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대비 낮은 효과 탓 지상파 한동안 외면…‘전설의 고향’ ‘M’ 등 공포 드라마 명맥 이어질지 주목
7월 29일 자체 최고이자 최종 시청률 11.2%(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SBS 금토 드라마 ‘악귀’는 시청자층의 핵심지표인 2049세대들의 ‘콘크리트 시청’으로 방영 내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첫 방송 시청률 9.9%로 시작해 2회 만에 10%에 진입하면서 종영까지 두 자릿수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중간에 하차하지 않고 엔딩까지 내달린 이런 굳건한 시청자들의 덕이 컸다. 이 같은 시청률 수치는 장르물, 그것도 지상파용 공포 드라마라는 한계를 넘어선 대중적 인기로 분석된다.
‘악귀’는 이른바 ‘납량특집’으로 불리며 오랫동안 여름의 안방극장을 차지해 왔던 지상파 공포 드라마 시리즈의 귀환으로 먼저 눈길을 끌었다. 1980~2000년대 중반까지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설의 고향’ 시리즈(KBS1, 2)부터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공포 드라마로 꼽히는 ‘M’(MBC, 1994), 그 뒤를 이어 ‘거미’(MBC, 1995), ‘고스트’(SBS, 1999), ‘RNA’(KBS2, 2000), ‘혼’(MBC, 2009) 등 다양한 공포 드라마와 여기서 파생된 예능 콘텐츠가 여름방학 시즌인 7~8월마다 방영돼왔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지상파에서 사실상 전멸되다시피 했다.
당시 방송가에서는 이 같은 ‘지상파 납량특집’의 부재에 대해 “투자와 제작비에 비해 효과가 떨어져 더 이상 제작을 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르의 특성상 PPL 등 간접광고의 효과를 누리기도 어려운 데다 여름철 ‘한철 장사’라는 점에서 종영 이후 재방송이나 지금의 VOD 서비스를 통한 수익 창출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멜로나 사극처럼 해외에도 꾸준한 수요가 있는 드라마와 달리 철저한 ‘국내용’이라는 점도 해외 시장 확장에 중점을 두고 있던 당시 방송가의 방향과 맞지 않았다.
귀신을 다루는 공포 장르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비과학적’인 측면이 방송 심의상 받아 들여지지 않는 기류가 오래 지속된 점도 지상파 공포 드라마 제작을 축소하는 데 한몫했다. 실제로 1990년대 공포 콘텐츠로 많은 인기를 누렸던 ‘토요미스테리 극장’(SBS, 1997~1999)과 ‘다큐드라마 이야기 속으로’(MBC, 1996~1999)도 방영 당시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미신과 비과학적 생활 태도를 조장해 시청자들에게 충격과 불안감을 주며 건전한 생활 기풍 조성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징계를 받은 바 있다. 흥행은 더딘 데다 심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장르에 지상파로서는 더 투자 가치를 느끼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져 왔던 셈이다.
이처럼 지상파가 공포 드라마의 제작에서 손을 떼는 사이 케이블과 OTT가 그 빈틈을 메워냈다. 특히 ‘장르 명가’ OCN에서 한국형 엑소시즘을 표방하며 선보인 ‘손 the guest’(2018)는 방영 후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포 드라마의 수작으로 꼽힌다. 진입 장벽이 높은 장르와 케이블 방송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최고 시청률 4%를 기록한 이 작품은 방영 내내 TV드라마 화제성 톱10 상위권을 지키며 동시기 방영된 ‘나의 아저씨’(tvN)에 이어 2018년도 드라마 화제성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0년 12월 넷플릭스로도 공개되면서 해외 시청자들로부터 “잘 짜인 스토리의 호러 드라마. 호러 팬이라면 한번쯤 봐야 한다”는 호평도 얻어냈다.
‘악귀’의 김은희 작가의 전작이자 조선시대에 좀비 호러를 더했다는 생소한 퓨전 장르를 선보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2019) 역시 지상파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함이었다. 국내보다 먼저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며 시즌2와 외전으로 이어진 ‘킹덤’ 시리즈의 성공은 지상파로의 장르 역수입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공개 직후 이른바 ‘문화 공정’ 논란으로 2화 만에 방영 중단되긴 했지만, SBS에서 ‘킹덤’과 유사한 ‘조선구마사’를 통해 공포 드라마 제작의 유효함을 알린 것이다. 이후 같은 방송사에서 김은희 작가가 ‘악귀’로 다시 한 번 공포 드라마의 건재함을 알린 셈이니 그를 뒤따를 후발 콘텐츠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방송가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공포나 오컬트 콘텐츠는 지상파 방송보단 유튜브나 케이블, 개인방송 콘텐츠 제작으로 치중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지상파에서는 이미 레드오션이고 리스크도 높은 장르를 굳이 건드리려 하지 않는 기류가 강했던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이제까지 한국에서 인기 있었던 공포 드라마를 생각하면 단순히 공포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M’처럼 당대 사회 문제와 결부시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많았다. 이번 ‘악귀’ 역시 소외되고 아픈 청년들의 삶을 함께 조명하면서 장르 팬덤과 일반 대중들의 공감을 모두 충족시킨 것”이라며 “소재와 스토리가 좋다면 한동안 묻혀 있던 장르도 핫이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니 이를 발판으로 한국형 납량특집의 부활이 이뤄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