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창업 지원 위주서 벗어나 심리 치료·관계성 회복 도와야…사회 인식 개선 및 법 제도 마련 필요
김성아 보사연 부연구위원은 해당 보고서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연적이었던 물리적 거리두기는 지금에 이르러 사회적 관계의 양상을 변화시켰다”며 “독립된 성인으로서 삶과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고립의 경험은 지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장년, 노인으로 나이 들어가는 전 생애에 흉터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청년들이 은폐된 생활을 하면서 기회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라며 “무엇보다 과거에는 노력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노력과 상관없이 타고나는 것으로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사회 환경 속에서 청년들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성주 청년이음센터 청년지원팀 팀장은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인용해 “가구 구조의 변화로 저출산 및 외동 비율이 증가한 사회에서 자라난 현 청년세대는 혼자 사회화를 경험한 비율이 높다”며 “코로나19 이후 특히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20~30대 청년들에게 이러한 개인주의화 현상의 영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소득의 정도와 은둔‧고립 청년이 나타나는 사회현상은 큰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봤다. 김혜원 교수는 “일본‧영국보다 더 삶의 만족도가 높고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북유럽 국가에서는 은둔‧고립 청년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다. 경제적 풍족함과 달리 삶의 만족도나 낙오되고 소외된 사람에 대한 사회의 시각 차이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고립청년 중 주관적 소득 수준에 대해 ‘매유 여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9%로 비고립 청년의 응답률 1.8%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고립 청년의 ‘약간 여유 있다’는 응답률은 5.3%로 비고립 청년의 11.2%의 절반 수준이고, 특히 ‘매우 부족하다’는 응답률은 31.5%로 비고립 청년 15.7%의 2배 수준이다. 2021년 조사에서도 비고립 청년 중에서는 16.9%가 ‘매우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데 반해 고립 청년 중에는 32.8%가 매우 부족하다고 인식했다.
청년들은 한 번 은둔‧고립을 경험하면 이후 삶에서 장시간 고립을 경험할 확률이 높다. 전문가들은 청년 시기의 은둔‧고립을 경험했을 때 정부‧지자체‧전문가 등이 나서 이들을 사회로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청년재단이 지난 7월 만 19~39세 은둔‧고립청년 393명을 대상으로 ‘재고립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년들의 첫 은둔‧고립 기간은 1년 이상~2년 미만이 119명(30.3%)으로 가장 많았고, 전체의 54.7%는 은둔‧고립 기간이 2년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 34명(8.7%)은 은둔‧고립 기간이 8년 이상이라고 응답해 청년기 상당 부분이 은둔‧고립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결과를 보였다.
청년재단 관계자는 "청년들은 스스로 은둔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며 원인에는 취업만큼이나 사회적 압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은둔 고립 청년이 점차 증가하는 현실에서 은둔 고립을 반복적으로 겪지 않도록 사회 진입 및 안착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처음으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고립 혹은 은둔을 시작한 시기와 계기, 기간을 비롯해 고립과 은둔의 양상, 복지 욕구 등을 파악해 그 결과를 토대로 내년부터 탈고립‧은둔 맞춤형 지원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존 청년 정책과 달리 고립‧은둔 청년에게는 개별적 맞춤 지원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제도를 갖추기 전 고립‧은둔 청년의 가족들과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재영 청년재단 대외협력팀 팀장은 “법제도를 마련해 국가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사회의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며 “누구나 살다보면 무너질 수 있는 것이고 크기와 깊이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본인과 가족들은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해 (국가의) 지원 대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이 변해야 공론화를 통해 사회 전체 차원의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의 김성주 팀장은 “청년 개별 욕구 파악을 통해 개별 맞춤 지원체계 안으로 유입, 다각적 지원을 통한 단단한 안전망 마련이 필요하다”며 “현재 청년 지원사업의 경우 전문 청년복지‧지원체계가 부족하며, 주로 단기적 개입이 가능한 형태의 지원사업으로 수행되고 있는데 지역사회 내 긴밀한 민‧관 협력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혜원 교수는 “장기적이고 단단한 지원이 이뤄지려면 영국의 고독 문제를 전담하는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처럼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가 수립돼야 한다”며 “청년 지원책 또한 취업‧창업 위주에서 벗어나 사람을 대하는 법, 심리적 지원, 관계성 회복 등을 도와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5년간 은둔‧고립 청년으로 살았던 유승규 은둔청년 지원기관 ‘안무서운회사’ 대표는 “가정을 꾸릴 때도 그렇고 교육을 받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부모 교육을 안 받으면 부끄러운 사회가 되어야 하고 ‘때 되면 결혼해라’가 아닌 ‘결혼하려면 교육부터 받아라’ 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 돼야 한다”며 “고민이 있을 때 자유롭게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문화도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