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 상점·공공기관에 중국인 항의 전화 빗발…2012년 센카쿠열도 사태 때만큼 반일 정서 심각
중국 내 반일 감정이 심상치 않다.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다음 날인 8월 25일, 중국 장쑤성 쑤저우시에 위치한 일본인 학교가 계란 테러를 당했다. 같은 날 베이징 주재 일본 대사관에는 벽돌이 여러 개 날아들었다. 직원 부상이나 시설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일본 외무성은 중국에 체류 중인 사람들에게 “일본어로 크게 말하지 말라”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오염수 방류와 직접 관계없는 일본 현지 가게들도 중국인의 ‘항의 전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 일본 공공기관이나 학교, 음식점 등에 ‘바보들’ ‘오염수는 맛있냐’ 등 스팸 전화를 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례로 한 중국인 남성이 도쿄의 카레 전문점에 전화해 중국어로 “왜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느냐”며 따지는 모습이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올라왔다. 또한, 도쿄전력에는 오염수 방출이 시작된 뒤부터 27일까지 중국이 발신지로 보이는 전화가 6000통 이상 걸려왔다고 한다.
감정적인 글도 확산 중이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는 “3일 동안 일본에 5차례의 지진이 발생했다”라는 뉴스가 ‘트렌드’ 1위를 차지했다. 관련 글에는 “인과응보” “일본이 영원히 가라앉길 바란다” “미국의 개 일본” 등등 비난 댓글이 빗발쳤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중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냉정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호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국민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암암리에 반일 운동을 용인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비친다. 산케이신문은 “중국에서는 전화는 물론 소셜미디어를 엄격하게 관리한다”면서 “이번 사태는 당국이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의 경기침체로 청년실업률이 20%가 넘는다”며 “일본이 중국의 불만 배출구가 될 위험이 충분하다”고 짚었다.
예상보다 강한 중국의 반발에 일본 정부 내에선 “장기전도 각오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지금 상황이 2012년 중국 내 반일 시위와 비슷해 보인다”고 전했다. 2012년 일본 정부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했을 때 중국에서는 반일 시위가 격해졌다. 일본인들에 대한 폭행 사건이 벌어졌으며, 일본계 기업의 건물과 제조설비를 파괴·방화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당시 중국 정부가 나선 후에야 사태가 진정됐다.
외무성 간부는 “중국에서 ‘처리수(일본 정부의 오염수 명칭)’에 대한 불안이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고, 중국 당국이 움직일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2012년 사태보다 심각할 수도 있다는 것. 원래 8월 28일 일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가 기시다 총리의 친서를 들고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갑작스레 연기됐다. 일본 언론에 의하면 “중국 측이 지금의 중·일 관계를 고려할 때 방문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사히신문은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던 일본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면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원전 오염수 방류를 일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정치 문제’로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덧붙였다.
일본 내 오염수 방류 여파는 어떨까. 마이니치신문이 8월 26~2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은 49%로 과반수에 가까웠다. “평가하지 않는다”는 29%에 그쳤고, 모르겠다는 22%였다. 반면,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 제1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60%에 달했다. “충분하다”는 26%에 불과했다.
중국뿐 아니라 일본 인터넷상에서도 “도쿄전력을 신뢰할 수 없다”며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일본 매체 닛칸겐다이는 “원전 사고 때 난무했던 도쿄전력의 거짓말이 원흉”이라고 언급했다.
도쿄전력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 당시 멜트다운(노심 용융)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 가능성을 부정한 바 있다. 국회 사고조사위원회의 현장 조사에도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 이에 현재까지 ‘상습적으로 문제를 은폐하는 기업’이란 이미지가 남아있다. 도쿄전력이 아무리 ‘안전·안심’을 호소해도 ‘신용할 수 없다’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 모른다.
후지TV 계열의 FNN프라임에 따르면 “중국의 거센 반발로 인해, 일본 내에서는 오히려 후쿠시마현의 고향납세(기부금)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당초 ‘풍평 피해(뜬소문으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직·간접적 피해를 보는 현상)’가 어느 정도 염려됐지만, 중국으로부터 스팸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일본인들이 일치단결까지는 아니더라도 후쿠시마를 응원하자는 움직임이 커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모든 식품 수입 전면 금지해도 일본 GDP 영향 미미?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을 전면 수입 금지함에 따라 일본 수산업계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중국은 일본 수산물의 최대 수출국으로 주요 수출품은 참다랑어와 가리비다. 이와 관련, 일본 매체 제이캐스트는 “수산업계에서 중국 시장은 압도적”이라며 “국내 시장과 대체 수출처 확보 같은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한 것은 정치적 제스처로, 오히려 자국 수산업에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 CNN 방송도 “중국이 일본 수산물의 최대 수출국이긴 하지만, 일본 전체 수출에서 수산물 비중은 1%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만일 중국이 일본의 모든 식품을 금지하는 최악의 경우라도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감소 효과는 약 0.04%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싱가포르국립대 충 자이안 교수는 로이터에 “중국의 일본 수산물 금지 조치는 중·일 경쟁의 일환으로 보이며, 일본과 미국의 밀착 관계를 볼 때 이는 당연히 중·미 경쟁과도 얽혀있다”고 말했다. 충 교수는 또 “중국이 오염수 방류 반대에 대해 진지하다면 일본산 기계류, 반도체, 자동차 수입을 제한하거나 감축하는 데 더 큰 신호를 보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