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여론 여전히 존재하고 국제 인식·외교 문제로 집행 쉽지 않을 듯…“범죄 예방 연관성도 명확하지 않아”
지난 7월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과 8월 3일 경기도 성남 분당 서현역 주변에서 일어난 흉기난동으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지난 8월 17일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여성을 때리고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고, 피해자는 사건 발생 이틀 뒤인 19일 숨졌다. 이처럼 최근 흉악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30일 정부가 운영하는 ‘청원24’에 따르면 신림역, 서현역 등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 사형집행을 요구하는 청원글이 20건 가까이 올라왔다. 신림역 흉기난동으로 숨진 피해자 유족 측은 지난 7월 23일 가해자에 대해 사형 선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자신을 신림역 칼부림 사건 고인의 사촌 형이라고 밝힌 김 아무개 씨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를 통해 “유족들은 갱생을 가장한 피의자가 반성하지도 않는 반성문을 쓰며 감형을 받고 또 사회에 나올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에게 사형이라는 가장 엄정한 처벌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일부 법조계 관계자들과 정치인들도 사형집행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면 집행을 해야 한다”며 “계속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 것은 법무부 장관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형집행이 되고 있지 않으니까 법원에서도 사형선고를 잘 하지 않게 되고, 흉악 범죄자가 제대로 된 형량을 받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8월 5일 SNS를 통해 “미국·일본·중국도 매년 사형집행을 하고 있다”며 “유독 우리나라만 범죄자 생명권 보호를 위해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흉악범에 한해서는 우리도 반드시 법대로 사형집행을 하자”고 밝혔다.
사형집행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어떻게 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지 공공치안에 대해 더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장예정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사형집행에 대한 논의보다 어떻게 하면 공공의 치안 안정감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피해자 가족분들이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감히 ‘윤리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월 6일 SNS에 “처벌은 사고와 피해자가 발생한 후의 범죄자에 대한 징벌일 뿐”이라며 “먼저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사형집행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국제적인 인권 평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사형집행도 인권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형집행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한규 형사 전문 변호사(법무법인 공간)는 “사형선고가 확정된 자들에 대해서 사형집행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면서도 “대한민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라는 인식이 확정적이라 현실적으로 사형이 집행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형이 25년 넘게 한 번도 집행되지 않아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현재 사형이 확정됐지만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사형수는 59명이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사형이 20년 이상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장관도 쉽게 사형집행을 결정하지 못할 것”이라며 “현재 사형집행에 대해 여전히 반대 여론이 있어 집행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다른 국가들과 맺은 조약이 많다”며 “이런 외교적인 문제도 사형집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월 26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사형집행에 대해 “사형제는 여러 고민이 필요하고 외교적으로도 강력하다”며 “사형집행을 하게 되면 유럽연합(EU)과 외교관계가 심각하게 단절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U는 사형제도가 있는 국가는 회원국으로 받지 않고, 사형집행 국가와 각종 협약을 맺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형집행이 반드시 범죄예방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고 말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형집행이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는지와 관련해서는 조사 결과가 엇갈리고 있고,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며 “얼마 전에 열린 헌법재판소 사형제도 공개변론에서도 통계적으로 사형제도가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단언하기 어려운 미묘한 상태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형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는 오랫동안 학자들의 관심거리였지만 결국은 사형이 범죄를 예방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통설”이라며 “사회 경제적 원인, 외교적 원인, 기후 등 범죄에 영향을 미칠 만한 요소들은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살인범들이 사형을 모르고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거운 형벌이 아니라 확실한 형벌”이라고 말했다.
국제엠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미국에서 사형제도가 있는 주의 평균 살인사건 발생률은 10만 명당 5.71건, 사형제도가 없는 주에서는 10만 명당 4.02건이었다. 사형제도가 없는 주에서 살인사건 발생률이 더 적었다. 반면 영국에서는 1966년 사형 폐지 이후 20년간 살인사건이 60%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처럼 통계 결과가 모두 달라 사형과 범죄예방의 연관성에 대해 명확히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형집행 시설을 보유한 서울구치소·부산구치소·대구교도소·대전교도소에 관련 시설을 제대로 유지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형집행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시를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지만 법무부는 사형제가 존속되고 있어 시설점검은 통상의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동훈 장관은 “사형이 오래 집행되지 않아 법 집행 시설이 폐허처럼 방치되고 사형확정자가 교도관을 폭행하는 등 수형 행태가 문란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며 “사형을 형벌로 유지하는 이상 법 집행 시설을 적정하게 관리·유지하는 것은 법무부의 업무”라고 전했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세 번째로 사형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헌재는 1996년과 2010년에 모두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