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독거 노인 위해 ‘엔딩노트’ 서비스 시행…‘풍선장례식’ ‘수목장’ 등 창의적인 장례문화도 등장
#죽음 이후 정리해줄 사람 사라져
흔히 ‘무연고 유골’이라고 하면, 신원미상의 사망자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지자체 담당자에 의하면 “95% 이상이 신원이 판명된 유골”이라고 한다. 혈연 의식이 희박해져 친족에게 연락해도 인수를 거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으며, 이 경우도 무연고 유골이 된다. 담당자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기혼이어도 무연고 유골로 안치되는 사례를 여럿 봐 왔다”고 전했다.
가령 자녀가 없는 노부부다. 아내는 외동딸, 남편은 사정이 있어 형제들과 오랫동안 소원해졌다. 정년퇴직을 계기로 부부는 묘소를 마련해뒀다고 한다. 만일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아내가 남편의 유골을 안치하겠지만, 나중에 사망한 아내의 유골은 누가 납골하고 묘를 관리해줄까.
미수습 유골함이 증가한 원인으로는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는 점도 지목된다. 실제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자녀가 70대, 부모가 90대로 두 세대 모두 고령자인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는 자녀가 치매에 걸려 부모의 유골함을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지자체들은 새로운 행정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일례로 혼자 사는 고령자의 비율이 높은 도쿄도 도시마구다. 도시마구는 ‘홀로 죽음을 맞이할 고령자를 위한 대처’를 작년부터 시작했다. ‘생애 마지막을 준비하는 활동’이라는 의미에서 ‘종활(終活·슈카쓰) 서비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시마구에서 혼자 사는 여성 A 씨(62)는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구청의 종활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엔딩노트와 유언장 보관장소, 긴급 연락처 등을 등록해두면, 사후 구청에서 가족이나 경찰 등에 전달해 본인이 희망한 최후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한다. A 씨는 원하는 장례식 절차와 무덤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등을 엔딩노트에 자세히 기입했으며, 유골은 고향 오키나와 바다에 뿌려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도시마구는 외출이 어려운 고령자의 집을 방문해 종활 서비스를 알리는 노력도 하고 있다. 대부분 1인 가구로 고립되기 쉬운 노인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 살핀다. NHK가 동행 취재한 날, 구청 담당자가 찾은 곳은 홀로 사는 80대 여성의 집이었다. 3년 전부터 다리가 불편해 거동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구청 담당자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종활 서비스를 등록할 것을 권했다.
지난 5월에는 죽음을 미리 점검해보고 필요한 것을 적어보는 ‘엔딩노트 작성법’ 강좌를 구청에서 열어 성황을 이뤘다. 또한, 사후 매장 문제를 걱정하는 노인들을 위해서는 생전에 납골 장소 계약을 중간에서 도와주는 서비스도 실시 중이다.
시니어생활문화연구소의 오다니 미도리 대표는 “비용이 들더라도 민간기업의 종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알렸다. 그는 “홀로 죽음을 맞는 시대다. 조문받지 못하는 유해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장례에 대한 가치관을 재검토할 때”라고 강조했다.
#풍선에 유골 담아 날리고…
실제로 장례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영국 주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아버지를 잃은 사카시타 일가의 장례식을 소개했다. 나란히 서 있는 가족 앞에 거대한 풍선이 눈에 들어온다. 풍선 안에 담겨 있는 것은 화장한 고인의 유해와 아버지가 귀여워하던 반려견의 유해다. 구호에 맞춰 딸 사이코가 풍선 끈을 가위로 자르자 단숨에 풍선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10여 개의 작은 풍선도 뒤를 이어 날아갔다. 가족들은 구름으로 사라지는 풍선을 지켜봤고,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화장한 유골을 풍선에 담아 높게 띄우는 이른바 ‘풍선 우주장례식’이다. 2011년 ‘벌룬공방’이라는 일본 기업이 고안해 지금까지 300여 차례의 장례식을 치렀다. 특허받은 기술을 활용해, 헬륨 가스를 채운 풍선은 40~50km 상공 성층권까지 올라가 터진다. 고인의 유골은 하늘에서 흩어진다. 비용은 24만 엔(약 220만 원)선. 좀 더 추가하면 아끼던 반려동물과의 ‘합장’도 가능하다. 벌룬공방 측에 따르면 “풍선장례식을 택하는 이유로는 ‘자신이 죽은 후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일본은 유골을 화장해 무덤에 안치하는 것이 전통적인 장례다. 그런데 저출산과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전통 장례를 지속하기가 어렵게 됐다. 사망자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한편, 묘지용 땅뿐만 아니라 장례를 치르고 무덤을 관리할 사람 수는 줄고 있다. 2022년 일본의 사망자는 150만 명을 넘어서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가장 많았다.
무덤은 가족이 대대로 계승하는데, 사찰에 내는 가족묘 관리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추석 같은 명절에는 성묘하는 것이 관례지만, 대부분 도시로 나와 살고 있기 때문에 지방에 있는 조상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와 관련, 이코노미스트는 “초고령화 사회에 일찌감치 진입한 일본의 경우 최근 사망자 수가 급증하면서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장례식 수요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고인을 추모할 사람도, 유골을 묻을 공간도 모두 부족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과거엔 화장한 유골을 산이나 바다에 뿌리면 ‘법도에 어긋난다’며 싸늘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최근엔 간소한 장례가 주목받으며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묘비 대신 묘목을 심어 유골을 매장하는 수목장이 인기다. 조사에 따르면, 2022년에 묘지를 구입한 사람 중 절반 정도가 수목장을 택했다. 비영리단체 ‘엔딩센터’의 이노우에 하루요 이사장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가장 자연스러운 장례법으로 수목장을 택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런 장례법은 통상 100만 엔이 넘는 묘석을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장례가 간소화되면서 남아 있는 가족의 부담도 줄어들게 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인들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고 전했다. ‘종활’ 열풍이 불면서 인생의 최후를 스스로 준비하고, 죽음을 화두로 삼는 것이 더 이상 금기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