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1300만 부 이어 올해부턴 ‘놓지 마 과학’ 열풍…수능 강국의 산물 “이과가 좋아져” 후기
2010년대 초반 일본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도서가 있다. 이례적으로 한국 과학 학습만화였다. ‘아사히신문출판’이 번역해 출간한 ‘살아남기 시리즈’다. 사막·심해·이상기후 등 인류가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인공이 과학상식과 기지를 이용해 난관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 초등학교 도서관에 살아남기 시리즈가 비치됐는데, 당시 워낙 예약자가 많아 바로 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너도나도 경쟁하듯 돌려 읽을 정도였다. 인기에 힘입어 2020년과 2021년에는 일본에서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출판의 스다 쓰요시 본부장은 ‘탄탄한 스토리와 재미 요소’를 히트 이유로 꼽는다. 일본의 경우 만화 강국이기는 하지만, 학습만화 시리즈는 역사를 다룬 책이 주를 이룬다. 그마저도 지식 전달에 주력한다. 반면, 살아남기 시리즈는 과학상식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낸다. 아이들을 설레게 하는 흥미진진한 요소가 많고, 스토리도 탄탄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여러 번 읽다 보면 해설이 머리에 쏙쏙 박힌다.
‘16배속 공부법’의 저자이자, 일명 ‘공부의 신’으로 불리는 모토야마 가쓰히로는 한국이 학습만화에 강한 이유를 분석해 블로그에 올렸다. 그는 “한국에서는 과학 이외에도 한자와 세계사 등 다양한 분야의 학습만화가 쏟아지고 있다”며 “높은 교육열에 부응하기 위해 학습만화가 성장한 게 아닐까 싶다”고 적었다.
일본 매체 ‘주간여성프라임’도 한국의 입시 사정을 예로 들며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매체는 “한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강국으로 대학입시가 인생과 진로를 결정하는 출발선”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학습 의욕을 높이고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만화와 학습을 결합한 시리즈 서적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서바이벌 시리즈 외에도 일본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린, 과학 학습만화 ‘와이(Why?) 시리즈’ 역시 한국발이다. 여기에 한국의 인기 웹툰 ‘놓지 마! 정신줄’의 작가들이 만든 학습만화 ‘놓지 마 과학’ 시리즈가 2021년 일본에서 발행돼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놓지 마 과학 시리즈의 일본어 판권을 지닌 ‘매거진하우스’ 편집 담당자는 “이 만화 덕분에 이과가 좋아졌다는 후기가 많이 들린다”고 말했다.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라도 ‘이 책은 재밌게 읽는다’는 소감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기 요인을 “과학에 재미를 붙여주는 학습만화에 대한 수요 증가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추측했다.
테크놀로지가 급속히 발전하는 가운데,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이과 인재 육성’이 나라마다 과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미래 인재 비전’에 따르면, “이과 관련 직업을 갖고 싶다”고 답한 일본인 중학생은 국제 평균(57%)보다 한참 낮은 27%였다. 이는 ‘학생들이 과학의 즐거움을 느낄 기회가 부족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한,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학생들이 근거리에서 하는 관찰 및 실험 수업이 줄어든 것도 요인으로 지적된다.
매거진하우스 담당자는 “한국발 과학 학습만화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재미있게 과학을 접하기 좋다”면서 “이러한 장점이 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담당자에 의하면 “‘놓지 마 과학 시리즈’는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인기에 불이 붙었다”고 한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학원 교사와 수험 유튜버 등의 추천으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를 제외하면 금세기 중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저출산이 진행돼 인구 감소 사회에 돌입할 예정이다. 그래도 당분간은 인구가 계속 증가할 것이고, 저출산 경향에도 불구하고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세계 각국의 아동도서 시장은 호황을 맞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매체 ‘현대비즈니스’는 “부담 없이 쉽게 배울 수 있는 학습 콘텐츠의 수요는 틀림없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학습만화는 ‘명탐정 코난’이랄지 ‘도라에몽’ ‘짱구는 못 말려’ 등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도서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다만 올컬러인 한국의 학습만화와 달리, 코난을 제외하고는 흑백이나 2색 인쇄다. 일본 매체 ‘현대비즈니스’는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IP와 학습만화를 결합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전했다.
진정한 한류팬 인증? ‘분식점 녹색 접시’ 품절사태
“아니, 굳이 왜?” 한국인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의외의 한국 관련 상품이 일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2월 일본의 유통업체 ‘칼디(KALDI)’가 선보인 ‘한국 레트로 접시 세트’다. 흔히 분식집 그릇으로 알려진 녹색 멜라민 접시 3종류를 “한국 식당의 현장감을 맛볼 수 있다”며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상품이 일본 Z세대의 마음을 훔치면서 품절사태를 빚었다.
인기의 배경은 무엇일까. 일본 경제지 ‘주간다이아몬드’는 “타인과의 차별화가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케이팝을 듣거나 한국 화장품을 사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유행만을 좇는 한류 팬. 반면 자신은 한국 음식문화까지 사랑하는 진정한 한류 팬이라는 뉘앙스를 은연중에 어필하기 위한 용도라는 것이다. 주간다이아몬드는 “그만큼 일본에서 한류 팬들의 저변이 넓어졌기 때문에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접시를 사러 달려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