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가 우리의 공통 의견…박민수 차관은 대화 파트너로 부적합”
임현택 회장은 의협 회장 당선 전부터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 정부와 정반대 입장을 피력해왔다. 3000명 수준인 기존 의대 입시 정원에서 오히려 500~1000명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선 이후에는 대통령의 사과와 보건복지부 장관 파면, 의대 증원계획 전면 백지화 등을 요구하며 강경 입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지난 4월 28일 열린 의협 정기 대의원총회에서는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올바른 목소리를 낼 것이고 의료를 사지로 몰아가는 정책은 죽을 각오로 막아낼 것”이라며 의지를 재확인했다.
현재 정부는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라는 의료계의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연일 의료계를 상대로 대화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4월 29일 의료계에 “의대 증원 백지화, 1년 유예 등 여러 조건을 달며 대화 회피를 하기보다 정부의 진의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고려대의료원 등 의대 교수들은 일반 환자의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주1회 휴진에 돌입했다.
‘일요신문i’는 임현택 신임 회장의 취임을 이틀 앞둔 지난 4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당선인 신분으로 만나 현 의정 갈등 사태와 주요 과제들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임 회장은 의협 회원들이 다치는 일이 생긴다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계속해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증원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점은 전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인가. ‘전면 백지화’ 외에 시기나 인원 규모 등을 정부와 협상할 생각은 없는지.
“1년 유예나 500명, 1000명 규모 증원 등은 다른 사람들의 얘기다. 그 부분은 협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에서는 계속 ‘의료계의 공통 의견을 달라’고 하는데 우리는 지속적으로 동일한 의견을 내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원점 재검토가 우리의 공통된 의견이다. 오히려 정부가 단일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2000명이 최소 규모라고 하고 총리는 조정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복지부) 차관은 2000명은 변함없는 원칙이라 했다. 도대체 뭐가 원칙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단일화된 안을 못 내고 있는 것은 정부다.”
―영수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의대증원 확대에 뜻을 같이 하는 모습을 보였다.
“바로 이 점이 의료정책을 만드는 데 의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모두 영수회담에 나올 때 의료 분야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나왔을 것이다. 민주당 쪽에서 의료 분야 정책 의견을 지속적으로 냈던 사람은 김윤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당선인, 국민의힘은 안상훈 전 대통령실 사회수석이다. 그 둘은 당은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스탠스(입장)를 가진 인물이다. 김윤 교수는 의사 자격은 있으나 환자를 단 한 명도 본(진료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안상훈 수석은 복지 전공이다. 두 사람 모두 현장에서 작동할 만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폴리페서(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교수)’들의 말만 듣고 윤 대통령, 이 대표 모두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 정부와 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의협 회장 선거 과정에서 ‘의사 총파업’을 언급했는데 구체적으로 계획이 있는지.
“총파업의 전제조건은 우리 의사 회원들이 다치는 것이다. 의사들이 다치는 일이 생긴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도 정부가 ‘대화하자, 협상 테이블로 나와라’ 해놓고 14만 의사의 대표인 저를 두 번이나 압수수색했다. 협상을 하자고 하면서 테이블 위에 칼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정말 진정한 의미의 대화를 하자는 것인지, 위협하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정권퇴진운동’도 언급했는데 유효한 선택지인가.
“그렇게까지 가진 않을 것이다.”
―의협 집행부를 꾸리면서 통상 2명이던 변호사 출신 법제이사를 4명으로 늘렸다. 정부의 법적 대응이나 압수수색 등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가.
“정부와 싸움 때문인 것도 있고 회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도 있다. 헌법소원 같은 ‘선제공격’을 위한 것도 있다. 의사들이 부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을 적극 돕기 위한 것이다.”
―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임 회장 취임 후 의정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란 전망인데….
“서로 대화하려면 최소한 상식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에 최소한의 믿음도 없는 상태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고울 것 아닌가. 그동안 박민수 복지부 차관을 비롯해 정부에서 직업적 자존심을 짓밟는 얘기를 수도 없이 해왔다. 대화를 하자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고발장을 보내고 처벌하겠다고 협박하는데 무슨 대화가 되겠나. 박민수 복지부 차관과는 대화할 생각이 없다. 십상시(十常侍‧중국 후한 말 정권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환관 10명)들이 더 이상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일을 못하게 해야 한다. 박민수 차관은 국민들이 나서서 파면시켜야 한다. 몰상식한 동네 양아치 건달 같은 사람이 TV에 매일 나와서 고장 난 녹음기처럼 떠드는 소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대화 파트너로 박민수 차관은 안 된다.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내보내 달라. 그래야 대화 테이블에 나설 것이다.”
― 회장 선거 공약으로 의대 정원 관련 현안 외에 수술실 CCTV 설치법 개정, PA(진료지원) 간호사 의사 대행 금지 등을 공약으로 내놨는데 환자 입장에선 어떤 도움이 되는 사안들인가.
“얼마 전 데이비드 바브 세계의사회(WMA) 사무총장이 한국의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전 세계적으로 수술방에 CCTV가 달린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물론 그 법이 생긴 취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는 수술하는 의사가 되어서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대생, 인턴들의 의지를 꺾는 일이다. 문제 있는 의사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지 전체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서 카메라를 다는 것은 문제다. 누가 잠재적 범죄자 취급 받으면서 직업적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려 하겠나. PA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간‧심장 등 이식수술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의사들을 키울 수 있는 교육 여건 등을 만들어 길러 내야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지쳐 가고 있다.
“저도 의사 중 한 명으로 너무나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환자들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사태가 잘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의사들은 충분히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정치권도 그 대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준비를 해줘서 100년 갈 수 있는 의료제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