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공기 주입 등 가학행위로 7명 살해, 종신형 선고…경찰 여죄 수사 중, 추가 살해 의심 최소 30명 파악
비록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연쇄살인범이지만 평소 렛비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그가 ‘평범한 여성’이었다고 기억한다. 영국 북서부의 체스터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체스터 백작부인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수사를 담당한 니콜라 에반스 형사과장은 주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원만한 사회생활을 했고, 친구들도 있으며, 부모님도 모두 살아계신다. 때가 되면 휴가도 갔다. 어떤 곳에서도 특이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렛비는 그 나이 또래의 평범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렛비가 체스터 백작부인 병원에서 근무했던 기간은 2012년 1월부터 2016년 6월까지였다. 2012년과 2015년에는 각각 한 차례씩 리버풀 여성 병원에서 실무 연수를 하기도 했다. 신생아들이 병원에서 연달아 의문사한 시점은 렛비가 신생아실로 보직을 변경해 근무하던 2015년부터 2016년까지 1년 동안이었다.
렛비는 재판에서 배심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시점이 겹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항변한 그는 “나는 아기들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나는 아기들에게 해로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기들이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불확실한 이유, 혹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다른 의료진들의 실수 때문이었다며 책임을 병원 측으로 돌렸다.
그러나 검찰 측은 이런 주장을 일축하면서 “렛비는 아기들에게 이상 증상이 발생할 때마다 간호사와 임상 직원 가운데 유일하게 근무 중인 직원이었다”면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하다고 맞받아쳤다. 실제 병원 의료기록에 따르면, 2015년 6월 이전까지만 해도 체스터 백작부인 병원 신생아실에서 사망한 아기들은 많아야 1년에 세 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5년 1월부터는 사망하거나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겪는 아기들이 갑자기 늘어나는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더욱이 대부분의 아기들은 미숙아이긴 했어도 그전까지는 비교적 건강 상태가 양호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의학 전문가들은 사건들마다 하나의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바로 렛비가 늘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경찰이 렛비의 유죄를 더욱 확신하게 된 계기는 그의 집에서 발견된 메모 때문이었다. 렛비의 집에서 발견된 메모에는 “나는 살만한 가치가 없어. 나는 아기들을 돌볼 만큼 능력이 충분하지 않아. 그래서 일부러 죽였어”라거나 “나는 끔찍하고 사악한 사람이야” 등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나는 악마다. 내가 그랬다”라는 글씨도 대문자로 적혀 있었다. 또 다른 메모에서는 “나는 자격이 없어. 나는 절대 아이를 갖거나 결혼하지 않을 거야”라든가 “나는 절대 가족을 이루는 게 어떤 건지 알지 못할 거야”라는 등 사랑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표현했다.
렛비가 범행을 저지른 시간대는 주로 야간 근무를 섰던 늦은 저녁이나 한밤중이었다. 부모나 간호사가 아기 곁을 떠난 직후에 사건이 벌어졌으며, 생후 100일이나 퇴원 예정일 등 특정일에 범행을 저지르는 패턴이 있었다. 렛비의 범행 수법은 잔인하기 그지 없었다. 신생아들의 횡경막을 부러뜨리거나, 목구멍으로 튜브를 밀어넣거나 혹은 혈관에 공기나 인슐린을 과다 주입해 호흡 곤란으로 사망하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 같은 아기를 상대로 네 차례나 살해를 시도하는 집요한 모습도 보였다.
희생자들 가운데는 쌍둥이와 세쌍둥이도 있었으며, 이틀에 걸쳐 남매를 연속으로 살해한 적도 있었다. 가장 어린 아기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으며, 가장 나이가 많은 아기는 생후 11주였다.
가령 지금까지 알려진 첫 번째 희생자인 ‘아기 A’는 31주 만에 제왕절개로 태어난 쌍둥이 남아였다. 산소 공급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숨을 쉬고 있던 아기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것은 렛비가 교대 근무를 시작한 오후 7시 30분 이후였다. 오후 8시 26분, 렛비는 다급한 목소리로 “아기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면서 담당의를 호출했다.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32분 후 사망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아기의 혈관에 누군가 고의적으로 공기를 주입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남매인 쌍둥이 여아를 상대로 범행을 시도한 건 그로부터 28시간이 지나서였다. 아기는 출생 당시 약간의 심폐소생술이 필요했지만 빠르게 회복된 후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00시 30분경 갑자기 심박수가 떨어지면서 경보음이 울렸다. 당시 렛비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간호사는 “아기 몸 전체에 보라색 얼룩과 흰색 반점이 있었다”면서 “아기는 매우 아파 보였다. 전날 밤 죽은 쌍둥이 상태와 매우 비슷했다. 나는 단지 ‘이번엔 안돼’라고 생각했었다”고 증언했다. 다행히 아기는 회복되었고 한 달 후에 무사히 퇴원했다.
역시 미숙아로 태어난 또다른 쌍둥이 남아인 ‘아기 E’의 경우에도 비슷했다. 법원에 제출된 의료 기록에 따르면 아기는 처음에는 호흡 보조기가 필요했지만 이후 며칠 동안은 점차 호흡이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저녁 무렵 신생아 중환자실을 방문했던 어머니는 아들의 기괴한 울음소리를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면서 “그 울음소리는 작은 아기에게서 나와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무슨 소리인지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끔찍했다. 울음소리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웠다”고 증언했다.
