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대법원장이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많다. 간단한 사건도 몇 년간 재판이 끝나지 않는 사법부의 태업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법원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대통령의 장모가 법정구속이 된 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대통령은 법원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수족 같은 대법원장감이 필요할 것이다.
대법원장은 정권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이다. 대통령 자신을 반대하고 욕하는 존재들을 벌주고 정책을 측면에서 지원해 주어야 한다. 야권에서 제기하는 문제를 적절하게 외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장은 퇴임 후의 대통령에게 방파제의 역할을 한다. 법조계 인물들에 대해 정통한 고위직 법관 출신에게 대법원장 후보가 된 사람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항명하는 일 없이 대통령 말을 잘 들을 사람들이네.”
대통령은 충성심을 본 것 같다. 문제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그런 분들이 국회를 통과할 것이냐다. 과거의 사례를 본다. 전두환 대통령은 퇴임 후의 안전 등을 고려해 유태흥 대법원장의 유임을 희망했다. 유태흥 대법원장은 김재규 사건을 빨리 확정시켜 준 정권의 공로자였다. 후임 노태우 대통령은 그를 대법원장으로 유임시키려고 했다.
1985년 9월 2일경 한 판사가 법률신문에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 칼럼을 썼다. 대법원장은 그 판사를 바로 울산지원으로 좌천시켰다. 대한변협이 문제를 제기했다. 법관들이 들고 일어났다. 야당이 대법원장 탄핵소추를 발의하자 대법원장은 물러났다. 차기 대법원장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에 제출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그 안은 부결됐다. 대법원장 임명은 대통령의 정치력에 상처가 됐다.
윤석열 정권의 경직된 정국상황에서 대법원장 임명은 국회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장이 되려는 사람이 직접 야당 국회의원들을 만나 통과를 부탁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국회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야당은 어떤 반대급부를 요구할까. 대법원장이 되려면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법치가 후퇴해야 할지도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히 법치를 이슈로 내걸었다. 나는 역설적으로 정권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인물도 대법원장 후보감으로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게 어떤 사람일까. 과거의 사례는 오늘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과외금지를 5공화국의 치적으로까지 생각하고 그 위반에 엄벌을 선고할 것을 사법부에 요구했다. 그런 요구에 대해 이회창 대법관은 학문이나 배움에 제약을 가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일규 대법관은 시국사건에서 무죄 의견을 내는 반골이었다. 5공 정권에서 시국사건이나 정치사건은 그에게 배당되지 않았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노태우 정권은 국회를 통과할 인물로 퇴임한 이회창과 오성환 두 대법관을 떠올렸다. 판사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정권은 이회창은 반정부적 성향인 데다 소수의견을 내는 법관이라 신망은 있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인품이 무난한 오성환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이회창 전 대법관은 헌법재판소장으로 하자는 권력 내부의 결정이 있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오성환 전 대법관은 대법원장 취임을 거절했다. 이회창 전 대법관이 먼저 대법원장을 하면 그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대법원장은 판사들이 일생의 목표로 삼는 영광의 자리였다. 그걸 거부한 법관은 대법원장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이었다.
30여 년 전 내가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에서 일할 때 우연히 들여다 본 법조계 이면에 있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이회창 전 대법관 역시 헌법재판소장 자리를 거부했다. 야성이 강한 이일규 씨가 대법원장이 됐다. 이일규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어떤 요청이 있어도 그 사실을 담당 판사에게 전하지 않았다. 그렇게 법치의 섭리가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도 국회라는 장벽을 앞에 놓고 있다면 한번쯤 다른 각도에서도 돌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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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