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아틀라스’ 동성애 장면 등 38분 잘려나가…“나라 망신” ‘캐리비안의 해적’ 주윤발 분량 ‘반토막’
최근 개봉한 영화 ‘바비’ 역시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남중국해 영역을 표시한 ‘9단선’이 그려진 지도가 배경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인접국은 강력히 항의했고 결국 베트남의 경우에는 영화 상영을 전면 금지했다. 할리우드의 이런 변화에 대해 관계자들은 이 모든 게 수익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한다. 거대한 영화 시장인 중국과 그 자본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비’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 측은 9단선이 그려진 지도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영화에 등장하는 ‘바비랜드’의 지도는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크레용 그림이다. 어떠한 특정 주장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베트남에 이어 상영금지를 검토했던 필리핀은 지도 장면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조건으로 마지못해 상영을 허가했다.
9단선 때문에 논란을 빚었던 영화는 또 있었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지난해 3월 개봉한 톰 홀랜드 주연의 영화 ‘언차티드’ 역시 9단선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상영을 금지한 바 있다.
이번에는 미국 정치권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바비’가 중국 공산당의 선전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 공화당 소속의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상원의원은 “중국은 미국인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모조리 통제하려고 한다. 거대한 영화 시장을 이용해 미국 기업들에게 중국 공산당을 선전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실 중국이 지난 수년간 할리우드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많은 영화제작사들과 감독들이 중국의 엄격한 검열 규정을 통과하기 위해 영화와 드라마를 대대적으로 손보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 공산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중국판 편집본을 따로 제작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또한 중국 배우들을 캐스팅에 포함시키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조치들은 모두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세계 2대 박스오피스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할리우드는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에서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 산하 영화심사위원회의 검열을 통과해야 한다. 영화심사위원회는 매년 수십 편의 외국 영화를 검열한 후 상영 허가를 결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상영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영화와 드라마들은 가차없이 중국 내 상영이 금지된다. 때문에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산당의 요구에 따라 편집을 해야 하며, 지금까지 전세계 극장가를 강타했던 수많은 영화들의 경우 일련의 편집 작업을 거친 후 중국에서 개봉할 수 있었다.
검열에 걸리는 장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폭력적인 장면이나 노출이 심한 장면들은 통으로 삭제하거나 편집을 해야 하며, 중국인을 악당으로 묘사한 장면은 최소한 짧게 나오도록 손봐야 한다. 주인공이 동성애자로 묘사된 영화는 해당 장면이나 대사가 있는 장면을 전부 삭제해야 한다.
반대로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된 영화의 경우에는 중국 출신 배우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대폭 추가해서 따로 중국판으로 촬영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영화의 결말을 아예 중국 정부 입맛에 맞게 바꾸기도 한다.
#타이타닉(1998)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타이타닉’이 중국에서 개봉됐을 때 가장 문제가 됐던 장면은 여주인공이 알몸으로 누워있는 장면이었다. 주인공 ‘잭’ 역할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케이트 윈슬렛이 분한 ‘로즈’의 나체 초상화를 그리는 모습이었다. 오리지널 극장판에서는 ‘로즈’의 젖가슴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노출된 반면, 중국판에서는 목까지만 보이도록 편집된 후 상영됐다.
#로드 오브 워(2005)
불법 무기상 유리 올로프의 흥망성쇠를 다룬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로드 오브 워’의 경우에는 아예 결말이 바뀌었다. 오리지널 할리우드 버전에서는 올로프가 미 정부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후 무기 판매상으로 돌아가는 설정으로 끝난다. 이는 무기 밀매상이 돌아다니면서 거래를 하는 게 오히려 정부 입장에서는 득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다시 말해 무기 밀매상과 정부의 유착 관계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중국판 영화의 결말은 달랐다. 영화는 올로프가 여전히 감옥에 갇힌 상태로 끝난다.
#미션 임파서블 3(2006)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미션 임파서블 3’는 2006년 중국 개봉 당시 여러 장면이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삭제돼야 했다. 그렇게 삭제된 분량은 총 6분이었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이단 헌트가 상하이의 허름한 주택가를 달리는 장면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문제가 됐던 건 빨랫줄에 걸려있는 세탁물들이었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중국 정부는 이 빨래들이 화면에 보여선 안된다고 명령했고, 결국 제작사 측은 이 장면을 삭제해야 했다.
