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직후 유가 4% 이상 급등했지만 이내 안정세…확전 아닌 협상 시 제한적 영향 전망
#잠잠한 국제유가…“이란이 배후만 아니라면”
유가의 국제기준인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가자 전쟁 발발 직후 4% 넘게 올랐지만 이후 오히려 하락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주요한 에너지 수출국이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중동지역 원유 수송 교란도 아직 없다.
관건은 전쟁 직후 하마스의 배후로 의심된 이란의 연루 의혹이다. 주요한 원유 수출국인 이란이 이번 전쟁의 배후라면 미국 등 서방의 제재는 불가피해진다. 내정도 불안한데 원유 수출까지 막히면 경제난으로 어려워질 이란 지도부도, 유가가 급등하면 물가 잡기가 어려워져 내년 대선에서 불리해질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이 같은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 게다가 이란은 중국에 수출하는 원유가 많지만 미국이 통제할 수 있는 달러 결제망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OPEC 감산 멈출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막혀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추진했다. 사우디는 그 대가로 원자력 발전 기술을 확보하고 미국은 국제유가를 끌어올린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을 중단시킨다는 계산이었다. 가자 전쟁 발발 후 협상은 중단됐다. 수니파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 입장에서 같은 수니파 이슬람교도가 많은 가자지구가 이스라엘과 전쟁에 돌입한 마당에 수교를 추진하기는 부담스럽다.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전쟁 발발 후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은 온건파가 자치권을 행사하는 서안(West Bank)과 급진파인 하마스가 통제하는 가자지구를 포함한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발언은 이번 전쟁을 일으킨 하마스가 아닌 팔레스타인 국민들에 대한 지지 입장을 원론적으로 밝힌 것으로 분석된다.
#수혜자는 이란…복병은 레바논 헤즈볼라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향후 핵무기 개발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원자력 발전기술까지 확보하면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이란은 중동 패권을 추구하기 어렵게 된다. 가자 전쟁으로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이 중단되면서 가장 이득을 본 나라가 이란인 이유다. 사우디가 감산을 이어가면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해 원유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이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변수는 레바논 남부를 장악하고 있는 헤즈볼라다. 시아파 무장단체로 이란과 밀접하다. 헤즈볼라는 하마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무장을 갖췄다. 2006년 이스라엘의 침공을 이겨낸 경험도 있다. 이스라엘도 이미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의 참전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참전으로 무엇을 얻을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헤즈볼라가 섣불리 뛰어들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협상 결론 시 글로벌 경제 영향 제한적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만한 나라는 이집트와 시리아 정도다.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슬람근본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 구성한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시키고 집권한 인물이다. 지금의 하마스는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출발했다. 현재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조약까지 맺고 국경이 접한 가자지구 남쪽 봉쇄에도 동참 중이다.
시리아는 오랜 내전 중이어서 ‘제 코가 석자’다. 레바논과 요르단, 시리아 등 팔레스타인 난민이 많은 일부 지역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 진행됐지만 소규모로 별다른 피해도 유발하지 않았다. 정권 차원의 참전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항모전단까지 파견하며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제3국이 섣불리 개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관건은 협상이 이뤄질 시점이다. 2008년 12월에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이 벌어졌지만 휴전으로 마무리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여서 오랜 기간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최근 경제상황도 금융위기에 버금갈 정도로 좋지 않다. 이스라엘 정부가 36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할 정도의 전비를 오랜 기간 감당하기 쉽지 않다. 군사작전이 짧은 기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확전이 아닌 협상으로 결론이 난다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최열희 언론인