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약’인 줄 알고 펜타민 먹는 경우 대부분…마약 유통 인터넷·SNS로 이뤄져 과거보다 쉽게 노출
대검찰청이 2023년 7월 발간한 ‘2022년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마약사범 10명 가운데 6명가량(59.8%)이 30대 이하 청년층, 소위 말하는 ‘MZ세대’다. 20대가 5804명(31.6%)으로 가장 많았고 30대도 4703명(25.6%)이나 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10대도 481명(2.6%)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2017년 119명에 비하면 5년 사이 무려 4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한국이 마약 청정국에서 마약 오염국이 되면서 마약사범이 지난 4년 동안 45.8%나 급증했는데 10대만 놓고 보면 400% 이상 폭증해 전체 증가율을 훨씬 웃돌았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2023년에는 상승세가 더 무섭다. 경찰청의 2023년 상반기 마약류 범죄 집중 단속 결과를 보면 7월까지 경찰이 검거한 마약 사범은 1만 2629명으로 2022년 한 해 동안 검거된 마약사범 1만 2387명에 거의 근접했다. 역시 가장 증가폭이 높은 연령층은 10대로 2022년 294명의 10대가 마약류 범죄로 검거된 데 반해 2023년에는 7월까지 검거된 10대가 벌써 602명이다. 7개월 만에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의 두 배 이상이 경찰에 검거됐다는 의미다.
경찰은 검거된 10대 마약사범의 대부분이 다이어트 약으로 알려진 마약성 식욕억제제인 ‘펜타민’의 구매 및 재판매 사례라고 밝혔다. 과도한 도파민 분비로 식욕을 조절하는 마약성 식욕억제제로는 △펜타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 등이 있는데 모두 마약과 유사한 화학구조다. 가장 대표적인 약물이 바로 펜타민이다.
펜타민 등 마약성 식욕억제제는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다량을 복용하거나 장기 복용하면 환청, 환각, 망상, 중독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겪게 된다. 당연히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문제는 이런 위험성은 잘 알려지지 않은 반면 다이어트에 효과가 좋다는 부분만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서 펜타민 복용이 급증하는 추세인데 정식 처방을 받지 않고 복용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마약성 식욕억제제는 아예 만 16세 미만 청소년에겐 복용이 금지돼 있다.
약이 나비 모양으로 생겨 ‘나비약’이라 불리는 디에타민이 대표적인 펜타민 성분의 마약성 식욕억제제인데 최근에는 이를 소셜미디어(SNS)에서 불법 판매하려던 3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 남성을 비롯해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사고 판 혐의로 102명을 적발한 노원경찰서에 따르면 적발된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10대였다고 한다. 구매뿐 아니라 판매하다 적발된 10대들도 있었다. 10대들에게 친숙한 인터넷과 SNS를 통해 ‘나비약(디에타민)’을 비롯한 펜타민 성분의 알약이 개당 5000~1만 원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10대 마약사범의 상당수가 부작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단지 다이어트를 위해 펜타민 등의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아예 나비약 등의 펜타민 계열의 약이 향정신성의약품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복용한 10대들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10대 마약사범의 심각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마와 필로폰 등의 마약 복용에 연루된 사례도 있고 심지어 마약 유통에 연루된 사례도 있다. 2023년 6월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합성 대마 판매 조직을 검거했다. 검거된 합성 대마 판매 조직의 총책은 21세. 대마 유통 등을 담당한 4명 가운데 2명은 10대, 그것도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2023년 5월에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 A 군(18)이 독일에서 팬케이크 조리용 기계 안에 시가 7억 4000만 원 상당의 케타민 2900g을 국제화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밀반입하려다 적발됐다.
인천지검 마약범죄특별수사팀(김연실 부장검사)은 A 군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향정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 조사 결과 A 군은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독일에 거주하는 공범으로부터 “(마약) 수취지 정보(배송지와 개인통관고유부호 등)를 제공하면 800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와 달리 10대 마약사범이 급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약 유통이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마약에 쉽고 빈번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10대 청소년들의 마약 복용 사례 급증의 또 다른 이유는 진통제와 신경안정제 등 치료약물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불안과 스트레스 등으로 힘겨워 하는 10대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 치료약물 의존도 늘고 있다. 문제는 치료약물을 습관적으로 복용하면서 점차 남용하는 사례도 많아진다는 점이다. 이런 남용에서 비롯된 심각한 약물 의존성은 더 강력한 약물인 마약 복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심각성은 이미 국민들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7월 10일부터 19일까지 실시한 ‘청소년 마약 예방 교육 개선’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8.6%가 ‘현재 청소년 마약 노출 위험이 매우 심각하다’고 답변했으며 39.9%는 ‘현재 청소년 마약 노출 위험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8.5%가 청소년 마약 노출 위험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답변을 한 것.
청소년 마약 노출을 막기 위해 가장 절실한 부분으로 ‘마약 예방 교육 강화’가 손꼽혔는데 학교에서 음주·흡연 예방과 함께 마약 예방 관련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91.4%나 됐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