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 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다(라고)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이런 철학과 방향성 없인 실용이 없다”면서 “실용보다는 이념”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를 두고 야권은 “윤 대통령이 철 지난 이념 타령만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국제질서가 몇 년 전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런 비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현재는 신(新)블록화, 신(新)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시점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이 하나의 진영을 이루고 다른 진영은 서방국가들로 구성돼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신냉전이 한미일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틀린 말이다. 신냉전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생존에 위협을 느낀 중립국들, 예를 들어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했거나 가입 예정이라는 점은 신냉전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국제질서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 역시 확실한 생존 보장을 위해 미국과 더욱 돈독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이는 지금과 같은 국제질서 속에서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은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중국과도 잘 지내고 미국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국이 우리나라의 제1 교역국인데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우리 경제에 대한 타격이 매우 크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요사이 대중국 수출은 급감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대중국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5.9% 급감했다.
그런데 대중국 수출이 급감한 이유는 신냉전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경제 상황 때문이다. 결국 대중국 경제 관계에 있어, 중국의 경제 상황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 한미의 관계 강화가 중요한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 관계는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지, 자신과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현재의 경제 이익이 생존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나라가 살길은 서방 진영에 포함되는 것이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과 한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국제질서의 변화, 즉 새로운 진영화는 현재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한 세계 각국의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수용하거나 인정, 이해하는 입장인 반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은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신냉전 구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냉전 구도는 새로운 버전의 이념 대결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적 인식을 바탕으로 윤 대통령의 언급을 평가하면 이해의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정치인 윤 대통령을 생각하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정치적으로 언어를 사용할 때 그 중심에는 언제나 국민, 즉 유권자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정치인이 어떤 주장을 할 때는, 자신의 발언이 국민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를 항상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저마다 먹고살기에 바빠 새로이 형성되는 국제질서, 신냉전과 같은 사안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이런 국민들에게 강한 표현으로 이념을 강조하면 국민들은 ‘구태 정치’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언급할 때에는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격언을 다시금 떠올리는 요즘이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최소한 신냉전 상황에 있어 우리가 희생자가 되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표현을 제외한 내용은 곱씹어 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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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