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기간만큼 촬영해 애정 남달라, 남성 팬 생겨”…팬들 원하는 ‘멜로’도 고민중
“제 인생과 같이 한 작품이었죠. 요즘 군대가 1년 6개월 정도 복무하는데 그 기간에 근접한 촬영을 제가 했잖아요(웃음). 그만큼 애정도 남달라요. 제가 얼마 전 팬미팅이 있었는데 거기서 ‘D.P.는 제가 가장 애정하는 작품입니다’ 했더니 반응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팬 분들이 좋아하시는 멜로가 아니니까요(웃음). 그래도 덕분에 남자 팬들도 많이 생겼고, 제게는 자신감과 함께 ‘내가 이런 연기도 되는구나’라는 자존감을 준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이탈체포조’ D.P.로 일하게 된 이병 안준호의 이야기를 그린 ‘D.P.’의 두 번째 시즌은 앞선 시즌에서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던 ‘내무반 총기난사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격모독과 폭행, 성범죄까지 온갖 부조리가 벌어지는 작은 사회, 군대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순응하지 않으려 애쓰던 준호는 상냥한 선임 조석봉 일병(조현철 분)의 탈영과 그의 친구 김루리 일병(문상훈 분)의 총기난사 사건을 연달아 접하면서 점점 지치고 피폐해진다. 시즌 1에서 준호가 느꼈을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시즌 2의 첫 촬영을 맞이했다는 정해인은 그날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시즌 1에서 준호가 겪었던 사건들과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기억들이 있었죠. 어린 나이에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큰 충격이었을 거예요. 그런 서사나 준호가 가진 누적된 스트레스를 가지고 첫 촬영을 하면서 이 어린 친구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란 고민을 늘 했던 것 같아요. 그 촬영 첫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시즌 2에서는 군대 안의 좀 더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 조명을 비춘다. 특히 군인들을 소모품처럼 여기며 부조리를 해결하기보단 그 위에 번지르르한 뚜껑만 덮어놓기 바쁜 수뇌부들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을 분노케 했다. 시즌 1의 빌런이 내무반 안에서나 활개친 반면 시즌 2의 빌런은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더 큰 권력을 이용한 악행을 저질러 준호는 물론, 그의 조력자들을 전부 좌절시키는 식이었다. 시즌 1의 메시지가 군대 조직에 다소 한정된 이야기로 주목받았다면, 시즌 2의 메시지는 권력자가 존재하는 사회 전반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시즌 2에서 제일 못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각자 저마다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거라 누가 빌런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거죠. 시즌 1에선 황장수란 강력한 빌런이 있었고, 그들이 괴롭히는 행위가 정말 불편하게 나왔던 반면 이번엔 체계 안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모였기 때문에 어느 누가 빌런이라 꼽기는 어려워요. 다만 D.P. 시즌 2의 메시지는 군대 조직에 한정되지 않고 전반적인 사회 전체에 던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친구들이 ‘D.P.는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 이야기 같아’ 그런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됐어요. 군대에선 탈영병이지만, 회사로 생각한다면 그 안의 사회를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게 되니까요.”
그가 언급한 시즌 1의 악랄한 빌런 황장수(신승호 분)는 시즌 2에서도 깜짝 등장으로 시청자들을 그야말로 경악케 했다. 계급을 앞세워 후임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데 앞장서 왔던 그는 전역 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순한 청년의 얼굴을 한 채 준호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같은 대학의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준호를 마주하고 서로 경악과 분노가 한데 뒤섞인 눈빛을 주고받는 그 신을 두고 정해인은 “아마 (신)승호가 더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정말 공감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을 거예요(웃음). 그때 준호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이상하게도 우연히 마주쳤다는 것에 약간 할 말을 잃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나가서,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복학해서 하하호호 떠들며 웃고 있구나…. 저도 선임을 제대 후에 마주한 적도 있었고, 연락을 받은 적도 있는데 피하게 되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옛날에 비해 군대가 정말 많이 바뀌고 좋아지고 있다는 거죠.”
