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최다 메달 기록 수립…세계 무대 기대감 높여
#3관왕, 최고 스타 등극한 김우민
김우민은 이번 대회 좋은 성적을 거둔 한국 수영에서 최고 스타로 등극했다. 남자 계영 4x200m에 이어 자유형 400m와 800m까지 석권하며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어 3관왕에 올랐다. 자유형 1500m에서는 은메달을 추가해 총 4개의 메달을 따냈다.
김우민의 아시안게임 수영 3관왕 등극은 1982년 뉴델리 대회 3관왕 최윤희, 2006년 도하와 2010년 광저우 대회 박태환 이후 세 번째다. 김우민은 수영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국 수영은 이번 대회 선전이 예상되던 종목이다. 김우민보다 황선우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대회 직전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도 황선우가 자유형 200m에서 동메달을 따내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황선우보다 김우민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김우민도 호성적이 예상되던 선수다.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에서 결선에 진출, 3분 43초 92의 좋은 기록으로 최종 5위에 올랐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것이다.
아시안게임에서는 페이스를 앞당겼다. 대회 초반 계영에서 가벼운 몸상태를 자랑했다. 양재훈, 이호준, 황선우와 함께 남자 4x200m에 나서 경쟁 국가와 격차를 벌리는 스피드를 보였다. 1500m 자유형에서 은메달 획득 이후 자유형 800m에서는 아시안게임과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고 자유형 400m에서도 개인 최고 기록을 앞당겼다.
#르네상스는 원맨쇼가 아니다
이번 대회에 나선 선수들이 '황금세대'로 불리는 이유는 다수 선수들이 고른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성과는 한두 명의 스타에 의존한 것이 아니다. 인천에서 열린 2014년 대회에서 한국 수영은 박태환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자 대표팀 전체가 '노골드'에 그쳤고 2018년 대회에서는 김서영이 여자 개인혼영 200m에서 1개의 금메달을 따낸 데 그쳤다.
자유형 중장거리에서 선전이 예상됐던 황선우와 김우민 외에도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이 나왔다. 한국 수영의 첫 금메달 소식을 전한 이는 남자 자유형 50m 지유찬이었다.
지유찬의 선전은 예상 밖이었다. 동양인 신체 특성상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든 50m 종목은 선수들 사이에서 기피하는 종목으로 꼽힌다. 아시아 선수들 사이에서도 '월드 클래스'로 통하는 판잔러(중국)의 독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유찬은 예선부터 독보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예선에서 21초 86으로 대회 신기록을 작성한 그는 결승에서 21초 72로 기록을 앞당기며 파란을 일으켰다.
접영 50m 종목에서도 금메달이 나왔다. 아시안게임 신기록을 수립한 백인철이 그 주인공이었다. 백인철이 금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한국 수영은 아시안게임 사상 최초로 개인전에서 3명 이상이 금메달을 경험했다.
#황금세대 방점 찍은 계영팀
황금세대 맹활약의 정점은 남자 계영 4x200m에서 김우민, 황선우, 이호준, 양재훈의 금메달이었다. 박태환 시대에도 없었던 계영 금메달이다. 조오련이 활약하던 1970년대, 최윤희의 1980년대에도 계영 종목에서 금메달은 없었다. 4명의 선수가 고른 실력을 갖춰야 얻을 수 있는 결과다.
지난 9월 25일 남자 계영 4x200m 결선, 최상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대표팀 에이스이자 최종 주자인 황선우에게 배턴이 넘어오기도 전에 대표팀은 선두로 치고 나갔다. 두 번째 주자 이호준이 전체 800m 레이스 중 250m 지점에서 이미 선두로 치고 올라선 것이다.
대회 3관왕의 주인공이자 세 번째 주자 김우민은 2위 중국과 격차를 더욱 벌렸다. 마침내 마지막 주자 황선우가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7분 01초 73의 기록으로 '월드 클래스' 판잔러가 최종 주자로 나선 중국을 1.67초 차이로 따돌렸다.
이번 계영 금메달은 대한수영연맹의 적극 투자의 결과로 평가받는다. '아시안게임 대비 특별전력 육성선수단'을 결성, 대표팀 선수들을 호주로 파견해 훈련을 진행했다.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을 거친 전설적 수영 지도자 이언 포프 코치의 지도 아래 세계선수권에서도 경쟁력을 높여 나갔다.
그러나 대회 준비가 한창이던 때, 개최지 중국 현지의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1년 연기됐다. 계영 대표팀으로선 악재였고, 대표팀 선발전이 다시 열리며 멤버가 바뀌었다.
