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경쟁·고용 양극화 탓 최대 60만 명 은둔·고립…사회가 원하는 기준 도달 못하면 좌절하고 숨어
유 씨는 “하루 종일 누워있기만 한 날도 있고 게임만 한 적도 있다. 가족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 화장실을 참거나 방에서 소변을 보기도 했다”며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자체가 괴로운 날도 있었고 변해버린 내 모습에 자신이 없어 더욱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고 전했다.
경쟁과 고용, 양극화 등 사회 불안이 심화되면서 청년들의 고립·은둔이 사회적 문제로 얘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발생한 무차별 범죄 피의자들과 연관되며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은둔 청년이나 고립 청년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선은 옳지 않고, 고립‧은둔을 하게 된 원인을 알고 이들을 사회적‧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고립청년’은 사회적 관계·사회적 지지체계 등 사회적 자본이 모두 결핍된 청년이다. ‘은둔청년’은 고립청년 중 외출 없이 제한된 공간에서 단절된 채 살아가는 청년을 말한다. 2019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집계된 고립청년 비율(3.1%)을 인구총조사에 나타난 청년 인구에 적용할 경우 고립청년 인구는 34만 명으로 추산된다. 올 초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고립·은둔 청년 비율(4.5%)을 시 전체 인구에 적용하면 최대 12만 9000명, 전국 청년을 대상으로 하면 약 61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무조정실의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첫 은둔‧고립의 계기를 묻는 질문에 1순위로 ‘취업 어려움 및 실직’을 꼽은 청년들이 38.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인간관계 맺기의 어려움(14.2%) △가족 불화(14%) △사회적 압박(10.2%) △가정경제 위기(8.1%) △학업 어려움(4.8%) 등을 꼽았다. 청년재단이 지난 6월 7일부터 15일까지 은둔·고립 경험이 있는 만 19~39세 청년 393명을 대상으로 재고립 실태조사를 실시했더니 이들 중 재고립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31명(58.8%)이었다.
박재영 청년재단 대외협력팀 팀장은 “가정폭력, 학교폭력, 왕따, 친구와의 이별, 가족불화, 학업, 직장 갑질 등 정말 다양한 요인으로 은둔·고립 청년들은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둔다”며 “이들의 공통분모는 획일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강박을 학습했고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좌절하고 숨어들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 모형개발 연구’ 정책보고서는 “경쟁과 고용, 양극화 등 사회 불안이 심화되면서 청년의 고립·은둔은 장기적으로 심화될 전망”이라며 “청년기 고립과 은둔이 지속되는 것은 개인의 사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생산가능인구의 경제활동 참여 감소 및 전반적인 삶의 활력 저하 등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는 집단적 문제로 확대된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는 “실제로 일본에서는 1950년대 등교거부학생으로 발견된 히키코모리 문제가 1990년대 후반 청년 히키코모리 문제로 확대, 후생노동성을 중심으로 한 지원을 발전시켜왔으나 2020년대 최근에 이르러 50~60대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로 연장돼 사회문제로 누적됐다”고 설명했다.
청년재단은 최근 연구를 통해 고립청년에게 드는 사회적 비용으로 △경제비용(비경제활동·직무성과 저하·비출산) 7조 2000억 원 △정책비용(국민기초생활보장·실업급여 등) 2000억 원 △건강비용(질병·조기사망·작업손실) 최소 293억 원이 들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재단은 “청년의 고립 해소를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더 많은 청년을 행복하게 하는 길일 뿐 아니라 미래의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투자”라며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할 정책전달 체계와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은둔·고립 청년을 최대 50만~6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가족 중 한 명이 이렇게 은둔·고립을 하면 가족 구성원 모두 사회활동을 축소하는 경향이 생긴다. 결국 50만~60만 명이 아닌 가족 구성원을 포함해 100만 명 이상이 고립·은둔을 한다고 봐야할 것”이라며 “사회에 이제 막 진입해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할 청년들이 무너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허리가 병든 것과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또 최근 발생한 흉악범죄자들이 ‘은둔형 외톨이’였다는 점 때문에 이들에게 ‘잠재적 범죄자’라는 프레임을 씌워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박재영 팀장은 “오히려 은둔·고립 청년들은 남에게 피해주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 친구들이 많았다”며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 등 범죄자들이 은둔 경험이 있을 순 있으나 단순히 은둔이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유승규 씨는 “이슈가 될 만한 범죄들이 일반적으로는 이해가 어려우니 빨리 규정하고 싶은 마음에 ‘은둔형 외톨이라 그랬나보다’라고 프레임을 씌우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혜원 교수도 “은둔·고립 시기가 길어지면 공격성이 늘어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범죄를 시도하고 모색하는 사람은 은둔할 수밖에 없다. 전후가 바뀐 것이고 은둔·고립하는 사람이 공격적 성향을 갖게 된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비약”이라고 꼬집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