헌트가 납치된 약혼녀를 찾아 중국인들이 마작을 하고 있는 방에 들어가는 장면도 삭제됐다. 옆집에 여성이 인질로 잡혀있는 데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이 태연하게 마작을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CBC에 따르면 이는 마치 중국인들 대다수가 인질극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 중국 영화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이 장면을 두고 “정말 모욕적이었다”고 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벨(2006)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 ‘바벨’의 중국판은 미국판보다 5분이 짧다. 이 역시 검열 과정을 통해 상당 부분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됐던 부분은 나체로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었다. 중국 관계자는 “이 영화는 중국 관객들이 보기에 ‘너무 성적으로 노골적’이다”라는 이유로 해당 장면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카지노 로얄(2006)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던 007 영화 '카지노 로얄'은 대사 한 줄을 바꾼 후에야 중국 극장에서 개봉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주디 덴치가 분한 M이 “맙소사, 난 냉전 시절이 그리워(Christ, I miss the Cold War)”라고 말하는 장면이 문제였다. 대신 중국판에서 M은 “세상에, 난 옛날이 그리워(God, I miss the old times)”라고 바꿔 말했고, 이를 위해 덴치는 두 번 녹음을 해야 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덴치는 CTV 인터뷰에서 “중국에서는 그 대사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대사는) 원래의 대사와 그다지 같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2007)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인 이 영화에는 홍콩 배우 주윤발(저우룬파)이 싱가포르의 해적 사오펭 선장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중국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주윤발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이유는 주윤발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중국판에서는 대거 삭제됐기 때문이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주윤발은 국가를 모욕하고 망신을 주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오리지널 버전에서 주윤발은 총 20분 동안 스크린에 모습을 비치지만, 중국판에서는 분량이 약 10분으로 줄었다.
#맨 인 블랙 3(2012)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가 주연을 맡은 ‘맨 인 블랙 3’에서는 중국인들이 단역으로 등장하는 장면들이 대거 제외됐다. 가령 J 요원과 K 요원이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인 종업원으로 위장한 외계인들을 잇달아 제압하는 장면이 그랬으며, J 요원이 중국인 구경꾼들의 기억을 지우는 장면도 삭제됐다. 중국 정부는 이 장면이 중국인들에게 모욕적으로 비칠 수 있고,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당시 중국의 ‘남방일보’는 이에 대해 “이는 중국 정부가 사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스카이폴(2013)
또 다른 007 영화인 ‘스카이폴’ 역시 중국의 엄격한 검열 규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액션 장면 가운데 중국인 경비원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통으로 삭제됐고, 베레니스 말로에가 맡은 세버린이 과거 아동 매춘부로 일한 경험을 밝히는 장면 역시 심의에 걸려 삭제됐다.
#클라우드 아틀라스(2013)
톰 행크스와 할리 베리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그야말로 난도질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국판이 미국판보다 무려 38분이나 짧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시 된 장면은 동성애 키스를 포함한 성적인 장면들이었다. 앤디와 라나 워쇼스키 자매 감독과 톰 티크베어 감독은 중국에서 영화를 개봉하는 데 있어 ‘제약’이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중국 제작사 ‘드림스 오브 더 드래곤 픽처스’에 모든 걸 맡겼다고 말했다.
#아이언맨 3(2013)
‘아이언맨 3’의 경우 삭제된 장면은 없었다. 대신 일부 장면이 오히려 추가됐다. 중국판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에는 유명 중국 배우인 왕학기와 판빙빙이 아이언맨을 수술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비록 대화는 몇 마디 없었지만 중국의 의료 기술이 뛰어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추가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배우는 미국판에도 등장하지만 결과적으로 중국판에서는 더 오래 등장한 셈이 됐고, 이에 따라 중국판은 미국판보다 총 4분 더 길어졌다.