인큐베이터 가까이 가보니 아들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고, 어머니는 즉시 패닉에 빠졌다. 의료진들이 아기를 소생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다음날 새벽 아기는 결국 혈액의 25%를 소실한 상태로 사망하고 말았다. 훗날 법정에서 어머니는 “그날 밤 인큐베이터 근처에 렛비가 서있었던 것을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렛비의 범행은 그칠 줄 몰랐다. ‘아기 E’를 살해한 다음날, 렛비는 ‘아기 E’의 쌍둥이 동생을 독살하기 위해 인슐린을 사용했다. 야간 근무를 하던 중 렛비는 ‘아기 F’에 연결된 주사관에 인슐린을 과다 주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의 심박수는 미친듯이 올라가고 혈당은 곤두박질쳤다. 의학 전문가 드위 에반스 박사는 재판에서 “아기 F에서 채취한 혈액 샘플에서는 인슐린 수치가 무려 4657에 달했다”면서 “이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아기 F가) 어떤 외부인으로부터 인슐린을 투여 받았다는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희생자들 가운데 가장 몸집이 작았던 ‘아기 G’의 몸무게는 535g에 불과했다. 아기는 출생 직후 항생제 투여가 필요한 패혈증 또는 패혈증 의심 증상을 여러 차례 나타냈고, 몇 주 동안 9번의 수혈을 받았다. 치료를 받은 후 한동안 안정적인 상태로 지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새벽 2시경부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복부는 보랏빛으로 부풀어 올랐고, 산소 농도는 떨어졌으며, 인공호흡을 통해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검찰은 렛비가 아기의 비위관을 통해 우유를 과도하게 주입하거나 튜브에 공기를 주입했다고 주장했다. 그후에도 렛비는 두 차례 더 살해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현재 8세가 된 ‘아기 G’는 비록 목숨은 건졌지만 사지가 마비가 된 채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살고 있다.
아기에게 물리적 폭행을 가한 경우도 있었다. 혈액 질환을 가진 채 태어났던 ‘아기 N’은 이로 인해 출혈의 위험이 상당히 높았다. 어느 날 새벽, 아기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고 30분 동안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의료 전문가들은 아기가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의심했다. 며칠 후 아기는 한 번 더 발작을 일으켰고, 이번에는 목 뒤에서 출혈 흔적도 발견됐다. 에반스 박사는 “출혈은 상부 기도의 외상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세 쌍둥이 가운데 한 명이었던 ‘아기 O’는 건강한 상태로 태어났지만 얼마 후 호흡 곤란이 발생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부검 결과는 놀라웠다. 아기는 간 손상으로 인해 혈액이 응고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검시관은 복부 내 출혈이 사망의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검토한 한 독립 병리학자는 “이는 도로 교통사고와 유사한 충격을 당했을 때 입는 부상 수준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의학 전문가들은 “아기의 혈관에 공기가 과도하게 주입됐고 이로 인해 간이 손상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병원 측의 안이한 대응이 화를 키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렛비가 일했던 신생아실의 수석 컨설턴트는 BBC 인터뷰에서 “병원 임원들이 렛비에 대한 혐의를 조사하지 않았고, 오히려 의혹을 제기한 의사들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병원의 평판을 위해서 쉬쉬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의혹을 제기했던 신생아실의 스티븐 브리어리 박사는 “2015년 10월 렛비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결국 렛비는 그 후에도 다섯 명의 아기를 추가로 공격했고 두 명이 더 사망했다”고 분노했다. 병원의 한 내부 고발자 역시 ‘가디언’에 “병원 측이 더 빨리 행동했다면 많은 아기들이 살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렛비는 죗값을 치르게 됐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들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 세 쌍둥이의 아버지는 자녀 둘이 사망한 후 “매일매일이 살기 힘들었고, 사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이어서 그는 “렛비는 우리의 삶을 파괴했다”면서 “재판이 끝난 후에도 우리를 계속 괴롭힐 것이며, 우리의 삶에 영원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개했다.
재판이 끝난 후 희생자 가족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마침내 정의가 실현됐고 우리 아기들을 돌봐야 했던 간호사가 되레 아이들을 해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서 “그러나 우리 모두가 경험해야 했던 극심한 상처, 분노, 고통이 씻겨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을 토로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어쩌면 이 사건이 아직 끝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현재 경찰은 렛비의 여죄를 수사하고 있다. 렛비가 6년간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더 많은 아기들에게 해를 끼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부모들이 신고할 수 있도록 ‘헬프라인’을 개설했다. 경찰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렛비가 근무했던 기간 동안 체스터 백작부인 병원과 리버풀 여성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 4000여 명의 의료 기록을 조사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그 결과 현재까지 체스터 백작부인 병원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영아는 최소 30명 정도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불륜’ 유부남 의사 호출 위해? 살인 동기 아리송
현재 경찰은 렛비의 범행 동기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수사를 이끈 폴 휴즈 서장은 “궁극적으로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루시 렛비 자신이다. 그가 우리에게 털어놓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범죄학 전문가는 렛비가 “관심과 동정에 대한 병리학적 욕구”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검찰은 렛비가 살인을 저지른 동기에 대한 몇 가지 가능성들을 제시했다. 가령 단순히 ‘지루해서’를 포함해 살인 사건을 통해 ‘전율을 얻었다’거나, 마치 자신이 ‘신처럼 행동하는 것’을 즐겼다는 사실 등이 포함됐다. 검찰은 “그는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일들을 예측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의심하는 또 다른 동기는 렛비가 한 유부남 의사와 가진 ‘불륜 관계’에 있었다. 요컨대 유부남 의사의 관심을 얻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아마도 그 유부남은 아기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때마다 전화를 걸어 호출했던 의사들 가운데 한 명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렛비는 이런 주장에 대해 부인했다. 또한 집에서 발견된 결정적인 증거인 메모에 대해서도 단지 “경찰 조사를 받는 동안 정신적으로 혼란한 상태에서 썼다”고 주장하면서 결코 범행 사실을 인정한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