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발견하는 건 외지인’ 이주 적극 홍보…젊은 도전자들 수산물 동결 상품 개발·말린 해삼 수출 등 성공
#일본 지자체 사활 건 로컬브랜딩
사누키 우동의 본고장인 일본 가가와현은 2011년 ‘우동현’이라는 별칭을 만들었다. 딸기 최대 산지인 도치기현은 2018년 ‘딸기왕국’으로, 게 어획량이 제일인 돗토리현은 ‘게’를 일컫는 일본어 가니를 붙여 ‘가니토리현 웰컴 캠페인’을 전개 중이다.
일본 열도 각지에서 미식 브랜딩이 활발하다. 특색 있는 음식을 내세워 지역을 홍보하려는 것.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나카 준이치 씨는 “관광 유치와 지역 산업의 활성화 목적도 있지만, 최종 목표는 이주자를 늘리기 위함”이라고 지적한다. “여행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미식이며 그 지역에 흥미를 갖게 하는 계기로 음식만 한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다나카 씨는 “반복적으로 방문하는 관광객이 늘어나면 그중에는 매력을 느껴 지역 이주를 고려하는 사람도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농어촌 지역사회의 절실한 과제는 생활인구 유지다. 교통수단, 상업시설, 병원 등 생활에 필요한 설비를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인구가 필요하기 때문. 거의 모든 지자체가 이 같은 고민을 안고,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특별히 젊은층에게 지역을 홍보하려는 지자체가 많다. 일례로 지난 5월 돗토리시는 일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아티스트 ‘새로운 학교의 리더즈’와 깜짝 협업을 진행했다. 신곡 뮤직비디오를 돗토리시에서 촬영, 공개한 것이다. 덕분에 전국에서 ‘성지순례’로 찾는 20대가 많아졌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현지를 방문하게 하는 것이 프로모션의 주요 목적 중 하나였다”고 한다.
Z세대는 자신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머뭇거리지 않고 움직이는 행동력이 특징이다. “몇 번 방문하다 보니 그 지역이 마음에 들어 ‘2~3년 정도 체류해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주를 고려하는 젊은이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요컨대 미식 브랜딩으로 관심을 끌고, 이주해온 젊은이들이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지역 재생으로 이어진다.
성공 공식을 잘 따른 곳이 바로 시마네현의 아마초 섬이다. 아마초는 육지에서 60km 떨어진 낙도로, 한때 지자체의 재정 악화로 파산 직전까지 내몰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특산품인 소라를 넣은 레토르트 카레가 크게 히트를 치며 화제가 됐고, 이후 젊은이들이 이주하면서 지역자원을 개발하고 상품화하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 매체 주간여성은 “아마초에 가면 재밌는 도전이 가능하다. 성취감을 느껴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 젊은이들을 불러모은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섬에서 보물찾기’ 젊은이가 몰리는 마을
아마초는 자연자원이 풍부한 섬이지만, 유명 관광지는 아니었다. 낙도의 숙명일까. 1950년 6986명이던 인구는 2000년대 3분의 1인 2300명까지 줄어들었다. 설상가상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로 나가버려 고령화율은 41%나 됐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무인도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고, 지역 재생을 위해 주민과 의회가 일치단결했다. 먼저 정장(町長·면장)이 솔선해 월급의 50%를 삭감하는 등 행정 인건비를 대폭 줄였고 그만큼을 육아와 귀촌 지원비로 돌렸다. 동시에 섬에 묻힌 자원을 상품으로 개발하는 데도 힘썼다.
“섬에 사는 우리는 숨어 있는 자원의 가치를 깨닫기 어렵다. 발견해 주는 것은 섬 밖의 외지인이다.” 아마초 주민들은 의욕 있는 외부 인재들이 섬에 체재할 수 있도록 인터넷 이직 사이트 등에 ‘섬에서 보물찾기를 하지 않겠냐’며 적극 홍보했다. 2005년 오사카에서 이주한 이시다 다이고 씨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보물찾기’라는 문구에 끌려 이주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신선도는 그대로 유지한 채 수산물을 순간동결하는 CAS(Cells Alive System) 가공시설에 다니던 중이었다. 아마초는 오징어, 굴 등 신선한 어패류가 수확되고 있지만, 낙도이기 때문에 시장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돼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취약점이 있었다. 이에 이시다 씨는 CAS 기술을 도입해 ‘팔리는 상품’ 개발에 승부를 걸었다. 덕분에 도쿄 등 대도시에 출하가 가능해졌고 오징어는 순이익이 3배 이상 증가했다.
말린 해삼도 이주자들이 발굴한 보물이다. 2005년 당시 히토쓰바시대 학생이었던 미야자키 마사야 씨는 아마초 마을이 마음에 쏙 들었다. 졸업 후 은행 취직이 내정돼 있었으나 어업을 하고 싶다며 아마초로 이주했다. 그는 “지역 특산품 해삼을 중화요리의 고급 식재료인 건어물로 가공해 중국으로 수출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를 위해서는 가공시설이 필수적이었고, 국가 보조금을 받아도 마을에서 7000만 엔(약 6억 4000만 원)을 마련해야 했다. “개인 사업에 귀중한 세금을 쓸 수 없다”며 의회에서는 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사업이 성공하면 중국에서 많은 돈이 들어오고 그만큼 현지 어부들에게도 분배되니 모두의 소득이 오르게 된다”고 설득, 2007년 드디어 예산화에 이르렀다. 지금은 말린 해삼이 마을의 귀중한 수입원이다.
이주자들의 성공 체험이 입소문과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퍼지면서 뒤따라 ‘젊은 도전자’들이 속속 아마초를 찾아왔다. 2021년까지 이주자는 모두 873명.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14명은 지금도 섬에 남아 아마초 인구(2021년 3월 말 기준 2212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가깝다. 인구 감소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고 연령 구성은 젊어졌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원격근무가 정착되자 도쿄 기업에 근무하면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 제조를 계획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섬에 유일하게 있는 도젠고등학교는 한때 입학 정원 미달로 폐교 위기였지만, ‘섬유학’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마련해 이제는 지원자가 몰리는 역전 상황을 맞았다. 심지어 육지에서 섬으로 유학 오는 학생들의 입학 경쟁률이 2 대 1까지 올랐다. 저출산·고령화에 인구 유출로 생기를 잃어가던 섬은 어느새 활력을 되찾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