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위 등 법·제도적 시스템 제 기능 못해…“국가와 교육부 책임 크다” 지적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은 교원에 대한 예우와 처우를 개선하고 신분보장과 교육활동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고, 교원 지위 향상 및 교육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교원지위법 제15조에는 ‘관할청은 교육활동 침해행위로 피해를 입은 교원이 요청하는 경우 교육활동 침해행위가 관계 법률의 형사처벌규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관할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를 당한 교사를 대신해 교육청이 고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교직단체들은 해당 조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전국 유·초·중·고 교원 및 전문직 3만 29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교권침해 인식 및 대책 마련을 위한 교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 중 97.1%가 ‘지켜지지 않음’이라고 답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교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교육청 차원에서 대응을 해주고, 상담이나 변호사 선임 등을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안 되고 있다”며 “교사들이 실질적 지원을 못 받다 보니까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교원의 교육활동 침해 사안을 다루는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광주에서 9년째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A 씨는 “교사가 학부모나 학생에게 폭언을 듣거나 권리가 침해당해도 교권보호위원회를 열거나 신고를 하는 일은 거의 못 봤다”며 “학교 내에서 ‘교사니까 그냥 참고 넘어가라’는 인식도 많고, 교보위도 학교장에게 개최 권한이 있어서 잘 열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교권보호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학교장 재량으로 개최하고, 교장들 입장에서는 굳이 일을 키울 필요 없으니까 교사가 감내하라고 하는 것 같다”며 “교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의무적으로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릴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북의 한 사립중학교 교사 B 씨는 “한 학생이 수업에 성실하지도 않고,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해서 점수를 깎았는데 그 후로 해당 학생이 수업 방해를 여러 차례 하더라”라며 “그래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었지만 그 과정에서 교감선생님이 학부모의 협박을 받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B 씨는 “특히 사립 교원들은 재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기 더 힘들다”며 “제가 열게 된 것이 특이 케이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권보호위원회에서 학생이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했다고 인정될 경우 학교에서 봉사, 사회봉사, 학급 교체, 전학, 퇴학 등 8가지 조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학부모 등 외부인이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한 행위에 대한 조치 방안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10년 교직 경력이 있는 나현경 법무법인 오현 변호사는 “교원의 교육활동을 침해한 외부인에 대해서는 징계나 처벌 규정이 전혀 없다”며 “학생이 아닌 학부모 등 외부인에 대한 조치 사항도 새롭게 개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교사에게 적용되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는 교사의 정당한 지도도 아동학대로 신고될 수 있기 때문에 아동학대 예외조항을 만들어 명시하자는 것이다. 황유진 교사노조연맹 정책처장은 “지금은 학부모나 학생이 교장선생님한테 민원을 제기하면 교장선생님은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선생님을 바로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교육활동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현 공무원법은 아동학대로 수사기관의 수사나 조사를 받을 경우 직위해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직 특성상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법이 교사에게 불리하게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초등교사노조는 “전국 대부분 교육청이 아동학대 신고만으로 교사를 직위해제하고 있다”며 “법리적으로 명백하게 판명나기 전에 억울하게 직위해제되는 교사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잇단 교권침해 사례로 교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많지만 교육 주체가 학생, 교사, 학부모이니만큼 교권 보호 대책 마련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등한시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진영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활동가는 “정치권에서 앞서서 학부모, 학생, 교사를 갈라치기 하고 있다”며 “수업부터 모든 민원처리까지 교사 혼자 너무 많은 책임을 지게 한 국가와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고 보는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학부모와 학생의 탓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영 활동가는 “인권이 누구 하나의 것을 뺏어서 누구의 것이 보장되는, 이런 문제가 아니다”라며 “모두 각자의 인권을 어떻게 존중할지 함께 이야기할 때 나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가 함께 보장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정부와 여당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교사에 대한 인권 침해 상황이 그동안 학생인권을 강조해 생겨난 문제라거나 학생인권 조례가 제정된 탓으로 돌리려는 일각의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앞의 교사 A 씨는 “학부모가 민원을 넣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안전과 행복이 최우선이니까 어떻게 보면 민원을 넣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며 “다만 일부 악성 민원이나 무고성 신고에 대해서는 교사들도 대응할 만한 법이나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원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교육 시스템을 짜야 하는데 현재 시스템은 너무 이상만 좇은 것처럼 돼 있다”고 강조했다.
박은경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상임대표는 “학부모 민원은 교권침해의 피상적인 원인에 불과하다”며 “교육관계법령 어디에도 교사, 학생, 학부모의 권리를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교육부, 교육청, 교장의 권리만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상임대표는 “교권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은 교육을 지배하기 위해 교사, 학생, 학부모의 권리를 애당초 인정하지 않고 규정 보장하지 않은 정치권력이다”라고 말했다.
신민향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 대표는 “과도한 민원을 넣는 학부모님들이 있겠지만 모든 학부모님들이 악성 민원을 넣고, 고발을 하지는 않는다”며 “반대로 선생님들에 의해서 엄마들이 아동학대로 고발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이번에 교권 침해 이슈로 많은 선생님들이 집회를 하시는 것을 보고 학부모님들이 겁이 난다고 많이 연락이 온다”며 “‘그럼 학부모는 이제 선생님한테 전화도 못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시는 학부모님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도 논평을 통해 “일부 학부모들의 교권침해 사례들을 보면 교사의 권리 침해를 넘어 인권침해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면서도 “대다수 학부모는 교권침해 사례와 하등 관계가 없다. ‘학부모 갑질’ 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교권침해 사례를 보도하며 학부모가 교사를 괴롭히는 주체로 가고 있는 부분은 문제라 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교권뿐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까지 함께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은경 상임대표는 “우리나라는 극심한 경쟁 교육 체제로서 촘촘한 대학서열과 대학입시 경쟁이 그 정점에 있다. 내 아이의 점수가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가치고, 이를 위해 교권뿐 아니라 모든 것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며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경쟁 체제는 협력과 배려와 존중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박 상임대표는 “대학 서열체제, 대학입시 경쟁 체제를 폐기하고 대학을 평준화해야 한다”며 “학교민주주의 실현, 경쟁교육 체제 철폐로 교사와 학생들은 가르침과 배움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며, 교권도 학생인권도 학습권도 학부모의 교육권도 온전히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서로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문제 학부모 사태를 막기 위해 법을 만들고 교사를 보호하는 것이 일반 학부모의 교육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교육은 교사 혼자서가 아니라 학부모와 함께해야 한다”며 “문제 학부모의 문제 행동은 막더라도 일반 학부모의 교육열은 좋은 방향으로 발휘되도록 하고,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학생 교육에 힘을 모으도록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