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김수남 등 ‘50억 클럽’ 후속 수사 관심…‘위례 몸통’ 정재창 건재, 플리바게닝 의구심
대장동 민간업자들 사이에서는 주목하는 인물이 또 있다. 대장동 전초기지로 불린 위례신도시의 핵심 정재창 씨다. 김만배·남욱·정영학 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구속도 재산 몰수도 안 된 채 버젓이 대외활동까지 해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다. 일각에선 사실상의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을 추측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50억 클럽 '긴장모드'
검찰이 재도전 끝에 박 전 특검을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윤재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8월 3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수재 등) 혐의를 받는 박 전 특검의 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발부 이유를 설명했다. 첫 구속영장을 기각한 지 한 달 만이다.
이번 검찰은 자신감을 내비쳐 왔다. 한 달 전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체면을 크게 구긴 탓에 만회 의지가 남달랐다고 한다. 오는 9월이면 대장동 수사가 2년째인데 누구보다 법과 검찰을 잘 아는 박 전 특검을 이제야 구속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는 지적에 큰 부담을 느꼈다고 전해졌다. 증거를 인멸하고도 남을 시간이라는 비판이었다.
박 전 특검 구속으로 '50억 클럽' 수사가 탄력을 받을지 이목이 쏠린다. 특히 관련 의혹의 핵심인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해 검찰은 이미 한 차례 판정패한 상태다. 곽 전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상식 밖 퇴직금을 받았음에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서다. 우선 검찰은 7월 27일 곽 전 의원 아들 병채 씨를 다시 불러 보강수사를 진행했다.
그와 함께 '정영학 녹취록'에서 50억 클럽 명단에 오른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도 관심 대상이다. 특히 권 전 대법관은 숨죽여 오던 행보를 깨고 최근 변호사 활동까지 시작했다. 제너시스BBQ와 박현종 bhc 회장의 분쟁에서 BBQ 측 법률대리인으로 나섰다.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이 이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란 기대가 없지 않다. '50억 클럽'에 대한 특검법안이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만큼, 그 전에 '봐주기' 혹은 '늑장' 수사라는 오명은 벗어야 하는 상황인 까닭에서다. 늦어도 올해 안에는 승부를 낼 것이란 분석이다.
#위례 몸통도 '천하태평'
이런 가운데 대장동 사업을 잘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인물이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장동 사업의 모의고사 격으로 불린 위례신도시 개발 의혹의 핵심 정재창 씨다. 법무사 사무장을 거쳐 부동산 컨설팅업자로 활동해온 인물인데 김만배·남욱·정영학 등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유일하게 태연한 상황이다.
현재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사건은 정영학 등을 상대로 한 공갈 혐의뿐이다. 남욱 등의 일당과 대장동 개발 초기 '원팀'으로 움직인 정 씨는 이후 '정치권 등 로비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60억 원을 갈취하고 30억 원을 더 요구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채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장동 관계자들은 정 씨도 공범으로 주목해야 할 인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검찰도 위례·대장동 개발비리 혐의로 남욱과 정영학을 기소한 공소장에서 줄곧 정 씨를 한 몸으로 묶었을 정도로 그를 잘 안다. 이들이 배당 등으로 얻은 부당이익도 200억 원으로 추산했는데, 남욱·정영학과 달리 정 씨의 재산추징보전만큼은 하지 않았다.
실제 일요신문이 확인한 2013~2014년 경기지방경찰청의 대장동 수사기록을 종합하면 정 씨는 비중 있게 등장한다. 그가 위례 개발사업에 관여하다 대장동에도 합류한 계기는 자금조달과 토지주 설득 목적이었다고 한다. 남욱, 정영학, 조우형(천화동인6호 실소유주) 등과 '자문단'을 꾸려 로비 등 전반을 논의하기도 했다.
정영학이 자문단을 총괄지휘하고, 남욱이 정치권 로비 등을 벌이면 정 씨는 자금세탁을 도맡았다. 허위 용역계약서를 체결해 관계법인에 돈을 보내면, 이를 현금화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본인 몫까지 챙겼다는 증언이 있었다. 대장동 초기 사업 법인인 '씨세븐'을 쫓아내는 과정 역시 정 씨와 남욱이 중심이었다고 전해졌다.
2020년 김만배와 대화한 정영학의 녹취록에서도 정 씨의 석연치 않은 행보는 잘 드러나 있다. 정영학이 '부국증권' 등을 거론하며 "(정재창이) 부국의 자료도 마음대로 보고 오고, 방에도 마음대로 들어갔다"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부국증권은 남욱 등과 소통하며 대장동 개발사업 진출을 시도한 바 있고 올 4월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찹쌀떡 붙듯 아이언샷"
김만배·남욱·정영학에 더해 최근에는 천화동인 6·7호 실소유주인 조우형·배성준마저 소환조사와 함께 수익금 몰수조치가 이뤄졌으나 정 씨는 되레 재산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봄이든' 대표인 정 씨는 '봄의별'이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경북 김천의 땅을 매입해 부동산 시행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알려졌다.
특히 대외활동도 버젓이 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전부터 수준급 골프 솜씨를 뽐내왔다는 정 씨는 최근에도 각종 대회에 참가해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에는 수원CC 클럽선수권대회에 참가해 수원CC 최초 8승을 달성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소감에서 "찹쌀떡 붙은 듯한 아이언샷에 퍼터감이 좋았다"며 여유를 드러냈다.
2023년 6월 치러진 같은 대회에서도 4강에 진출하는 성적을 냈다. 한 매거진이 선정한 국내 골프 클럽챔피언 순위에서 그는 10위권이라고 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절대 고수' 등으로 불리는데, 팬을 자처하는 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도 여전히 게재돼 있다.
정 씨는 남욱 등에 대한 공갈 혐의를 받는 만큼 대장동 일당과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다. 또 위례신도시 개발에 함께 참여하며 관계가 돈독했던 호반건설과도 이제는 매우 틀어진 상황으로 전해졌다. 이에 정 씨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면서 남욱 등에 불리한 진술을 쏟아내 구속 등을 면하지 않았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장동 사업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전부터 민간업자들은 정재창의 플리바게닝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컸다"며 "정치권도 진상을 규명하려면 50억 클럽뿐 아니라 정재창 등 위례신도시 개발도 집중 추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리바게닝은 검찰이 수사에 협조해준 이들의 형량을 조정해주는 제도로 국내에서는 합법이 아니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구속 신청은 여러 요소로 기각했으며 구체적인 이유는 현재로선 밝힐 수 없다"면서 "정 씨에 대해서는 중앙지검이 진행하는 대장동 관련 잔여 사건과 함께 계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정 씨는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 등 일요신문의 연락 시도에 반응하지 않았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