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등 오히려 역효과…임성근 논란 거짓 해명 ‘퇴임 후 기소’ 가능성
이제 임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김명수 대법원장. 퇴임 후에도 험로가 예상된다. 피의자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는데 불응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검찰은 ‘기소’로 이미 방향을 잡아두고 있다.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하게 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판사들 '열일'할 유인 사라져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사태 속에서 수장에 오른 뒤 사법 민주화를 추진했다. 문제점으로 지적된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방점이었다. 이를 위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법원행정처가 임명하는 법원장 등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 권한도 평판사들에게 줬다.
법원 조직 전체를 뒤흔든 큰 변화였다. 기존의 법원은 ‘엘리트’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와 법원장 인사를 활용했다. 기수 중 10~15%만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할 수 있었는데, 향후 대법관이 되려면 고등부장 승진 후 법원장 등을 역임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근무는 ‘가산점’이 됐다. 판사들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이유였다.
승진 제도를 없애는 방식으로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내려놓고, ‘재판부, 판사 개개인의 소신 있는 판단’을 끌어내고자 했다. 고등부장이 돌아가며 맡던 법원장 인사도 일선 판사들이 추천한 후보군 가운데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2019년 첫 도입)로 손본 것도 이 같은 취지였다.
하지만 이는 '재판 지연'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전국 법원 민사합의부가 1심 본안사건을 처리하는데 걸린 평균 기간은 364.1일에 달했다. 김 대법원장 취임 첫해인 2017년(293.3일)보다 약 70일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형사합의부 1심 공판사건 처리 기간은 구속 사건 118.4일, 불구속 사건 168일에서 구속 사건 138.3일, 불구속 사건 217일로 늘었다. 2년을 초과하는 사건도 같은 기간 합의부 1심 기준 민사는 109.4%, 형사는 84.7% 급증했다.
법원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조차 ‘악평’이 지배하는 이유다. 대한변협의 간부급 인사는 “법원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아무도 6시 넘어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1주일에 재판부마다 판결문 수를 정해놓고 그 이상 쓰지 않는다고 한다”며 “의뢰인들을 위한 법원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법원이나 재판부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 판사들도 열심히 일할 유인이 사라져 1주일에 3건만 선고하는 게 불문율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자연스레 능력 있는 판사들이 대거 법원을 떠나게 만드는 동기가 됐다. 법원 내 유일한 승진 통로가 대안 없이 사라지면서 ‘열심히 할 이유’가 사라졌고, 욕심 있는 판사들은 법원을 떠났다. 김 대법원장의 마지막 법관 인사였던 올 상반기 인사를 앞두고도 고법 판사 15명이 법원을 떠났는데, 전임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보다 매년 퇴임한 판사가 적게는 10명, 많게는 25명 이상 늘었다.
김명수 원장 때 법원을 떠난 한 판사는 “연차가 있는 판사와 새내기 판사가 서로를 경계하고 어울리려 하지 않고, 일부 판사들은 어떻게 하면 다 같이 일을 덜 하고 빨리 퇴근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며 “심지어 어떤 재판부는 인사가 난 뒤 부장판사에게 배석판사들이 먼저 한 주에 써야 할 판결문 숫자를 정해서 통보하고, 오후 6시가 넘으면 증인을 다시 부르는 방식으로 무조건 재판을 끝내야 한다고 통보를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법원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실망한 이들이 법원을 떠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는 재판 지연이라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졌다. 서경환 대법관도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재정적으로 또는 인사상으로 열심히 적시에 사건을 처리한 판사에게 보상을 주고, 업무를 태만히 하고 처리가 지연된 판사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일부 대법관 후보자들이 국회에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입을 모아 얘기하는 것도 “‘김명수 6년’의 결과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평이 나온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그동안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판사들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주요 보직을 해먹는 것에 대해 다소 좋지 않은 시선도 있었는데, 거꾸로 그런 경험이 부족한 김명수 체제를 겪으면서 ‘해본 놈을 중용하는 이유를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김명수 대법원장은) 판사만 하다가 행정 전권을 맡으니 발생할 문제점을 읽지 못하고 이상적인 개혁만 추진하다가 더 큰 문제에 봉착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벼르고 있는 검찰
대법원장 취임 후 법원 내부 반발 속에서도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허락해야만 했던 김명수 대법원장. 정권이 바뀌고 퇴임을 앞둔 지금, 그 역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와 관련해 ‘거짓 해명 논란’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김 대법원장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박혁수 부장검사)는 최근 주요 피의자와 참고인 조사를 마무리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소환 조사만 남은 상황이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처벌 희망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법원장은 2020년 5월,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됐던 임 전 부장판사가 건강상 이유로 사표를 내자 이를 반려했다. 이에 임 전 부장판사는 사표 반려 이유를 묻자 “(민주당이) 탄핵하자고 설치고 있는데 사표 수리를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고 말했고, ‘국회 눈치를 본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김 대법원장은 “이같이 발언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국회 등에 답변서를 보냈다.
하지만 임 전 부장판사가 기다렸다는 듯 녹취파일을 공개하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행사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에는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수사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검찰은 임 전 부장판사 사표 제출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던 김인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최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 내부적으로는 이미 ‘김명수 대법원장 기소’로 방점을 찍었다고 한다.
관련 수사 흐름에 정통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미 김 대법원장의 녹취록이 공개된 만큼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 성립에는 문제가 없고, 직권남용 부분은 기소시 다툴 여지는 조금 있어 보인다”며 “이미 검찰은 기소하겠다는 것으로 잠정 결정한 상태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개인적 판단을 보태자면 불구속 기소할 만한 사안인데 대법원장의 명예를 고려해서 퇴임 후 하지 않겠냐”며 “다만 이럴 경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김명수 대법원장까지 사법부의 수장이 연달아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되는 ‘대법원장 잔혹사’가 생겨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의 관계가 다소 불편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균용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는 과거 국정감사 때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출석해 “언론 보도대로 사법부 신뢰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균용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받아 대법원장으로 취임하게 되면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논란들에 대해 일부 수사를 승인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