수영연맹은 새로 구성된 대표팀을 또 다시 호주로 파견해 훈련을 이어갔다. 대표팀은 황선우, 이호준, 김우민까지 3인이 자유형 200m 종목에서 세계선수권 출전이 가능한 국제수영연맹 A기록(1분 47초 06)을 통과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대한민국 수영이 세계선수권에 국가당 2인 출전 제한에 걸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호주에서 혹독한 훈련으로 전의를 다진 대표팀은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거는 데 성공했다. 금메달의 성과는 결선에 나선 4명의 선수만으로 이뤄낸 게 아니란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예선에서는 다종목에 출전하는 황선우와 이호준의 체력 안배를 위해 이유연과 김건우가 출전하기도 했다. 이유연은 1년 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멤버다. 황선우는 자신을 대신해 예선에 출전한 선수들을 향해 "스타트를 잘 끊어줘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캡틴' 김서영의 눈물
여자 혼계영 4x1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여자 수영 간판 김서영은 시상식 이후 떨리는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다. 남자 수영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이 적지 않은 부담감에 휩싸였고 여자 수영도 결과를 냈다는 안도감이 찾아온 탓이다.
김서영은 르네상스 이전 장기간 한국 수영을 지탱해온 선수다. 황선우, 김우민 등 황금세대 등장 전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인 소수의 선수 중 하나였다. 2012년부터 세 번의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세계선수권에서도 결선에 올라 최종 6위를 기록(2017, 2019)하기도 했다. 국내 무대에선 적수가 없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경영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대표팀의 최고참 격으로 나서며 은메달 1개를 포함, 총 4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종목인 개인 혼영 200m에서 동메달, 혼성 혼계영 4x100m와 여자 계영 4x200m에서도 동메달을 따냈다. 김우민, 이은지(수영) 등과 함께 4개의 메달을 목에 건 선수가 됐다. 앞선 2018 아시안게임에서 김서영은 2개 메달(금1, 은1)을 따낸 바 있다.
김서영은 대회를 마치며 "남자 수영에 조금 더 관심이 가 있는데 여자 수영도 가능성을 보인 것 같아 기쁘다. 부담감도 컸는데 좋은 결과를 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서영 외에도 여자 수영은 이번 대회 6개의 메달을 따내며 한국 수영 르네상스에 힘을 보탰다. 여자 평영 200m에서 권세현이 깜짝 은메달을 획득했고 이은지가 배영 100m와 200m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한국 신기록만 17개, 쏟아진 새로운 기록
이번 대회 한국 수영은 메달뿐 아니라 각종 신기록을 쏟아내며 높아진 위상을 자랑했다. 이번 대회 수영에서는 17개의 한국 신기록이 나왔고 그 중 대회 신기록도 7개나 이뤄냈다.
특히 남자 계영 4x200m에서 남긴 7분 01초 73은 의미가 큰 기록이었다. 이는 일본이 2009 로마 세계선수권에서 남긴 아시아 기록을 0.53초 단축한 수치였다.
이외에도 자유형 50m의 지유찬, 접영 50m 백인철도 한국 신기록이자 대회 신기록을 남겼다. 이들은 예선에서 자신들이 남긴 한국 신기록을 결선에서 다시 한 번 경신했다.
역대 최고 성과를 남긴 수영 대표팀의 전성시대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 좋은 기록을 남긴 주역들은 대부분 2000년대 태어난 20대 초반 선수들이다. 향후 몇 년간 현재 기량 유지 또는 향상을 기대해 볼 수 있다.
3관왕에 오른 김우민은 2001년생으로 22세, 2관왕이자 메달 6개를 목에 건 황선우는 2003년생으로 20세다. 계영 대표팀의 최연장자 양재훈도 1998년생으로 25세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에서 수영 대표팀에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이들이 향후 세계 무대에서 어떤 결과를 낼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 수영 빛과 그림자, 박태환 해설위원 대한민국 수영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역대 최고 성과를 거두면서 거듭 언급되는 인물이 있다. '마린 보이'로 불리던 박태환이다. 황선우, 김우민 등 수영 대표팀 선수들이 좋은 결과를 얻을 때마다 박태환의 이름이 여지없이 나온다. 김우민에게는 '박태환 이후 최초 아시안게임 3관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이호준, 양재훈 등이 함께 일궈낸 계영 금메달은 '박태환 시대에도 이루지 못한 성과'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황금세대' 평가를 받는 수영 대표팀의 또 다른 닉네임은 '박태환 키즈'다. 2000년을 전후로 태어난 대표팀 주축 선수들은 박태환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시점 수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씁쓸한 뒷맛도 있다. 한국 수영 영웅으로 불리던 박태환은 금지 약물 복용 사건에 휘말리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따낸 메달 6개(은1, 동5)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박태환은 2015년 초,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도핑 테스트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왔다. 남성 호르몬 성분이 테스트에서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환 본인과 주사제를 투여한 병원 측은 금지 약물 복용과 관련해 기량 향상 의도를 부인했지만 이에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이 박탈당했다. 박태환은 이번 대회 TV 공중파 채널의 수영 해설위원으로 나섰다. 박태환을 해설위원으로 내세운 방송사는 수영 종목 시청률 1위를 달성했다. |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