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책사유로 인한 보궐선거 부담, 대통령실 의중 거스르기 힘들 것이란 관측…무소속 측면 지원도 거론
윤석열 정부는 8월 14일 ‘광복절 특사’를 단행했다. 총 2716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선언했다. 명단에서 가장 눈길을 끈 이름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었다. 김 전 청장은 청와대 특별감찰반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한 뒤 정치권에 진출했다. 제21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강서구청장으로 당선됐다.
김 전 청장은 과거 각종 의혹을 폭로했을 당시 공무상 기밀누설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확정 받았다. 그는 지난 5월 직을 상실했다. 그로부터 석 달 만에 김 전 청장은 부활의 날갯짓을 펼 수 있게 됐다. 광복절 특사로 출마가 가능한 몸이 된 까닭이다.
김 전 청장은 8월 14일 소셜미디어(SNS)에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김 전 청장은 “사면을 결정해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당국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당과 국민이 허락해주신다면 내게 남은 시간을 다시 강서구에 더욱 의미 있게 쓰고 싶다”고 밝혔다. 사실상 출마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당 내부에서는 김 전 청장 사면에 대해 곤혹스런 반응이 새어나오기도 한다. 국민의힘 당규 제39조 제3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 귀책사유로 발생한 선거의 경우 후보자를 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김 전 청장이 사면되면서 ‘무공천 원칙’이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더구나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김 전 청장이 재출마를 할 경우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더군다나 국민의힘은 2021년 4·7 보궐선거 당시 귀책사유가 있었던 민주당이 후보를 냈던 것을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전 청장 케이스는 다르다는 견해가 여권 내부에서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전 청장이 유죄판결을 받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문재인 정부 핵심 권력기관인 청와대 관련 공익신고에 따른 유죄 판결이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김 전 청장 사면 주체는 대통령실이다. 여권 내부에선 ‘보궐선거 재출마’를 염두에 둔 대통령실 의중이 이번 광복절 특사에 강력히 반영된 것 아니냐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여당이 김 전 청장 비토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김 전 청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국민의힘이 그를 ‘측면 지원’하는 방식으로 선거를 치를 것이란 시나리오가 고개를 들었다. 이에 대해 한 여권 관계자는 “먼저 김 전 청장이 유죄를 선고받고 직을 상실한 것이 국민의힘 ‘귀책사유’가 되는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전 청장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 유죄판결은 사회적 가치인 공익제보 및 공익신고 권장과 맥이 완전히 다른 판결이었다. 귀책사유가 국민의힘 혹은 김 전 청장에게 있는지, 아니면 김 전 청장이 폭로한 의혹 당사자들에게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김 전 청장이 공무상 기밀을 누설한 것인지, 아니면 공익신고를 한 것인지는 유권자에게 판단할 권리가 있다. 대통령실이 김 전 청장을 사면한 의도도 그런 것 아니겠느냐. 그런 측면에서 김 전 청장을 공천해 정면승부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10월 11일로 예정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지닌 정치적 의미는 남다르다. 강서구는 서울시에서 송파구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기초자치단체다. 2021년 4·7 보궐선거가 대선 전초전 역할을 했다면, 김 전 청장이 출마 의사를 내비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2024년 총선 전초전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총선 승부처인 수도권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그간 총선에서 야권에 다소 유리한 지역으로 평가됐다”면서 “강서구 민심은 수도권 민심 평균과 비슷한 구조를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이 다소 우세한 지역인 강서구에서 나타나는 민심 향방이 향후 총선 수도권 민심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서구에서 활동하는 여권 관계자는 “김 전 청장은 기존 국민의힘 지지층에 ‘인물의 참신함’을 더해 강서구청장으로 당선됐다”면서 “약 1년 동안 구청장 재임 기간 동안에도 김 전 청장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김 전 청장은 본인이 추진하던 강서구 숙원사업을 재개하는 것에 상당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면서 “정치적 부활보다도 강서구 발전에 대한 애착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권에선 김 전 청장 사면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8월 15일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가짜 공익제보자에게 출마를 열어준 데 대한 국민의 심판이 남아 있음을 명심하라”면서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법치를 스스로 파괴했다”고 맹공했다.
권 대변인은 “김 전 청장이 광복절 특사 확정 1시간 만에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면서 “김 전 청장에게 묻겠다. 이번 사면복권을 ‘대통령 출마 재가’라고 착각하는 과대망상에 빠진 것 아니냐”고 했다.
야권 일각에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프레임이 ‘김태우 대 비김태우’ 구도로 치러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감지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로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태우 전 청장은 검찰수사관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를 폭로하며 이름을 알렸다. 김 전 청장은 2018년 12월부터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등 파괴력 있는 이슈를 연이어 폭로했다. 2019년 1월 8일 김 전 청장은 국가권익위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을 둘러싼 부패 관련 내용을 신고했다.
시간이 흐른 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유재수 전 부시장 등 김 전 청장 폭로 대상이 됐던 인물들이 연이어 유죄판결을 받으며 폭로 내용이 사실로 입증되기도 했다.
‘김태우발 핵폭탄급 연쇄 폭로’가 공익제보인지 공무상 비밀누설인지를 두고 그간 공방이 많았다. 형법(제20조)상 위법성이 조각되는 사유에 공무상 기밀누설죄는 포함되지 않는다. 법조계 관계자는 “2018년과 2019년 당시를 돌아보면 김 전 청장 본인도 이런 법 조항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공익이 목적이라면 불나방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각종 비위를 폭로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2019년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고소했다. 김 전 청장이 폭로한 의혹 35건 가운데 15건이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에 해당한다는 취지였다. 2019년 4월 25일 검찰은 임 전 실장이 고소한 15건 중 5건에 대해 김 전 청장을 기소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김 전 청장이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 재판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전망을 줄곧 내왔다. 2021년 1월 8일 김 전 청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심 유죄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김 전 청장은 지난해 6·1 지방선거에 출마해 강서구청장으로 당선됐다. 임기 시작 두 달째였던 그해 8월 12일 김 전 청장은 2심에서 1심과 같은 판결을 받았다. 지난 5월 3일 대법원은 판결을 확정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민의힘이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공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김 전 청장을 공천하지 않는 경우엔 ‘정치적으로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는 취지로 사면을 결정한 윤석열 대통령 의사를 무시하는 모양새가 된다”고 했다.
신 교수는 “국민의힘이 김 전 청장 행보를 바라봐 왔던 논리와 이번 특별사면 과정에서 유추되는 윤 대통령 의중으로 비춰봤을 때 김 전 청장이 보궐선거에 재출마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