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액기준 대출금리 10년래 최고 수준…고유가·부동산 PF 우려 여전, 세수 부족도 변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추가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지난 9월 21일(현지시각)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4%를 돌파했다. 3년 만기 국고채도 4%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단기채권으로 시장의 향후 기준금리 예상수준을 반영하는 91일짜리 통화안정증권 금리도 9월 3.6%를 웃돌며 연중 최고 수준이다.
은행 대출금리 기준인 코픽스(COFIX) 금리는 신규 기준으로는 8월까지 3개월째 내리막이지만 잔액기준으로는 2021년 7월 이후 2년 넘게 계속 상승 중이다. 8월 잔액기준 금리 3.86%는 지난해 10월보다 1%포인트 이상 높다. 꾸준히 불어난 대출 잔액을 감안할 때 대출자들의 체감 이자 부담이 역대 최대 수준까지 무거워졌다는 뜻이다.
코픽스 급등 배경에는 은행채 발행도 한몫을 하고 있다. 8월 은행채 발행액은 전월보다 89.1% 급증했다. 발행금리(5년 만기 AAA)도 4.4%를 웃돌 정도로 높아졌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피할 수 있어 수요가 폭증한 50년 만기 주담대를 공급하기 위한 자금조달로 추정된다.
은행들은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7월 기준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평균 3.7~3.8% 수준이다. 3.9%가 넘는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보다 그리 높지 않다. 정기예금은 중도 해약하면 손해지만 국고채는 언제든 매매할 수 있다. 금리가 오르며 수신을 통한 은행의 자금 조달도 예전보다 어려워진 셈이다. 초우량인 은행채 금리 상승은 다른 회사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난해 9월과 10월 자금시장의 불안은 고유가와 한국전력 적자, 레고랜드 사태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불안 등 4가지 원인이 동시에 작용했다. 최근 유가가 다시 오르며 한전의 적자 위험도 높아졌다. 게다가 부동산 PF 부실 우려는 지금도 여전하고 세수 부족이라는 지난해에는 없던 새로운 변수까지 겹쳤다.
올해 예상 세수 부족분은 약 59조 원으로 전체 예산의 15%에 육박한다. 정부는 상반기에는 한국은행 일시 차입과 초단기 재정증권 발행으로 부족한 돈을 당겨썼다. 연말까지 세수 부족분을 확실히 채워 놓아야 한다.
정부는 나라 빚 늘리는 국채발행 대신 기금과 잉여금을 활용하기로 했다. 잉여금은 예전에 쓰고 남은 돈이다. 기금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별도로 만든 돈이다. 정부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을 통해 각종 기금을 관리한다. 각 기금이 공자기금에 받은 돈을 돌려주면 정부는 이를 재정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기금을 재정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녹록지 않다. 시장 충격이 불가피하다.
기금이나 잉여금 등 여유 재원은 안전한 유가증권에 투자하거나 은행에 예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 자산을 재정지출로 돌리려면 현금화 과정이 필요하다. 기금의 안전자산이 매물로 나오면 시장의 현금을 빨아들여 채권금리를 끌어올리게 된다. 4분기에는 이 같은 매물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대외 여건도 불리하다. 지난 9월 21일 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원화 값은 1336원을 넘어섰다. 미국이 추가 긴축을 예고하면서 달러 강세와 그에 따른 원화 약세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재정수입을 늘리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으로 국제유가는 상당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시장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 자료를 보면 7월 80달러를 돌파한 브렌트유 가격은 9월 90달러를 넘어 10월 93달러까지 오른 후 내년 3월까지 90달러 이상을 유지하고 그 이후에도 88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화 약세와 고유가가 겹치면 물가상승은 불가피하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지면서 글로벌 투자금이 우리나라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물가 압력을 낮추고 해외자본 이탈을 막기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가능성이 크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장금리도 오른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