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부정적 이미지 확산…“무량판 구조 건축 기법 아닌 관리·감독 문제” 지적도
LH는 지난 4월 발생한 인천 검단의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이후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모든 LH 아파트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LH 발주 아파트 중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91개 단지를 점검한 결과 15개 단지에서 있어야 할 철근이 빠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파주 운정(A34 임대), 남양주 별내(A25 분양), 아산 탕정(2-A14 임대), 음성 금석(A2 임대), 공주 월송(A4 임대), 5곳은 주민들이 이미 입주를 마쳤다. 현재 입주가 진행 중인 단지는 수서 역세권(A-3BL 분양), 수원 당수(A3 분양), 충남도청 이전 신도시(RH11 임대) 3곳이다. 오산 세교2(A6 임대)는 공사를 마치고 입주 예정인 단지다. 아직 공사 중인 곳은 파주 운정3(A23 분양), 양산 사송(A-2 분양), 양주 회천(A15 임대), 광주 선운2(A2 임대), 양산 사송(A-8BL 임대), 인천 가정2(A-1BL 임대), 6곳이다.
LH 관계자는 철근 누락 사유에 대해 “설계 도면상에서 전단보강근(철근)이 누락된 경우도 있고, 구조 계산 자체에 오류가 있었던 경우가 있고, 시공 과정에서 설계에는 있었으나 반영이 잘 안 된 경우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LH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인천 검단 아파트 붕괴사고 이후 무량판 구조 적용 LH 아파트 점검에서 누락된 단지가 10개 더 있었다는 것이 지난 9일 확인되면서 전수조사마저 부실하게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LH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주택 수요자들이 추후 LH가 공급하는 아파트를 꺼리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전체 건설업계의 신뢰도 하락도 피하기 힘들다. 건설업계 관계자 A 씨는 “철근을 빼먹는다는 것은 인명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건설인으로서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데, LH 부실시공 사태로 건설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확산되고 있어 억울하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 B 씨는 “LH는 내부에서도 점검을 철저히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곳인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시공사 탓을 하고 있다”며 “부실시공 사태가 이어지면서 민간건설사들에도 ‘부실’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 학장도 “이번 사태로 모든 건설인들이 부실공사에 참여한 것처럼 국민들이 생각하실 것 같아 상당히 속상하다”며 “건설‧구조‧안전 전문가들이 나서서 사고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보강방법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있었던 철근누락 아파트 15개 중 하나인 음성 금석 LH2단지 주민설명회에서 LH 관계자는 “시공사가 설계 도면을 잘못 읽어서 천장에 시공해야 할 철근이 주차장 바닥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또 문제가 된 15개의 단지 중 10곳은 시공 오류가 아닌 설계 오류로 나타났지만, 정부는 원인 파악도 없이 시공사 명단을 공개했다. 이는 해당 건설사들이 모두 부실시공을 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어 업계의 우려가 크다.
철근 누락 아파트가 발표된 이후 정부는 무량판 구조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에 나섰다. 조사 대상은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중 시공 중인 현장 105개소와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 188개소 등 총 293개소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전수조사로 무량판 구조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 A 씨는 “무량판 구조는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는 선진 건축 기법이고, 설계와 시공을 잘하면 전혀 문제가 없는데 무량판 구조가 문제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며 “건축 기법이 아닌 시공에서 작업자의 실수나 설계에서 실수를 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형준 전 학장은 “무량판 구조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장점이 있는데, 그 장점을 살리려면 전담 보강을 철저히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반 구조의 아파트들도 제대로 시공하지 않고, 관리 감독하지 않으면 똑같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민간아파트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입주자들의 법적 소송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아파트 하자 소송 등이 많이 늘어날 것 같다”며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집값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서 손해배상 청구 등을 적극적으로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상흠 법무법인 우리들 변호사는 “조사 결과 하자가 있다고 밝혀지면 손해배상 등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이 당연히 있다”고 말했다.
다만 관련 소송들이 입주자들의 승소로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손해배상 제도는 실질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게 있을 때 그 실손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게 원칙인데 지금 같은 경우는 실손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며 “정신적인 피해를 주장할 수도 있지만 보통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을 안 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상흠 변호사는 “공사가 잘못돼 붕괴되거나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신체상의 피해나 붕괴가 없으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LH 아파트 철근누락 사태로 인해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이고, 정부의 관리‧감독이 강화되면 주택 공급에 차질이 생겨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단 교수는 “설계, 시공, 감리 등 총체적으로 부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이면 건설사들이 주택건설을 많이 안 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당장은 아니겠지만 20~30년 후에는 주택이 부족해져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 A 씨는 “철근 누락 사태로 정부의 관리‧감독이 까다로워지고, 간섭이 많아지면 주택사업을 하는 민간업자들, 시행사, 재개발‧재건축 조합 등에서 발주하는 사업들이 많이 위축될 것이고,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며 “간섭이 많아지면 그만큼 공사 기간이 늘어날 것이고, 공사 기간이 늘어나면 원가 투입이 많이 돼서 결론적으로 분양가가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부동산 시장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집을 살 때 개별 아파트의 품질 등을 보고 집을 사고 팔기보다 입지와 브랜드를 사고 팔았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철근누락 사태가 집값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건설업계 생태계를 점검하고 제도적 개선보다 원칙을 잘 지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송창영 광주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부실시공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건설 생태계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건설업계는 인력난이 심하고, 연령대가 높은 사람이나 외국인들이 많아서 업계에 많이 분포돼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사안은 제도적 개선보다 실행 역량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며 “부실공사 논란도 제도가 없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설계와 충실한 시공을 하는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원칙 준수에 수반되는 비용의 증가가 있다면 이를 공사비에 적절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동시에 원칙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적절한 패널티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LH 관계자는 “현재 15개 단지에 대해서는 보강공사가 진행 중이고 마무리된 곳도 있다”며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현재 입주민들의 불안 해소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손해배상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