이 밖에도 왕학기가 분한 닥터 우가 중국 내몽골의 우유 회사인 ‘구리두오’ 제품을 마시는 장면도 추가됐다. ‘뉴욕타임스’는 ‘구리두오’가 과거 수은으로 오염된 분유를 리콜하는 사태로 곤경에 처했으며, 중국 정부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이 회사를 돕고 있다고 보도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이라면 으레 그렇듯 이 영화 역시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가득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 극장에서는 개봉 하루 만에 돌연 상영이 중단되고 말았다. 한 달 후에 재개봉됐지만 폭력적인 장면들이 대거 삭제된 ‘순한 맛’ 버전이었다. 가령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장고가 고문을 받는 장면뿐만 아니라, 영화의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인 피튀기는 총격전 역시 삭제됐다. 그 결과 중국에서는 미국보다 러닝타임이 3분가량 짧아졌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2016)
팀 버튼 감독의 판타지 영화에서 검열 대상에 올랐던 장면은 괴물들이 인간의 눈알을 먹는 장면이었다. 중국 정부는 검열 이유에 대해 “이 장면은 너무 폭력적이기 때문에 중국 관객들에게 공포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고 밝혔다.
#에이리언: 커버넌트(2017)
괴기스럽고 피에 굶주린 잔혹한 외계인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을 대거 삭제한 결과 중국판은 미국판보다 6분가량 짧아졌다. 외계인 영화인데 정작 외계인이 등장하는 스크린 타임은 단 2분밖에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화제를 불러일으킨 마이클 패스벤더가 1인 2역으로 연기한 데이빗과 월터의 동성 간 키스 장면 역시 중국판에서는 빠졌다.
#보헤미안 랩소디(2018)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보헤미안 랩소디’는 특히 동성애 장면이 문제로 제기됐다. 결국 ‘보헤미안 랩소디’ 중국판에서는 머큐리가 다른 남자와 키스를 하는 장면을 포함해 머큐리가 여자친구에게 커밍아웃을 선언하는 장면,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공연을 위해 여자 의상을 입고 나오는 장면도 삭제됐다.
#탑건: 매버릭(2019)
눈썰미 좋은 영화팬들은 ‘탑건: 매버릭’의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톰 크루즈가 연기한 매버릭의 항공 점퍼에서 무언가 빠졌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등에 붙어있던 대만 국기와 일장기 패치가 사라진 것이었다. 이 가죽점퍼는 매버릭이 파일럿이었던 아버지에게 유품으로 물려받은 것으로, 1편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 바 있다.
오래된 이 가죽점퍼의 등에는 미국 전함 ‘USS 갤버스턴 호’가 1963~1964년 6개월 동안 일본, 대만, 서태평양을 순회한 것을 기념하는 ‘극동 크루즈 63-4, USS 갤버스톤’이라고 쓰인 패치와 함께 미국, 유엔, 대만, 일본 국기 패치가 부착되어 있다.
예고편에서 이 패치가 수정된 이유는 중국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거나 국가로 지칭하는 모든 단체에 대해 보이콧과 보복을 하곤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이 패치는 예고편에서만 삭제됐고 실제 2022년 개봉됐을 때는 원복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탑건: 매버릭’은 결국 중국에서 상영되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되자 제작사 측은 과감하게 중국 시장을 포기했다.
#파이트 클럽(1999)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의 백미라고 하면 단연 충격적인 결말일 터. 그런데 얼마 전 중국 스트리밍 플랫폼에 올라온 이 영화의 결말은 달랐다. 기존 원작과 다르게 제멋대로 끝을 맺어버린 것.
원작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여자친구와 함께 은행을 비롯한 고층빌딩들이 폭파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는 소비지상주의를 파괴하는 것을 상징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처럼 무정부나 반정부 상태가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에 중국의 스트리밍 플랫폼에 올라온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폭발 장면 대신 검은색 바탕화면에 “타일러가 제공한 단서를 통해 경찰은 신속하게 모든 계획을 파악했고 범죄자들을 체포해 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았다”는 자막이 등장한다.
이렇게 되면 사실 영화 결말이 완전히 달라지는 셈이 된다. 이에 동명의 원작 소설을 쓴 척 팔라닉은 트위터에 “정말 ‘대단’하다. 중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결말을 맺는가 보다”라고 비꼬았다. 전세계 영화 팬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몇 주 후에는 원래의 결말대로 복구됐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