023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에서도 산인공은 대형 사고를 터트렸다. 수험생 613명의 답안지를 한 직원이 실수로 채점 전 파쇄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 수험생 147명은 피해보상으로 1인당 500만 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현재 진행 중이다.
그에 앞서 올 2월 진행한 제60회 변리사 1차 시험 '산업재산권법' 과목도 3개월 만에 행정심판에서 출제오류가 확인돼 51명이 추가합격하는 일이 있었다. 이 행정심판을 제기한 수험생은 1차 시험에서 불합격을 받은 탓에 하마터면 2차 시험에 응시조차 못할 뻔했다.
#이사장 사임, 직원은 수사…결국 '법 개정'
일련의 논란은 어수봉 전 산인공 이사장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그는 임기를 9개월여 앞둔 5월 "국가자격시험의 신뢰성을 담보해야 할 공공기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자격검정 관리를 소홀하게 운영해 시험 응시자에 피해를 입힌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부실한 시험 관리의 여파는 일선 직원들한테도 미친 상태다. 산인공 시험 관련 부서의 한 직원이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고발인은 이 직원이 2021년 세무사시험 출제위원 선정 과정에서 선순위와 후순위 인사를 뒤바꿔 위촉하고, 이런 사실을 숨긴 채 공문서를 작성하는 등 위계상 공무방해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수사한 울산중부경찰서는 '후순위 인사도 출제 자격을 갖춘 전문가'라는 점 등을 이유로 애초 불송치를 결정했으나, 울산지검의 보완수사 요구로 사건을 다시 살피고 있다. 울산중부경찰서는 선순위와 후순위 각각의 기준이 분명히 존재하는지와 위촉된 인사가 실제로 전문성을 갖췄는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중으로 전해졌다.
'산인공발 부실시험 논란'에 정부는 제도개선을 준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국회 기재위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세무사시험에서 경력 공무원의 일부 과목 면제 특례를 폐지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변리사와 관세사 등도 경력 공무원 특례를 인정하고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그 다음 관심사다.
권익위도 움직이고 있다. 2022년 '국민생각함' 설문조사 결과 3534명 가운데 2718명(76.9%)이 '국가자격시험 공직경력 특례 인정이 불필요하다'고 응답한 점을 바탕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공무원 특례를 국민들이 불필요한 특혜로 인식하는 현실"이라며 "조속히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