시즌 1에 비해 분위기가 많이 어둡고 가라앉아 있다는 평을 받은 시즌 2였지만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사랑한 콤비, ‘준호열’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준호의 맞선임이자 그의 유일한 이해자인 한호열 병장(구교환 분)이 등장할 때마다 숨통이 트인다는 게 시청자들의 공통된 평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야기의 초점이 군대의 좀 더 ‘높은 곳’에 맞춰져 있다 보니 이 ‘버디’의 활약은 시즌 1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지점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은 배우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시청평들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았어요. 그래도 아쉽다고 말씀해주시는 건 그만큼 준호와 호열이의 콤비 버디무비를 좋아해주신다는 거니까요. 다만 그렇게 계속 버디무비처럼 투닥거리기엔 그들 사이에 너무 큰 사건이 있었기에 그런 모습들은 상황에 맞지 않게 돼 버려요. 거기다 그 사건들로 이 인물들이 받은 충격과 데미지도 있었고요. 준호열의 이전 케미스트리가 그리우신 분들이라면 시즌 1을 다시 한 번 쭉 보신다면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그래도 여전히 이 둘의 티키타카는 시즌 2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다. 시즌 1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4차원 한호열에게 살짝 끌려다니는 입장이었던 준호가 이제는 ‘짬’이 생겼다고 파트너만큼이나 능글거리는 얼굴을 보여준다. 반대로 호열은 매사 가볍고 남에겐 크게 정을 두려 하지 않았던 모습에서 누구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앞뒤 재지 않고 상대에게 다가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섞여든 모습은 어두운 스토리 속에서 한줄기 빛이 돼 시청자들을 위로했다.
“시즌 1보다 준호가 좀 딥(Deep)해진 것도 있지만 호열이와 티키타카를 주고받을 땐 능글능글해요. 암호인 ‘야옹야옹’을 ‘어흥어흥’이라고 하는 것도 원랜 호열이 대사였는데, 교환이 형이랑 감독님이 ‘준호가 한 번 해보면 어때요?’ 하셔서 해봤더니 나쁘지 않더라고요. 한호열을 닮아가는 부사수 안준호가 표현된 신인 거죠(웃음). 또 준호가 한호열 병장에게 형이라고 처음 부르는 장면, 그걸 촬영할 때가 정말 제게 오래 남아있는 기억 중 하나예요. 군대에서 잘 챙겨주는 선임이 전역하는 경험을 군필자라면 한번쯤 해보는데 그때 느낌이 정말 이상하거든요. 보내줘야 하는데 보내주고 싶지 않은 이상한 양가감정. 이 사람이 가 버리면 난 어떡해, 누구한테 의지해(웃음). 준호를 챙겨주던 선임이 가는 장면이라 보기만 해도 감정이 북받쳤는데 감독님 디렉션은 ‘최대한 덤덤하게, 느끼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캐주얼하게 갔죠.”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여준 선임을 떠나보내고 준호는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 ‘병장 안준호’가 이끌어 나갈 ‘D.P. 시즌 3’에 대한 호응도 높지만, 이미 한 작품으로 오래 얼굴을 비춘 그에게서 새로운 도전을 보고 싶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정해인의 ‘멜로’만을 원하는 팬들의 원성(?)까지 달래려면 정해인은 몸이 열두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다. 아직 드라마 차기작 소식은 들려온 게 없지만, 내년 개봉이 예정된 영화 ‘베테랑2’를 시작으로 좀 더 활동 영역을 넓혀가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만일 ‘D.P.’ 시즌 3을 한다면, 저는 부름에 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야겠죠(웃음). 제가 데뷔 이래로 한 달 이상 작품을 하지 않는 시간이 없었는데 올해는 11월 말까지 팬미팅이 잡혀 있어요. 그 시간 동안 좀 더 제 스스로를 채우고 재정비하려고 해요. 저도 대중예술을 하는 배우이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인데 어느 한 장르로만 치우쳐 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좀 더 골고루, 다양한 장르를 하고 싶어요. 그런데 멜로 같은 경우는 워낙 팬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시는데 내년까지 그 장르를 안 하면 5년 동안의 ‘멜로 공백’이 생기더라고요(웃음). 이젠 할 때가 된 것 같아서 회사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